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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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正道)의 길이란?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축사를 맡은 애플 신화의 주역 스티브 잡스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긴 연설을 끝맺습니다. “부족하게, 미련스럽게”정도의 의미입니다. 그는 어릴 적 즐겨 보던 <The Whole Earth Catalog(지구 백과)>라는 책의 뒷장 표지에서 저 문장을 얻어왔다고 합니다. 컴퓨터가 보편화하지 않았던 1960년대, 타자기로 쓴 글과 폴라로이드 사진 따위를 가위로 오리고 붙여서 만든 그 책을 잡스는 ‘35년 전의 구글(google)’ 곧 구글의 원형이라고 말했습니다. 백과사전인 만큼 세상이 변할 때마다, 발견과 발명이 거듭될 때마다 내용을 수정해야 했을 겁니다. 책의 저자들은 몇 차례 개정판을-역시 수공업적 방법으로- 냈고, 70년대 중반-아마도 노년의 그들이- 최종판을 냅니다. 그 책 끝 표지에 그들이 새긴 글이 저 문장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그리고, 그 책에 열광했던 잡스 세대의 젊거나 어린 친구들이 훗날 구글과 위키피디아를 만들고, 애플이라는 거대한 IT제국을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 잡스의 삶 역시 그 책의 운명과 닮아 있습니다. 숱한 시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누가 뭐라 하건 말건,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갔습니다. 부족하지만 늘 더 나은 것을 꿈꿨고, 그 꿈을 향해 미련스럽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 경이로운 신화를 이룩했습니다.


3년 뒤인 2008년, 똑 같은 스탠포드 졸업식 단상에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섰습니다. 그는 인생의 여정에서 배운 세 가지 교훈-직감과 실패, 그리고 행복에 관한 이야기-을 이야기했습니다. 다들 ‘이것’으로 몰려 갈 때 내 마음이 ‘저것’에 끌린다면, 그 끌림이 ‘진짜’라는 확신이 든다면 누가 뭐라 하건 그리 가라는 것이 윈프리의 축사 요지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냥 가만히, 아주 가만히 계십시오. 여러분이 뭘 할지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다수의 주장, 상식적 가치, 타인의 직감에 휩쓸려 따라가지 말고, 늦더라도 ‘참 나’의 요구를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 결핍 속에, 미련스럽게!


그 해 하버드대학 졸업식 단상에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이 섰습니다. 그는 실패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롤링이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기 전의 궁핍했던 삶의 이력-이혼과 실직, 가난과 양육 등- 역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젊은 날의 잇단 실패를 통해 비로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단언합니다. “그런 엄청난 실패를 겪고도 저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고,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이 곁에 있었고, 제게는 낡은 타자기 한 대와 원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 결핍 속에서 미련스럽게, 그 장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졸업식은 한 과정을 마무리하는 끝자리이자 새로운 과정으로 나아가는 첫자리입니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개 처음은 의지와 다짐과 활력으로 충만합니다. 그리고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와 우리 이웃들 역시, 팽팽히 당겨뒀던 두 다리의 근육을 힘차게 팽창시키는 직선주로(走路)의 주자처럼 힘차게 달려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명문 스탠포드와 하버드를 나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그들의 심정도 지금 우리와 그리 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잡스와 윈프리, 롤링은 실패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진정 원하는 바를 확신할 때까지 늦더라도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결핍 속에 미련스럽게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들의 지난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지난 6일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경남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봉행된 불기 2555년 신년하례식에서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스님은 그 날 “(민족 문화수호와 창달,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해) 지름길을 멀리하고 정도(正道)를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정도는 에움길일 때가 많습니다. 더딘 길이고, 미련스러운 길입니다. 하지만 당당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유롭기 때문에 훨씬 충만한 길입니다. 그 길은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경쟁 사회가 결코 권할 만한 길은 아니지만, 그래서 다수가 선호하는 길은 아닐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인류는 내일의 희망을 열어왔습니다. 저는 지름길을 버리라고 한 종정 스님의 말씀에서 <지구 백과>를 썼던 이름 없는 이들의 노고와, 오프라 윈프리의 ‘참된 직감의 길’, 그리고 조앤 롤링의 ‘실패의 가치’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의 생애와 그가 했다는 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미련스러움’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유대교단에서 수학했지만 20대 들어 데카르트 철학과 자연과학의 세례를 경험한 뒤 “천사는 환상이며 영혼은 생명체 안에만 존재한다”고 선언하는 등 유대 교리에 정면으로 맞섰고, 24세 때 유대 교회와 유대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합니다.
그리고 41세 되던 1673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철학 교수직을 제안 받지만 그 역시 거절합니다. 당시 그가 썼던 사양(辭讓)의 서신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자면 저 자신의 철학 연구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또한 공적으로 확립된 종교를 어지럽히는 모든 행동을 피해야 한다면, 제가 가르치고 연구하는 자유가 결국 제한 받지 않을까 염려됩니다.”그는 학자로서 기독교에 대해서도 거리를 유지했고, 훗날 익명으로 출간한 그의 주 저 가운데 하나인 <신학정치론>은 금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범신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로 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의 신은 하나로서 온전한 자연과 가까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연에 있어 만물은 신의 형태를 빌린 것이고, 자연을 초월한 곳에 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계의 존재는 유의미하며, 그 어떤 운동-지구의 멸망조차-도 특별한 맥락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만물에 불심이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연기론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그는 대학이라는 안정된 공간(지름길)을 외면하고, 유리 가루 마셔가며 렌즈를 깎아 용돈을 벌면서 자유롭게 연구했고 자신의 뜻(정도)에 따라 살았습니다. 


잽싸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이는데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설사 호기롭게 첫 걸음을 내딛더라도 수시로 찾아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도태될지 모른다는 번민으로 내처 걷기는 더 힘들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 날의 축사에서 그런 우리에게 또 하나의 용기를 줬습니다. 바로 죽음의 교훈입니다. 그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습니다. 의사들은 3~6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내렸고, 그는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정밀검사 결과 그의 췌장암은 치료가 가능한 희귀 암이었고,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회생합니다. 그리고 그는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죽음-그는 죽음을 삶의 최고의 작품(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이라고 했습니다-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사라지고 오직 진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한 진실이란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 곧 정도(正道)일 것이라 저는 여깁니다.
최근 외신은 그가 또 심상찮은 병을 얻어 경영에서 손을 뗐으며, 언제 복귀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다시 죽음의 현실적 가능성 앞에 다가선 그는 여전히 죽음을 삶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여기고 있을까요. 알 수 없지만, 다만 그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