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숙
수필가·문화센터 강사
대학교시절 전공교수 중에 유난히 신경질적이고 웃음기 없는 냉소적인 교수가 계셨다. 표정 없는 어둔 얼굴의 여교수 수업시간은 무척 지루했고 학생들에게는 불편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남학생들은 이 수업을 피하기 위해 다른 전공과목 찾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으니 얼마나 그 교수님이 학생들을 불편하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여교수의 표정에 웃음이 드리워졌고, 밝은 색 옷차림에 화사한 화장, 농담까지 곁들이는 수업은 활기가 넘치기까지 했다. 우리들은 교수가 달라진 모습에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던 차에 수소문을 해보니 이유는 그 분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고 곧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배우자를 만나 예쁜 사랑을 나누는 달콤한 시간이었기에 표정도 밝아지고, 말투도 따뜻해지고, 뭔가 알 수 없는 여유가 배어나왔던 것이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여교수의 사랑입문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사랑! 만병통치약인 사랑이 40대 미혼인 교수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어찌 그렇게 교수님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질 수 있는지 그 당시에 우리는 이해가기 어려웠으나, 나이가 든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년배 주위 사람은 다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는데, 정작 본인은 미혼으로 40대를 보내고 있으니, 학생들에 대한 배려를 보일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는 40이 넘어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면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람은 날카로워지고 따뜻한 감성보다 차디찬 이성만이 온몸을 에워싸게 되는가 보다!
살면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 교수님의 사랑을 통해 새삼 강하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살면서 일방통행의 사랑이 아닌, 서로의 교감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대상을 만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서로를 사랑하는 대상을 단 한 번도 사랑의 경험을 나누어 보지 못한 솔로들도 주변에 많은 것을 보게 되는 요즘이다. 그 만큼 예전보다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세상이 복잡다단해져서 여유가 없고 살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을 많이 변화시키고, 불행과 행복의 냉탕과 온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게 만드는 감정이 사랑이지만, 사랑의 감정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로 방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이 오는 입구에는 초조와 행복이 함께 온다고 했다. 그 만큼 행복과 초조, 안타까움이 함께 공존하는 감정이지만, 우리가 어떤 약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을 180도 바꾸기도 해 주고 한 사람 인생을 구원해주는 묘약!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묘약을 복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면 흔한 표현이지만 몸도 마음도 더욱 건강해지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 한번 제대로 해보고 죽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표현했다. 우리 모두가 따뜻한 햇살 한아름 안고 사는 사람이 되면, 주위환경은 누군가를 향한 분노는 없어지고 사랑의 화환으로 넘쳐날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붙들어 일으키는 것과 같다”는 표현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