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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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병은 우리의 자식이고, 형제, 애인입니다

고광영 / 인문정신연구소 네트워커, 자유기고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낙도·오지·군부대에 책을 보내주고 도서관을 무료로 건립해 주는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 민승현 본부장이다. 책 만드는 일로 20여 년 넘게 밥벌이를 해온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지인을 졸라 소개를 받았다.
어떻게 그런 장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소녀 때부터 꿈이었다던데 아직까지 초심(初心)을 잃지 않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묵자(墨子)는 실(絲)이 물드는 것을 보고 “비단 실만 물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나라도 물든다.”고 했다는데 이 사람을 물들인 것은 무엇일까, 누가 이 사람을 물들였을까.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누구한테, 무엇 때문에 물들지 않았어요. 굳이 말한다면 하다 보니까, 걷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죠. 그리고 소녀 때부터 꿈꾼 것 아니에요. 이 선생님(민본부장을 소개한 분)이 잘못 알았든지, 아니면 저를 띄워 주려고 뻥튀기 한 거예요.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시집가고 나서니까 20년이 넘었네요.”
소녀 때부터의 꿈이 아니었다고는 하나 20여 년 넘게 한 가지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구나 시집을 가면 하던 일도 그만둘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밖으로 돌 수밖에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니 놀랍다. 그것도 무려 20년도 넘게!
“시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가능했죠. 나를 친딸처럼, 아니 그보다 더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셨어요. 제가 하는 일은 무조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저는 제 친어머니 얼굴도 몰라요. 저를 낳고 백일도 채 되지 않아 돌아가셨거든요. 시어머니 살아 계실 때 정말 행복했어요. 그야말로 승승장구, 부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어요.”
시어머니 사랑을 듬뿍 받은 그는 그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무엇으로 나눌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책이다. 책을 유독 좋아하는 그다. ‘맞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는 거야.’ 생각이 여기에 미친 그는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을 가까이하기 힘든 곳, 즉 낙도와 산간오지에 눈을 돌렸다. 지금이야 여러 곳에서 지원도 받지만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기. 사재를 털기도 하고, 집에 있는 책을 보내고, 아는 사람한테 얻어서 보내고, 알지도 못하는 출판사에 무작정 전화해서 재고도서를 보냈다. 책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싶어 무료로 도서관을 건립해 주는 운동도 겸하여 펼쳤다.
1999년에는 운동본부를 사단법인으로 정식 발족했다. 좀더 효율적이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아울러 활동 범위도 군부대 지원으로까지 확대했다. 1999년 육군 제1사단 ‘전진도서관’ 개관을 시작으로 운동본부가 설립한 병영도서관은 70여 개 소에 이르고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일반인들이 다소 꺼려하는 군부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좀 특이하다. 우파 냄새가 난다는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 돌아온 것은 핀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군대 안 갔다 왔어요? 군인이 뿔 달린 괴물이에요? 군장병들이 누구예요? 우리의 자식이고, 형제이고, 애인이잖아요. 자식 군대 갈 때 어머니들 눈물 흘리는 거 못 봤어요? 우파요? 새는 좌우로 난다고 하잖아요. 우파도 있고 좌파도 있는 것이예요.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우파라고 손가락질하든 좌파라고 뭐라 하든 상관 안 해요. 내가 하는 일이 옳으면 그만이에요. 알아달라고 하는 일도 아니고.”
운동본부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행복 발전소’다.
“군대가 가고 싶어 안달인 곳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갈 만한 곳,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저희들의 목표예요. 제 아들도 군에 가 있어요. 자기 자식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기를 바랄까요? 답은 간단하죠?”
‘병영 행복 발전소’ 프로그램은 전문 기획사의 프로젝트 못지않게 다양하다. ‘작가·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장병들의 독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인다. ‘병영 아카데미’는 성공한 CEO와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자기계발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밖에도 장병과 지역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연주회와 공연, 시사회 같은 ‘문화 페스티벌’ 등도 하는데 장병들이 아주 좋아한다.
운동본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또 다른 야심찬 기획이 장병들의 사회봉사활동, ‘군 강사(講師) 소외지역 지식나눔 프로그램’이다.
“자신이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우리 장병들 매우 훌륭한 자원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학력이 높은 군인입니다. 우리 사회 자체의 기준으로 봐도 평균을 뛰어넘어요. 장병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사교육을 받기 힘든 농어촌 산간 지역의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지식만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멘토 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복권기금 등과 같이 하는데 반응이 아주 좋아요.”
이 일을 하다보면 어려움도 속상한 일도 한둘이 아닐 듯싶다.
“사람들이, 특히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군인들이 무슨 독서냐. 한눈팔지 않도록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고 말할 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있는 우리 병사들에 대한 관심이 소말리아 어린이들을 향한 애정보다 크게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 때,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본부 직원들에게 최상의 결과물을 요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돌아서서 반성할 때는 정말 속상하죠. 어려운 일도 한둘이 아니고. 하지만 세상에 어렵지 않은 게 있나요? 어렵지 않으면 별 의미도 없어요. 부대를 방문했을 때 장병들이 책 읽고 있는 것 보거나, 도서관 개관과 특강, 공연을 함께 할 때 병사들이 기뻐서 환호하는 모습을 볼 때, 지휘관들이 근황을 알려주고 참 고마웠다고 인사할 때 힘들었던 일 싹 잊어버리죠.
사실 진짜 어려운 일은 기증할 도서를 확보하는 일입니다. 교보문고, YBM 시사영어사 등 후원사에서 어학과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전문서를 지원해 주고 개인 기증자의 참여도 꾸준히 늘고 있으나 기증 도서의 대부분을 후원금으로 구입합니다. 후원금은 앞에서 말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쓰고 도서는 기증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요. 국민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셨으면 해요. 그 책들은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의 자식, 형제, 애인들이 보는 거예요. 남들이 보는 게 아니예요.”
민본부장의 또 다른 꿈은 다소 엉뚱하게 느껴진다.
“군인과 관련된 농담 아닌 농담 있죠? 군인과 민간인이 함께 가면 ‘야, 저기 사람하고 군바리 한 마리 간다.’ 다들 웃고야 말지만 심각한 인격 모독입니다. 몇 번 말하지만 그들은 우리 자식이고, 형제고, 애인입니다. 장병들이 명동 한복판을 군복을 입고 보무도 당당하게 활보하게 하는 게 제가 꼭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에서 하는 일이 더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알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식당 주인은 집안 행사가 있다며 문을 닫아야 한다고 안절부절 못한다. 할 수 없이 아쉬운 작별을 할 수밖에.
집에 돌아와 아쉬운 마음에 평소 즐겨 읽는 경전을 펼치고 나지막하게 읽는다.
어리석은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과 가까이하며,
공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축복이며 행복이다.
- 《축복경》 중에서 -


민승현 본부장을 만난 오늘, 참으로 축복 받은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