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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맑은 눈의 사람들 |
서화동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차장 2005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약 두 달 간 중국 대륙의 서부인 티베트와 칭하이성 (靑海省), 신장(新疆)웨이우얼자치구를 자동차로 여행할 때였다.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西岸)과 깐수성(甘肅省)을 지나 티베트인들이 사는 칭하이성 초원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동차가 빽빽거리며 달리고,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에서 보던 눈이 아니었다. 티베트의 하늘만큼이나 맑고 투명한 눈….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다들 그랬다. 물론 여행이 길어지고 피부로 겪으면서 티베트 사람들이 모두 다 착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눈이 참 맑고 착했다.
그 이유를 놓고 일행들 사이에 잠시 논란이 일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대로, 욕심이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자 일행 중 어떤 사람은“티베트 사람이라고 욕심이 없겠나. 단지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어쩔 수없이 가난하게 살 뿐이지.” 라고 반박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티베트 사람들은 가난하다. 수도인 라싸에는 현대적인 빌딩과 유명 브랜드 제품을 파는 가게도 많지만 상권은 티베트 사람이 아니라 한족들이라고 한다. 애초에 자본이 없는 티베트인들이 어떻게 상권을 차지하겠는가. 심지어 농촌에서조차 티베트인들은 기후가 허락하는 대로 주식인 찡커 농사를 짓는 게 대부분이고, 수익 이 높은 비닐하우스 농사 등은 한족이 도맡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금년 8월에 열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 곳곳에도 도로가 신설·확충되면서 티베트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 나와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하루하루 삶이 고난의 연속인 그들이라고 왜 잘 살아보겠다는 욕망이 없겠는가.
티베트 동부의 누장(怒江)대협곡을 막 벗어났을 때였다. 새까만 얼굴에 땀과 흙이 범벅된 사람들 셋이 도로 위를 지나고 있었다. 세 걸음 딛고 합장한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가 온 몸을 땅에 던지는 사람들. 말로만 듣던 오체투지(五體投地)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면서도 오로지 걷고 절하기를 반복하는 이들은 8개월째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에 5~8㎞씩 걸어서 집에서 라싸의 조캉사원까지 1200㎞를 어느 세월에 갈까. 하지만 이들에겐 추운 겨 울을 앞두고도 초조하거나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라싸에 가서 빌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족의 건강도 빌어야 하고, 다음 생에 잘 태어나게 해달라고도 빌어야 하고, 인류 모두의 행복도 빌어야 하고…. 그 래서일까. 몸은 땀과 흙에 절었지만 표정은 밝고 눈빛은 맑기만 했다.
다음날 만난 3명의 오체투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석 달째 오체투지를 하고 있던 이들은 두 형제와 여동생 등 가족인데 어머니가 이불과 취사도구 등을 싣고 자녀들의 오체투지를 뒷바라지하며 함께 가고 있었다. 나와 나를 가리지 않고 모두의 행복을 기원한다는 이들은 어머니도 자녀들도 표정이 더없이 맑았다.
라싸의 조캉사원 앞 광장은 티베트 각지에서 이렇게 도착한 사람들로 새벽부터 인산인해를 이룬다. 티베트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조캉사원을 참배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길을 오체투지로 달려온다. 광장에 모인 이의 십중팔구는 남루한 차림이지만 눈빛만큼은 한결같이 맑디맑다.
이들의 눈이 맑은 것은 현세적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 아닐까. 나만 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는 이타심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비가 오 나 눈이 오나 춥든 덥든‘무소의 뿔처럼’일로매진하는 정성이 있기 때문 아닐까. 필자는 종교담당 기자로서 눈이 맑은 이들을 많이 만난 편이다. 1994년 4월 조계종 사태 때였다. 총무원장 의 3연임을 막고 종단을 개혁하려는 쪽과 기존 체제를 지키려는 쪽이 대립이 극심해지자 조계사 승려대회에 선방 납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들의 눈을 보니‘눈빛이 형형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싶었다. ‘닭 벼슬보다 못한 중 벼슬’을 놓고 싸우는 이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눈빛, 맑으면서도 형언키 어려운 힘이 전해지 던 그런 눈빛이었다.
눈이 맑기로 말하자면 큰스님들을 빼놓을 수 없다. 아흔을 넘긴 연세에도 맑은 눈과‘국보급 미소’를 잃지 않았던 서옹 스님, 장좌불와(長坐不臥)의 고행을‘가장 편안한 생활’이라고 했던 청화 스님, 온 세계에 간화선 을 전했던 숭산 스님, ‘욕망을 털어버리면 모든 것이 환해진다.’며‘양심이 가리키는 대로 살라’고 했던 서암 스님….
근년에는 전국의 선방을 순례하면서 맑은 눈의 선승들을 많이 만났다. 영축총림 보광선원장 천진 스님, 해인 총림 유나 원융 스님, 봉암사 태고선원장 정광 스님, 동화사 금당선원장 지환 스님, 범어사 금어선원 유나 인 각 스님, 서귀포 남국선원장 혜국 스님, 쌍계사 금당선원 선덕 도현 스님, 화엄사 선등선원장 현산 스님…. 천주교 수도원에서 만난 수도자들의 눈 또한 참 맑았다. 경북 왜관의 성베네딕도수도원에서 만난 이형우 아빠스(대수도원장), 서울 명동성당 뒷편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의 김영희 수녀와 서울가르 멜여자수도원 종신서원식 때 본 말 가리다 수녀, 제주 성글라라수도원장 이글라라 수녀, 부산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원의 이해인 수녀와 최안젤라 수녀…. 전국 27곳의 남· 녀 수도원에서 만난 수도자들은 한결같이 맑은 눈의 소유자였다.
흔히들‘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맑으면 눈도 맑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눈이 맑은 이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조계총림 송광사 유나를 맡고 있는 현묵 스님은 올해 동안거 해제일에 기자들과 만나 ‘몸은 마음의 그림자라, 수행과 기도를 많이 해서 마음이 가지런하게 안정되면 겉모습도 저절로 단정해지고 밝아진다.’고 강조했다. 종교를 막론하고 수행자의 눈이 맑은 것은 이런 까닭인 듯싶다. 눈 맑은 이를 많이 만날 수 있는 나는 그래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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