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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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권력을 위해

박관우
아시아기자협회 운영위원


취임 4년차의 바닥권 민심
이명박 정부가 취임 3주년을 넘겼다. 실용정부의 기치를 들고 출범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임기가 불과 1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달리 들리지 않는다.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임기 4년차를 맞이하면서, 힘든 고개를 넘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현 정부의 처지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먼저, 지지율이 신통치 않다. 국정수행 지지율이 40% 초반으로 그리 높지 않다.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는 40%대 후반이다. 조사기관 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최근 지지와 반대간의 격차비율이 많게는 10% 포인트 차이가 난다.
그러나 실제 체감 여론은 그보다 더 낮은 것 같다. 아예 바닥권이다. 체감 여론은 다름 아닌 민심(民心)이다. 민심을 떠난 여론은 없다. 여론을 아무리 좋게 만들어도, 민심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거꾸로 간다. 그래서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天心)이라고 하지 않았나.


서민생활이 천심(天心)의 본체(本體)
정치권과 언론기관은 수시로 여론조사를 한다. 기업체도 수시로 마케팅을 위해 수시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다. 그동안 경험으로 미뤄보면, 정치권 여론조사는 허구(虛構)가 적지 않다. 실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를 왜곡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여론 조사 숫자만 볼 것이 아니라, 시류(時流)를 잘 볼 필요가 있다. 시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民心)을 읽는 것이다. 민심, 즉 천심이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천심을 어떻게 볼 것인가? 관계당국이 나서지는 않겠지만 점술에 의존하는 것은 어리석다. 대개 컨설팅 자문을 하지만 한계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판단하는 것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서민생활(庶民生活)을 보는 것이다. 서민들이 어떻게 먹고 살고, 요즘 어떤 문제 때문에 마음이 아파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알고 실천해야 한다. 넥타이 매고 출퇴근하고, 사무실에서 결재하고, 주말에 골프치는 계층이 아니라,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민초(民草)의 실상을 보고 집권 후반부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빛 가운데 모인 눈 먼 사람들
서민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을 말한다. 서민을 사회계층으로 볼 수 있지만 한자 뜻을 풀이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먼저 서(庶)는 10가지 이상의 뜻으로 쓰이는데, 서민에서는 벼슬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나머지 뜻을 보면, 첩의 자식이나 자손을 말하는 서출(庶出)부터 지손(支孫)이나 지파(支派)의 뜻도 있다. 가깝다거나 많다는 뜻도 있지만, 비천하다는 뜻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서(庶)의 자원(字源)을 보면, 2개 이상의 한자가 만들어낸 회의(會意)에 속한다. 즉, 지붕을 뜻하는 글자와 그릇 속의 것을 불로 찌거나 끓이는 형상의 글자가 만나, 서(庶)가 만들어졌다. 집안의 빛 또는 불이 있어 사람이 모인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민(民)을 보면 불쌍하다. 조어원리는 모양을 본 떠 만든 상형(象形)이다. 한쪽 눈을 바늘로 찌른 형상을 본떴다. 한쪽 눈이 찌부러져 눈이 먼 노예나 피지배 민족을 뜻했다. 여기에다 천한 신분을 타고나며 무지(無知)하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을 뜻했다. 먼 옛날에는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희생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렇게 서민의 한자 뜻을 정리하면, 불빛을 집안 가운데 두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민이라는 글자를 만들던 옛적이나, 지금이나 서민생활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서민은 가진 것은 없어도 가족이 있어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늘 밥 한끼 먹을 수 있고, 내일도 먹고 지낼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진 분들이다.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어느 판자촌 골목에서도 연탄재 함부로 차지 않는 분들이다.


진짜 서민을 살피는 나라를
역사의 어느 시기를 보더라도 서민계층이 다수를 차지한다. 아무리 잘 사는 국가사회에도 서민은 있다. 못 살면 못 사는 대로 잘 살면 잘 사는 대로 서민계층이 존재한다. 통계적으로는 도시가구의 중간소득 이하를 서민층으로 정의한다. 소득기준은 정부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다. 통상 월 3백만원 이하 가구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을 보면 월 3백만원 가구도 잘 사는 가구다. 기초생활가구를 비롯해서 차상위 계층과 중증장애인 등은 서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정부 기준에 맞는 서민이 아닌, 진짜 서민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다. 단적으로 복지관을 가보면 금방 체감이 된다. 장애인과 노인복지관을 견학해 보면, 그나마 복지관을 이용하는 분들은 어렵지만 그나마 형편이 좋은 편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복지관조차 문턱이 높아 이용할 수 없는, 혹은 이용할 줄도 모르는 서민계층이 한 둘이 아니다.
20년 이상 기자생활을 해봐도, 아직까지 복지관도 이용 못하는 소외 서민의 공식 통계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최첨단 IT수출 대국을 지향한다지만, 제대로 된 서민계층의 통계조차 없는 한심한 G20 개최국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설령 서민계층이 사회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더라도, 우리 사회의 빈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고 정책을 펴야 할 것이 아닌가.


권력의 생명은 민심
가진 자는 속성상 항상 가지려고 한다. 나누기 보다는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나마 지키기 위해 더 가지려고 한다. 인간의 기본적 이기적 욕망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사회도 그렇지만 개인의 생존도 스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다소 극단적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죽음을 전제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 음식물이라고 표현하지만, 숫한 동식물의 죽음 덩어리가 다름 아닌 음식인 것이다. 결국 생명은 매일 죽음을 먹고 유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사회 권력도 마찬가지다. 앞서 민심이 천심이라고 말했지만, 민심을 먹고 사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의 생명은 민심이다. 그런데 민심은 죽음의 덩어리가 아니라 살아 움직있는 생명체다. 그래서 민심을 거스르는 권력은 반드시 망한다. 거스르는 순간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민심에서 나온 권력이 근원을 잊고, 힘을 쓰게 되면 망한다. 정치적 상징조작을 해서 일정 기간 정권을 유지할지 몰라도 남는 것은 멸망이다.


그늘 없는 양지(陽地) 없다.
최근 30년 철권통치의 이집트를 보라. 결국 망했다. 불과 18일만에 망했다. 트위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민심을 떠난 권력이 망하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집권 초기부터 그랬지만, 많이 가진 자를 계속 옹호하고 성공한 사람을 계속 봐주면 결국 망한다. 그런 사람은 정부가 봐주지 않아도, 어느 사회나 잘 먹고 잘 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권력자는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늦었지만 결단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법과 제도에서 소외된 곳이 어디인지, 봄이 왔지만 아직도 겨울 바람이 부는 곳이 어디인지 봐야 하다.
요즘 사회 이슈가 예사롭지 않다. 사상 최악의 가축 전염병이 창궐하고, 대통령 측근 비리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와 인과가 있지만, 이제는 소망교회 신도끼리 또는 지연과 학연을 매개로, 이리저리 어지러운 밤길을 마지막까지 가지 않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채근담(菜根譚)의 첫 구절에서 보듯이 만고(萬古)의 처량한 길은 가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