202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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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불교인

『무량수경無量壽經』에 “한 부처님 출연하시면 만 중생이 깨달음을 얻고, 한 법당 이룩되면 사바세계娑婆世界 안에 곧 극락정토極樂淨土 이루어진다.”
IMF 외환위기로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97년도에 4년간 일산 정발산에 여래사를 세울 수 있었던 불사는 불지종가인 통도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도사에 꽃피워진 열매를 37년 전, 구룡산 자락에 씨앗으로 심고 구룡사에서 꽃 피워진 그 열매를 일산 여래사 만불보전 불사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불사들은 말법시대에 보기 드문 불사로, 국내외에 20여 곳이 넘는 사찰들이 꽃피워져 그 지역에서 부처님의 법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구룡사가 중심이 되어 유치원, 어린이집 운영도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홍법문화재단에서는 어려운 이웃들과 나눔의 인연도 깊이 맺고 있습니다.


지나온 3년은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세상을 드려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시련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반면교사反面敎師하고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늘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나를 놓치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지난 3년은 정부 시책에 의해서 집단으로 모이는 것들을 경계해야만 했었지만, 아직도 하루에 몇 만 명씩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스스럼없는 독한 감기쯤으로 생각하고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더 많은 불자들이 이 시대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절에도 혼자만 올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이웃과 도반에게도 권해서 함께 이 사회에 동사섭同事攝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살아가게 됩니다.
97년도에 여래사 불사를 시작하기 전, 설계도면과 조감도를 가지고 통도사에 계신 조계종 종정이셨던 월하 노스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처음 해본 구룡사 건축불사의 단점은 보완하여 일산 신도시지역 정발산자락에 여래사 만불전 법당(연건평 3천 평) 절을 지으려고 합니다.” 말씀을 드렸더니 월하 노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정우는 평생 절만 짓다 죽을란가. ~~~”
노스님께서 신도시 건영아파트 단지에 상가건물을 한 층씩 분양받아 포교당을 세우고 있는 그 모습이 짠하다 싶으셨던 것이 아니셨을까 싶습니다.
노스님께서는 걱정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힘든 불사가 염려 되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허허벌판에서 구룡사 만불보전 불사를 지켜보시며 얼마나 노심초사 걱정을 하셨을까요.


언제부터인가 저는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 내 생활에서 진정으로 원했던 일들이었을까?”
저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품성品性입니다. 구룡사를 지은 것도, 여래사를 지은 것도, 뉴욕 원각사 불사도, 건영아파트단지 상가에 포교당을 세운 것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좋아서 했던 일들입니다.
절에서 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50년 넘게 절에 살았다고 해서 ‘남은 인생을 그냥 그저 그렇게 살다가 가자’ 싶어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아니라고 생각 되면, 스스럼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그런 저만의 세계의 인생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포교 현장에 살고 있는 것도 내가 좋아서 대중과 어울리고 있는 불사입니다.


흔히 인생을 열두 고갯길이라 말합니다만, 크게 나눠보면 3기 인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기 인생은 태어나서 성년이 되기까지 준비단계, 2기 인생은 성년이 되어 사회에 어울리며 생활하는 시기, 3기 인생은 인생을 정리하며 삶을 마무리해 가는 회향廻向의 단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세 단계로 30년씩 나누어보면, 2기 인생 30년을 사회와 어울려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평생직장이라고 여겨왔던 30년의 2기 인생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일수록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향후 20년 안에 평생직장을 가지고 살지 못하는 이들이 90% 이상이 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평생 해야 할 일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짧아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명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시대는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떠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그러니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迴를 부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위지안(于娟)은 31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떠나기 전 썼던 글이 세상에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도 했던 여성인데, 6~7살 된 아이를 남겨 놓고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써둔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잘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과도 같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
“사랑은 준다는 생각, 줬다는 생각,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주는 것이다.”
무조건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은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그러니 조건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이는 조건 없는 삶을 살고 어리석은 이는 무조건 삶을 요구합니다. 마음을 존중하는 것은 지혜로운 이의 행동입니다. 지혜로운 이는 곡식으로 밥을 짓고 어리석은 이는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오히려 소홀히 하기도 하고 뒤로 미루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렇게 이야 기를 합니다. “아이고~~~ 그 사람 나하고 가까운 사람이니까, 그 사람은 나하고 인척이니까, 혈육이니까, 가까우니까 괜찮아. ~~~”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에게는 극진히 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가깝고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소홀히 대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다반사茶飯事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 해줘야 합니다.
인연이 깊은 사람일수록 잘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다가 문득 마지막 기회를 맞이하는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여전히 셀 수 없을 만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지금이라도 서로 살피면서 미루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넘기면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내일도 오늘이 되면 오늘일 뿐입니다. 그 내일은 만날 수 없습니다. 만날 수 없는 내일이지만,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을 잘살게 되면 다가오는 내일도 잘 맞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내일은 만날 수는 없습니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죽음을 내일의 일로 생각하겠지만, 내일은 죽지 않습니다. 언젠가 떠나는 그날도 오늘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열면 시공을 초월해서 시간이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진정한 의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행동은 매 순간 의미가 있습니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충분한 것처럼 느끼고 있지만, 우리는 점점 더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습니다.
여한 없는 인생을 살 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시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되찾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마음을 열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죽음이 있어서 우리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시간처럼 정직하고 공평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 하고 어떤 이는 일념만년一念萬年이라고도 합니다.
만년을 한 생각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화두를 놓치지 않는 내 본성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각기 다른 시간 속에 인생이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값지고 소중한 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必有我師라, 세 사람이 길을 가고 있다면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모범적이면 본받고 어그러진 사람은 경계를 삼으면 두 사람 다 스승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유상종類類相種하는 지혜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환경과 문화, 기후와 풍토 그 흐름 속에 노출되면 거기에 젖기 마련입니다.
비린 생선 가까이하면 비린내가 배고, 먹물을 가까이하면 묵향 냄새가 몸에 배는 것처럼, 좋은 향을 가까이하면 향내가 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좋은 이들과 함께 유유상종할 수 있을 때는 유유상종해야 합니다.
수수지방원지기水隨之方員之器요 인의지선악지우人依之善惡之友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어떤 그릇이냐에 따라서 물 모양이 달라지듯, 사람도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올바른 사람과 지내면 그도 올바른 사람이 될 것이고, 어처구니없는 인생에 노출된 사람하고 가까이하다 보면 그런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최인호 작가는 『산중일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유전적으로 타고나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도중에 자신의 성격대로 자신의 이미지대로 변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내 얼굴의 변천사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마치 매일 가는 산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면 그 풍경이 바뀌듯 얼굴도 나이에 따라서 그 풍경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굴은 그 사람의 역사이며 살아가는 현장이며 그 사람의 풍경인 것이다.”


가끔씩 불자들이 나를 보며 부처님하고 많이 닮아간다는 말들을 하는데, 내가 부처님 닮아 가야지 부처님이 나를 닮아가서야 되겠습니까? 불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자들이 지역에서 쓰임새 있게 봉사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찰은 그 지역의 성지聖地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부처님 품 안에서 따뜻한 가정을 발원하는 생활불교인이 되어 살아가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