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현직 편집장 특별좌담 -
본지는 창간 20주년을 맞이해 불교계에서 잡지 편집을 책임지고 있는 전·현직 편집장을 모시고 ‘불교잡지의 역사와 방향성’을 주제로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일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교잡지의 역사와 불교잡지 현황, 이웃 종교와 비교해 본 불교잡지의 현실, 문서포교의 필요성, 불교잡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관한 광범위한 토론이 펼쳐졌다.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발췌, 게재한다.
<편집자주>
사회 : 신원식 본지 편집장
참석자 : 류지호 _ 월간 불광 주간
            노희순 _ 전 대중불교 편집장
            황찬익 _ 봉은사 종무실장
            박선영 _ 여성불교 편집장
 
일시 : 2008년 1월 14일
장소 : 본지 편집실
정리 : 김세희 기자
사회자 : 공사다망하신데도 이렇게 자리를 함께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저희 월간「붓다」는 도심포교를 통해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실현하고자 구룡사를 창건한 정우스님에 의해 1989년 창간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간 단 한 차례의 거름도 없이 다양한 문화포교를 실현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절을 처음 찾은 초심자들에게는 불교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고 기존의 불자들에게는 신심을 더욱 굳건히 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나름대로 애써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교 잡지가 이러한 사명을 다 하기에는 불교계의 현실을 살펴볼 때 여러 가지 제약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불교계 잡지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류지호 주간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류지호 : 현재 불교계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잡지가 다양하게 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형태가 모호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큰 틀에서 모두가 불교포교지 임에는 틀림 없지만, 잡지 발행 주체가 사보(寺報)와 범불교지의 구분을 명확히 하여 발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기업체에서 기업홍보를 위해 사보(社報)를 발행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사내보와 사외보를 구분해서 내는데, 사내보는 웹진 형태를 취하고 사외보는 매체 형태로 발행해서 배포하는 것이 그 예라 할 것입니다.
노희순 : 사보(社報)는 그 회사 내부의 일과 사원들의 동향을 알려주는 일종의 소식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제나 편집 내용도 사내 문제를 다루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규모가 커지면 사보의 성격을 탈피하여 잡지형태와 요건을 갖춰서 발행을 하게 됩니다. 불교계 잡지도 그 유형을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불교계에는 사보(寺報)와 범불교지로서의 잡지와의 구분도 모호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사보(寺報) 형태를 벗어난 잡지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10여 넌 전 특집기사로 다룬 기억이 있는데, 당시 사보로 발행되는 잡지만 해도 얼추 100여개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했으나 현재는 그 수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황찬익 : 사보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보 형태라도 내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절에서 냈으나 요즘은 포교당에서도 사찰법회 일정에 맞춰 정기적인 간행물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보, 법회보, 월회보 등으로 발행되는 것이 그것인데, 사찰에서 어느 정도 요건을 갖춰 정기적으로 발행 되면 사보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사보는 늘어나는데 잡지가 현격히 줄고 있다는데 있습
니다. <대중불교> <법시> <법륜> <금강> <불교사상> 등이 그 예라 할 것 입니다.
박선영 : 불교 잡지가 위기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감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인터넷 등의 매체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사회현상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느냐 하는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제가 몸담고 있는 도선사의 경우 <여성불교>는 순수하게 잡지로 발행하고 <도선법보>라는 사보를 별도로 발행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불광사의 경우 <불광>이 순수불교잡지로 발행을 잘 하고 있으면서 <공감플러스>라는 지역 주민을 위한 잡지를 발행하는 것이 그것이라 할 것입니다.
사회자 :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잡지는 1912년에 창간된 <조선불교월보>로 되어 있습니다. 그 뒤 당시의 열악한 불교계 현실과 일제의 탄압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불교>를 비롯해서〈유심〉〈조선불교계〉〈원종〉〈조음〉〈회광> 〈홍법우〉등 많은 잡지가 나와 불교 포교는 물론 국민의 정신문화 창달에도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 몇 해 발행되는 것으로 폐간되고 맙니다. 물론 일제의 탄압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현재까지 꾸준히 발행되는 잡지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노희순 : <불교>는 1924년에 권상로박사에 의해 창간되었다가 폐간된 뒤 다시 만해 한용운스님에 의해 복간되었다 일제에 의해 강제폐간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발행이 중단되었다가 1970년대에 제호를 그대로 이어 받아 태고종에서 현재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가장 오래된 잡지라고 한다면 <불광>을 들 수 있는데, 몇 십 년을 지속해서 발행하는 잡지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붓다〉지가 올해로 20년이 되었는데, 불교계의 현실로 보았을 때 20년 동안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큰 것 같습니다.
류지호 : 불교 잡지를 발행하는 궁극의 목적은 포교입니다. 〈조선불교계〉는 발간사에서‘산에는 9백 사찰과 7천 법승(法僧)이 있고, 들에는 40교당에 10만 신도가 있으니 우리 동토(東土) 1천5백만 인의 동포 중생에게 두루 권하여 다같이 부처님을 뵙고 불법을 듣게 함이 본 잡지의 목적 하는 바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포교가 지속적으로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잡지 발행의 주체가 되는 사찰과 스님이 문서포교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얼마나 지원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할 것입니다.
