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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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붓다의 어제와 오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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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법력으로 장엄하게떠올랐던 금강산 쌍무지개
김석종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부장)


지난 1년 동안 산사와 암자와 토굴과 도심사찰로 우리나라 불교의 큰스님들을 찾아다녔다. ‘염화실의 향기’라는 연재물을 담당하면서 스물 다섯 명의 원로·대종사·선지식들을 만나 지면에 소개했다.

노장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렸했다. 누구는 서릿발 같고, 누구는 자애롭고, 누구는 자유로왔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때로는 시대와 역사와 사회에 대한 촌철의 말씀을 청해보기도 했다. 노스님들의 일상을 통해 수행 전체를 엿보기도 했다. 그들은 한국불교 선맥을 다시 일으킨 근·현대의 고승들이 직접 매만져 키운 제자들이다. 나는 그들이 전시대의 도인들과 얼키고 설킨 인연 속에서 직접 보고 겪은 수행일화에 매료되곤 했다. 선사들의 뼈를 깎는 치열한 구도행, 몸을 내던지는 인욕의 자비행, 활연대오의 순간에 토해내던 오도송, 좌탈입망을 보여 주던 열반의 장면 등은 깊은 감동을 안겼다.

지난해 여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등 열다섯 명의 원로스님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았었다. 내금강 관광코스 개방에 맞춰 조계종이 마련한 금강산 성지순례에 동참한 길이었다. 그분들은 나의 취재원이기도 했다.

이 땅에서 살다간 고승대덕들은 대부분 금강산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를 비롯해 만공, 용성, 한암, 수월, 혜월, 석두, 동산, 효봉, 전강, 경봉, 향곡, 구산, 청담, 금오, 탄허, 성철, 월하, 서옹, 일타, 자운, 석주, 혜암, 서암 등등 `억불시대' 이후 한국불교의 기라성들이 모두 금강산에서 치열한 구
도행으로 한 자락씩의 전설을 남겼다.

나는 금강산을 찾은 노장들과 스승들의 인연에 주목했다. ‘금강산 `선의 황금시대’를 열어젖힌 전시대 고승들이 있었기에 한국불교 의 오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금강산은 바로‘한국 불교의 `본향’이자 선사들의 수행일화가 곳곳에 서려 있는 성지이기 때문이다. 일제 판사였던 효봉은 신계사에서, 오대산 상원사를 전화에서 지켜낸 한암과 한영, 석우는 내금강 장안사에서 출가했다. 표훈사는 불교계 대표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용성과 고암, 일엽이 자취를 남겼다. 춘성, 월하스님은 유점사에서 운수납자의 삶을 시작했다. 수월, 서암, 만봉스님 등도 유점사 등을 오가며 금강산에 머물렀다.

마하연사는 근세 선승들의 사관학교 같은 곳으로 ` 한국 불교의 못자리'라 할 만하다. 마하연선원은 선방이 크고, 모두들 정진에 몰두하느라 한철을 살아도 서로 얼굴을 모를 정도였다는 전설적인 선방이다. 만공은1930년부터 3년여 동안 마하연사와 유점사의 조실로 참선을 지도했다. 청담과 금오가 만공 문하에서 머리를 깎았으며, 성철, 자운, 석주, 경봉스님 등이 수행정진했다. 생존한 스님 가운데는 아흔여덟 살의 화엄사 조실 도천스님, 경주 흥륜사 조실인 비구니 혜해스님 등이 금강산에서 출가했다.

효봉이 법기암 토굴에서 무문 수행을 한 뒤 벽을 걷어차고 나와 오동송을 토해낼 때까지 하루 한 끼씩 공양을 나르며 시봉했던 임대원스님이 혜해스님의 은사다. 혜해스님은 신계사 복원 기간 내내 출가 본사인 신계사에서 지냈다. 도천스님은 수월의 제자인 묵언스님을 은사로 마하연에서 머리를 깎았다. 순례단보다 앞서 상좌인 흥국사 주지 명선스님 등 제자들을 이끌고 60년 만에 금강산을 찾았다.

