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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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동자善財童子가 되어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남인도에 있는 티베트사원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링 린포체 스님이 25년간 공부를 하고 있던 사찰입니다. 어린 스님은 어느덧 32세로, 개세(우리의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스님의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는 1만여 명의 스님들이 함께 수행하고 있는 사찰입니다.
그 많은 스님들의 공동체는 장엄하고 가슴 벅찬 곳이었습니다. 구룡사와 첫 인연을 맺었을 때 링 린포체 스님은 다섯 살이었습니다. 첫 인연을 맺은 후 25년간 지속적으로 티베트 불교와 스님의 뒷바라지를 하여왔습니다. 
링 린포체 스님은 박사학위를 받던 날 “대중들에게 그동안 구룡사 정우스님과 한국 불자들이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다.”는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세계일화世界一化 속에 핀 우담발화가 세상에 드러나는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여전히 어수선 합니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놀라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초들은 집회하는 장소에서 무언無言의 함성으로 단군의 핏줄인 백의민족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집회장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들이 텔레비전에 여전히 비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름끼치도록 걱정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어버린 국가적 초상집 형국이 되어 있습니다.
상가 집에서 알만한 이들이 민초들의 울음소리를 등에 지고 희열의 미소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 모습을 어떤 국민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민초民草들의 함성소리는 미세한 수증기의 입자로 허공에서 부딪치고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 미세한 물방울이 부딪히는 번개불빛의 결과는 어떤 핵무기보다도 더 파괴력이 크다는 것을 민심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행동입니다. 막무가내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더 이상 불행한 일을 초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 속담에 ‘침묵은 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속담에는 ‘침묵은 진실’이라 하였습니다. 금과 진실을 비교해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순도가 99.99%일 때 순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침묵은 금이요,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0.01%의 이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묵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침묵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릴 줄 아는 변별력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10대에 통도사로 출가 하였습니다. 어릴 적, 스님들 중에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저사람 고향이 어디지?’ 하고 묻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고향이 호남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조그만 한 땅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스스로도 호남출신 스님이라는 생각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봄 보리밭 밟히듯이 그렇게 청년기로 성장해 왔습니다.
누구든지 어디 사람 아닌 이는 없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댁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향을 빗대서 ○○댁이라 하였듯이, 천 년 전으로 올라가 보면 저는 백제스님입니다. 그리고 고향이 비슷한 스님들을 심심하면 ‘저 사람 고향이 어디지?’하며 묻곤 하였지만, 무슨 악의惡意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잘해도 전라도, 못해도 전라도, 심심해도 전라도, 장난삼아 전라도, 오다가다가도 전라도…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10년 20년 30년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제가 사십대 때쯤 되었을 때, 그 스님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운 오리새끼가 크고 보니 뭐가 되었다고 하더라.”


구룡사 주지로 포교현장에서 드러나고 있을 때입니다. 미운 오리새끼가 훗날 백조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 통도사 주지소임을 보고 있을 때, 도반들과 스스럼없이 차를 마시다 천연덕스럽게 다시 한 번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백조가 우아한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서 되는 줄 아나.”


백조가 깃털을 부풀려서 물에 떠있었는데 물갈퀴로 끊임없이 젓고 있는 몸짓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백조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우아한 자태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물갈퀴로 젖어야하는 노력이 백조의 몸짓이 되어 있었구나.’ 싶은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자기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과정에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깊은 산속에서 사는 것보다 사람들 속에 어울리면서도 물들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산속에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은 늘 번다하다면, 비록 깊은 산속에 살고는 있지만, 사실은 장터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우리사회 현상도 그와 같습니다.
“허물을 고쳐 다시 태어나고자 하면 잘못도 이내 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참회懺悔라는 것은 내 스스로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고 안으로는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허물을 드러내서 말할 줄 아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일은 짓고, 허물을 가지고도, 허물이 있는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


우리 불자들은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신심信心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심이라는 생명력을 지니면 순수해진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규범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친히 가까이 해야 합니다. 좋은 이들과 함께하면서 지혜가 있고 선근이 증장되면, 변별력이 생겨서 옳고 그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맹자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 맹자를 데리고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겠습니까? 깊이 새겨야 할 일입니다.
네 번째는 내관 사유해야 합니다. 스스로 나를 들여다볼 줄 알고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는 진지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끊임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법, 바른 행동, 그리고 중생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물과 기름 같은 부조화 인생은 어렵고 힘듭니다.
그러나 물과 우유처럼 융섭되고 어울릴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두두물물頭頭物物들이 인연법으로 연기되어지는 이치를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나의 원수요 나의 적이다.’고 했습니다. ‘나의 단점을 지적해주는 이가 진정한 나의 스승’입니다.
무관심한 침묵은 최악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자애로운 마음으로 지적해줄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요, 진정한 벗이요, 진정한 동반자입니다. 의무와 권리와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건강한 국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미소 지을 수 있는 희망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초상집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초상집에서 웃는다는 것은 상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상집에 가서는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들이 잘못되었을 때는 그 가정의 가족을 걱정해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민초들의 함성은 광화문에서 촛불로 시작되어 전 세계에 울림을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며 잘 살았으면 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