또 잡지 발행의 실무를 맡고 있는 잡지인들 또한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포교사라는 자긍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황찬익 : 만해스님도〈불교〉에 실린「조선불교를 통일하라」는 논설에서 ‘현재 조선의 사찰 수는 약 1천을 산(算)하는 바 그 위치가 전선(全鮮)의 각지에 균포(均布)되어 있고 각기 지방에서 불교적 사업을 운용할 만한 상당한 자산을 소유하였고, 그러한 사찰을 관리할 사람 즉 승려의 수가 1만에 가깝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해스님의 글에 비추어 보아도 일제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난 양적, 물적 팽창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거기에 따라 방송, 인터넷, 신문 등 매체를 통해 포교할 수 있는 전 분야에서 일제시대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불교 잡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얼마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박선영 : 일제시대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당시 불교잡지들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잡지를 발행하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령 당시만 해도 한문을 사용하는 것이 대세였을 터인데,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한글화 하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그 당시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불교잡지가 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불교잡지 현실로 보았을 때 쉬운일은 아니지만, 불교 잡지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교계와 잡지계를 뒤에서 따라가려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앞서 이끌어간다는 능동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자 : 현재 한국잡지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종교잡지는 302개입니다.
그 중 불교에서 발행하는 잡지는 42개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기독교 계통에서 발행하는 잡지들입니다. 물론 숫자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수적인 면으로만 본다면 불교는 개신교나 천주교
에 비해 열악한 것이 현실인데, 거기에는 어떠한 의견이십니까?
황찬익 : 숫자로 모든 것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별로 포교에 대한 인식과 관점, 그리고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노희순 : 불교적인 시각이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에 등록되어 있는 숫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잡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근대 잡지가 1896년 11월에 독립협회에서 발행한 <대조선독립협회보>인데 현재 발행 되고 있는 잡지 중 제일 오래된 것이 천주교에서 발행하고 있는 <천주교 경향>이라는 것이 부럽기는 합니다.
류지호 : 포교에 대한 적극성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개신교야 잡지뿐만 모든 방면에서 선교에 지나치리만치 적극적이지 않습니까? 물론 불교도 불교가 종교로서 존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포교입니다. 인쇄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유포 하는 방법으로 경전을 베껴서 이웃에게 읽히는 일이 그것입니다. 또 경전 에서도「이 경전을 읽고 타인을 위해 해설하거나 베껴서 널리 유통하면 그 공덕은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장엄한 것보다 더 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타 종교에서 발행하고 있는 종교잡지에 대해 불교계에서는 타산 지석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사회자 : 시대적인 흐름이겠지만, 통신문명의 발달로 불교계뿐 아니라 잡지계 전체, 나아가 문서매체 전체가 위기라는 지적이 많이 있습니다.
문서매체의 위기의 시대에 불교잡지가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희순 : 전문성을 살려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송과 인터넷이 아무리 발전해도 방송은 방송으로서, 신문은 신문으로서, 인터넷은 인터넷으로서 담당해야 할 몫이 각 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불교 잡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불교 신문에서 할 일, 불교 방송에서 할 일, 불교 잡지에서 할 일은 분명히 다릅니다. 처음 잡지를 발행할 때 발행 목적과 지향하는 방향, 그리고 독자층을 정해놓고 출발하기 때문에 거기에 충실하면 된다고 봅니다. 더 심층적이고 더 세분화하고 더 전문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제 조건으로 잡지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확고한 사명감과 신심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황찬익 : 잡지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같은 제호 아래 각종 원고를 수집하여 시간적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편집 간행하는 정기간행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이나 신문에 비하면 간행 간격이 길기 때문에 속보성에서는 뒤지지만 장기적으로 정보를 분석하고 검토하여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방송이나 신문매체보다 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박선영 : 폭과 시야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행 주체가 사찰이라고 해서 사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불교 잡지라고 해서 불교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경쟁력에서 뒤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필자를 선택할 때에도 불교 내부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필진을 개발하여 불교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그것은 인재포교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영권과 편집권이 분리되어야만 장기적으로 불교 잡지가 나름의 특성을 살려 오래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지호 : 전문지로서의 본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불교 잡지 발행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
포교이기 때문에 포교의 기능을 살려나가야만 합니다. 현대와 같이 고도로 분업화된 산업사회에서 다양한 계층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연령대와 사회적 지위, 성별, 지역 환경 등에 따라 관심의 대상도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불교 잡지마다 일정한 대상을 상대로 하는 전문지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사회자 : 불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확실하고 바르게 전해주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불자들의 바른
신행을 위해서라도 불교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발행인이나 편집과 제작을 하고 있는 잡지인이나 좋은 불교 잡지 만들기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월간 <붓다> 창간 20주년을 맞이하여 불교계 잡지의 현황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더 좋은 잡지, 더 좋은 포교지가 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토론회에 참석하여 고견을 내주신 토론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