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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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본마음에 깃든 도덕 감정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안녕하세요. 금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설이 지나면 완연히 봄이 되겠지요. 옛 어른들께서 종종 봄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는데, 저도 이제 나이 들어가는가 봅니다. 아무래도 겨울에는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몸과 마음이 움츠러듭니다. 어서 봄이 되어 푸릇푸릇한 새싹도 보고 바람도 쐬면서 나들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2월 4일이 입춘이니, 절에 가서 불공도 올리고 새봄의 발동을 걸어야겠습니다.
금년 정월부터 월간 《붓다》 독자 여러분과 󰡔범망경󰡕을 주제로 대승불교의 보살운동과 계율 사상을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대승불교의 특징은 본마음에서 우러나는 이타적인 보살행에서 잘 드러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했노라는 티도 내지 말고 그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과 나를 모두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는 겁니다. 대승불교도들은 그 길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1월 연재에서 저는 대승의 특징 둘을 들었습니다. 첫째는 모든 중생에게 공통으로 갖추어진 불성佛性의 체험, 둘째는 이타적인 실천으로 해석되는 보살행의 실천, 이 둘 말입니다. 󰡔범망경󰡕은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되었는데, <상권>에서는 ‘불성佛性의 체험’ 관련 이론이 줄기를 이루고, <하권>에서는 ‘보살행의 실천’ 관련 덕목이 줄기를 이룹니다. 이런 󰡔범망경󰡕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이 방면 학자들은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에서 왜 󰡔범망경󰡕을 편집했을까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2.
월간 《붓다》 독자 여러분. 모든 책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신의 계시를 기록한 말씀을 책으로 만드는 종교도 있지만, 불교는 그런 계통의 종교가 아닙니다. 모든 건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책을 통해 사람 사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
<삼귀의>에 나오는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를 아실 겁니다. 예전에는 한문으로는 “귀의승 중중존歸依僧 衆中尊”이라 했는데, 의미하는 바는 같습니다. 풀어 말하면, 이 세상에는 여러 공동체가 있는데, 그런 공동체 중에서 가장 훌륭한 공동체인 스님 공동체에 귀의하겠다는 자기 의지 표현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는 가족 공동체, 자라면서 마을 공동체, 학교 공동체, 직장 공동체 등등으로 넓혀가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걸 배우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살아가면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 경험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책을 통해서 직접 살아보지 못한 옛날이나, 또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경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서 어머니에게 말도 배우고, 정서의 교감도 배우고, 위험이 무엇인지도 배우고, 그렇게 배워갑니다. 자라면서 형제들에게 배우고, 나아가 학교에 가서 배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불교도들은 부처님과 스님들의 말씀이나 행동을 보고 배웠습니다. 왜 그들에게 배울까요? 우리의 삶을 올바르고 행복하게 해주니까요.
우리의 인생살이를 올바르고 유익하고 행복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잘 생각해보고 검사해보아야 합니다. 누가 한 말인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를 강조하면 교조주의에 빠질 위험이 커집니다. 맹목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눈을 크게 떠야 잘 보고 잘 판단해서 행동하지, 눈을 감으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때그때 마다 사안별로 따져보고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긴 세월, 그리고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에게 검증된 경험치를 배웁니다. 󰡔범망경󰡕에는 그런 경험치가 들어있습니다.


3.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스님네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존중해야 할 윤리와 도덕은, 전해지는 율장을 통해 우리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지금의 우리와 상황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째 당시의 스님네 공동체는 철저하게 독신 생활을 합니다. 둘째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남에게 빌어서 삽니다. 집이나 재산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셋째 스님네끼리만 모여 마을에서 떨어져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삽니다. 그 밖에도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상이 아주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스님들도 조계종을 제외하고는 결혼하기도 합니다. 또 스님들도 조계종을 제외하고는 소유하는 절이 있습니다. 재산도 가집니다. 오랜 전통의 절은 마을과 떨어져 있지만, 마을 속에 있는 절도 늘어갑니다.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물며 재가 불자들은 어떨까요? 예전에는 결혼이 필수였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달라진 현상은 설명 안 해도 아실 겁니다. 이런 속에서 대승을 추구하는 불교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런 물음에 󰡔범망경󰡕은 많은 지혜의 빛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4.
󰡔범망경󰡕에는 불자들이 출가건 재가건, 인생을 사는 데에 가져야 할 윤리 도덕이 실려 있습니다. 초기불교의 율장은 함께 모여 사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규칙인데 비교해, 󰡔범망경󰡕에는 보편적 근본 진리에서 인생살이의 규칙이 담겨 있습니다. ‘보편적 근본 진리’, 이 말이 대승의 율장을 이해함에 중요한 개념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속에서 제정된 규칙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나 제나, 그리고 어느 지역에 살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떤 가문이나 인종을 불문하고,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인간 내면에 원천적으로 들어있는 도덕 감정에 기초하여 세워진 규칙입니다.
󰡔범망경󰡕 책 속에서 그런 규칙의 기준을 크게 네 범위에서 세웁니다. 첫째는 발심하여 진리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이를 열 가지 덕목으로 제시하는데 ‘10발취심發趣心’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항상 그리고 언제나 주목하여 역동적으로 잘 가꾸어야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역시 이것도 열 가지 덕목으로 제시하는데 ‘10장양심長養心’이 그것입니다. 셋째는 단단히 지켜 부서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이를 열 가지 덕목으로 제시하는데 ‘10금강심金剛心’이 그것입니다. 넷째는 우리들의 본마음에 간직된 도덕 감정이지만 반드시 실천을 통해 드러내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역시 이것도 열 가지 덕목으로 제시하는데 이를 ‘10지地’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마음가짐이 번뇌에 싸인 중생에게 즉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래 있다는 사실이고, 이런 사실을 부처님의 입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범망경󰡕의 특징입니다. 이때의 부처님은 인도 땅의 역사적인 부처님이 아니시고, 진리 그 자체를 본바탕으로 하는 법신法身 부처님입니다. 이런 진리의 부처님은 몸도 없고 어떤 조짐도 없지만, 사바에 사는 중생들을 구제하시려는 원력으로, 몸 아닌 몸을 드러내시며, 법 아닌 법을 설하시는 분이십니다.


5.
참으로 묘하고도 묘한 발상입니다. 이게 대승불교의 특징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성佛性 사상입니다. 더 중요한 특징은 이런 불성을 울고 웃고 지지고 볶는 인생살이의 현실 속에서 꽃 피우자는 겁니다. 연꽃이 흙 범벅의 물 밭에서 고운 모습을 드러내듯이 말입니다.
남녀가 사랑하는 이불 속에서 향기 나는 꽃을 피우고, 통장 속의 돈을 세면서 그 꽃을 피우고, 저 깊은 산속이나 시끌시끌한 시장이나, 법당에서나 안방에서나 모든 곳에서 그 꽃을 피우자는 것입니다. 장소와 시간과 여건이 문제가 아니고, 중요한 건 향기 나고 물들지 않는 꽃입니다. 우리 속에 그걸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원천적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막힌 소식을 사바세계에 전하러 오신 분이 바로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해석입니다. 대승은 이런 해석의 철학입니다. 훈훈한 춘삼월에는 여러분께 󰡔범망경󰡕에서 전하는 이런 해석의 철학을 하나씩 소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