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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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캐릭터와 인생

이대흠
시인


지난달부터 나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즐겨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 처음 게임을 하게 된 것은 아빠와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전화를 걸어온 아이가 함께 놀자며 게임 사이트 가입을 권해왔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사이트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가입한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결국 가입만 해둔 채 들어가 보지 않았던 그 사이트를 들어가게 된 것은, 방학 기간을 이용해 아빠에게 온 아이의 설명을 들은 후였다.

나는 아이가 시키는 대로 주사위를 던졌고, 아무 생각 없이 캐릭터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정 레벨이 되자 직업을 가졌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열심히 레벨을 올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일정한 능력치와 기술력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능력치와 기술치를 올렸다. 그 게임에서의 능력치라는 것은‘힘, 지력, 날램, 운’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레벨이 오를 때 주어진‘5’의 능력치로 자신이 원하는 부분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나는 직업이 전사였기 때문에 적당한 힘과 적당한 지력 등을 생각하였고, 그야말로‘적당하게’ 그런 수치를 조절하였다.

하지만 레벨이 18정도에 이르렀을 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아빠. 망했다. 지우고 다시 만들어야 해요.”
나는 그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들 녀석만이 아니었다. 인근에 살며 나와 등산을 가거나 자전거 타기를 같이 하며 지내는 아이들이 몇몇 있는데, 그 녀석들도 내 캐릭터를 보면서 잘못 되었다고 하였다.

비로소 나는 그 게임과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었으며, 이해가 어려운 점은 인터넷을 뒤져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게임 캐릭터라고 함부로 만들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캐릭터로 키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달라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즉 주사위를 던지면 일정한 수치를 주어지는데, 내가 원하는 캐릭터에 따라 어떤 수치는 높여야 하고, 어떤 수치는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즉 칼을 쓰는 전사와 활을 쏘는 궁수에게는 제각각 더 필요한 요소들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슨 캐릭터를 만들 것인가를 미리 정해야 하고, 목표하는 캐릭터에 맞게 처음부터 수치를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무작정 주사위를 던지고 게임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뒤늦게 새 캐릭터를 만들고, 나는 다시 레벨을 올려 갔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사는 집에 놀러온 어린 벗들의 입에서 다시“선생님, 이렇게 하면 안 돼요.”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껌벅거렸다. 그러자 녀석들은 꽤 심각하게 전사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고, 마술사는 또 어떻게 해야 한다며 설명을 하였다.
나는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했다.
그래서 컴퓨터를 끄고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갔다.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낮은 곳에서는 풋보리가 기지개를 켜고, 봄맞이꽃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눈을 씻어주었다. 산정에는 눈이 가득했지만, 들에는 푸른색이 점점 번지고 있었다. 30분 이상 자전거를 타고 우리는 여러 번 가 보았던 도두항으로 갔다. 방파제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가 나는 그 게임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게임 하나 하는데 그렇게 복잡하냐? 그냥 하면 안 되는 거냐?”
내 물음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였다.
“선생님. 나중에 가면 후회해요. 한참 레벨을 올려놓고 다시 하려면 힘들잖아요.”
그 때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말이야. 선생님은 게임을 하면서 우리가 사는 거하고 너무 같다는 생각을 했어.”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캐릭터 하나 만드는 데는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들면서, 자기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신경을 너무 안 쓰는 경우가 많단 말이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도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그것에 맞게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켜가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게임 캐릭터는 지우고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이라는 캐릭터는 지울 수가 없잖아.”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눈치 였다.
 
“미안하다, 딱딱한 이야기해서. 자전거 타자.”
나는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며 이 마을 저 마을 구석구석을 다녔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내 삶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말해 놓았지만 정작 그 말을 새겨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아이들과 매일 어울려 놀았다.
게임도 함께 하고, 자전거 타는 것도 함께 했다.
녀석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녀석들의 부모들은 내게‘고맙다’고 한다.
어쩌면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말 몇 마디가 녀석들을 조금 변화 시켰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르친 것보다는 내가 배운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녀석들이나 그들의 부모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어린 벗들과 어울리면서 어린 벗들이 건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웠다. 녀석들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고, 밤이 늦도록 과로를 하지 않는다. 또 끼니를 거르지 않고, 틈만 나면 운동을 한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처음’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나라는 캐릭터는 철저하게 계산하지 못하고 레벨만 높아진, 잘못 만들어진 캐릭터인 것이다.
아이들의 표현대로라면‘망해버린’캐릭터인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어찌 되었건‘지금 여기에서’다시 출발하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게임에서처럼 내게도, 정해진 능력치와 기술치가 주어진다면,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내게 필요한 수치만을 올려야 할 것이다. 초록이 묻어오는 해풍에 씻기며 가만 나를 바라봐야 할 때이다.
나는 나에게 말한다.‘ 어제를 후회하기 보다는 내일 후회하지 않을 오늘을 살자!’고.

공기가 순한 날이다. 어린 벗들에게 자전거 타러 가자고 해야겠다. 나는 그들에게 다만 이 말만 할 것이다.
“나이를 레벨로 보았을 때, 지금 너희가 해야 할 게 뭔지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