용성과 만공의 제자들은 훗날 각각의 문중을 형성 하며 한국불교의 양대산맥을 이룬다. ‘범어문중’은 동산에게서 뻗어나간 가지들이다. 용성은 동산, 고암, 인곡스님 등 뛰어난 제자들을 남겼다. 동산은 범어사·해인사를 중심으로 성철, 자운, 지효, 광덕, 월산, 능가, 월운, 무진장 등 무려 130여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고암은 대원, 보광, 장산 등을 제자로 두었다. 12대 방장을 지낸 혜암은 인곡의 제자다.

만공의 제자로는 보월, 전강, 고봉, 혜암, 춘성, 벽초, 금봉 등이 있다. 이들은 덕숭산 수덕사를 중심으로 한‘덕숭문중’을 이룬다. 보월의 법을 이은 금오는 월산, 범행, 월성, 탄성, 이두(월암), 혜정, 월고, 월탄, 월주 등의 제자를 키웠다. 이들은 덕숭문중 가운데도 특별히‘금오문중’으로 불리며, 한때 한국 불교의 최대 문중을 형성했다.
용성과 만공의 제자들이 차별 없이 뒤섞여 용맹전진했던 마하연사터는 잡초 속에 돌계단과 주춧돌, 깨어진 기왓장만 나뒹굴고 있었다. 노스님들은 젊은 시절 귀가 닳도록 들었던 스승들의 체온을 느껴보려는 듯 마하연 옛터에서 가부좌를 틀고 입정에 들었다.

지관스님은 자안애어(慈顔愛語)의 자비심으로 제자를 감싸던 스승 자운스님과 해인사를 쩌렁쩌렁 울리던 성철스님을, 통도사 방장 원명스님과 주지 정우스님은 자재무애하던 삼소굴의 경봉스님과 영축산 소나무처럼 꿋꿋했던 월하스님을, 봉국사 주지 월서스님은 `’불멸의 수좌’로 불렸던 금오스님을 마음 속 깊이 추모했다.

한암-탄허-만화스님의 오대산 법맥을 이은 월정사 회주 현해스님, 만암-서옹 선사로 이어져온 고불 총림을 이끌고 있는 백양사 방장 수산스님, ‘금강산 도인’석두스님을 모시고 행자생활을 했던 천자암 조실 활안스님, 근세 선풍을 날린 전강선사의 상좌인 석남사 회주 정무스님, 근대의 대강백 운허스님의 제자인 봉선사 회주 밀운스님, 월정사 한영스님의 제자인 대흥사 조실 천운스님 등도 아득한 표정으로 스승들의 금강산 수행담을 떠올리고 있었다. 60년 만에 마하연터를 찾은 혜해스님의‘황성옛터’노래는 구성지고 서글펐다.

전설과 신화가 사라진 시대다. 옛날만큼 도인이 나오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산중의 노스님들은 생사마저도 자유롭게 넘나들던 근·현대의 고승들을 제자, 사제, 도반, 사형으로 한 시대를 함께 보낸 분들이다. 그들은 지난 세기를 화려하게 꽃피웠던 대선사들의 목격자이며 증언자다. 나는 그분들이 산중 깊숙이 염화실에 머물면서 오늘도 혼탁한 사바세계를 정화시키는 은은한 불빛과 향기를 내려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금강산 순례 첫날, 남쪽의 비무장지대와 금강산 세존봉을 이어가던 쌍무지개를 기억한다. 온정각 하늘을 가로지르는 그 장엄하고 영롱하고 신비로운 무지개. 우리시대 도인들의 머리 위로 번져가던 황홀한 낙조를 오래오래 지켜보며 나는 마음 깊이 흥분했었다. 이제 또 어떤 눈푸른 납자가 있어 한 시대의 노장들이 이룩한‘무아’와‘무애’의 전설을 이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