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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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노스페이스열풍에 대한 단상

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산악인이 다, 그리고 늘 이성적이거나 분별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아요. 명성에 이끌리는 거죠.”
2010년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죽음의 루트- 아이거 북벽(Eiger- The Wall of the Death)’은 한 전문 산악인의 저런 고백으로 시작한다.


스위스 알프스 끝자락 클라이네 샤이덱 마을의 호텔 테라스에 앉으면 마주서는 거대한 빙벽이 그 악명 높은 아이거북벽이다. 해발 고도 3,970m. 마을이 2,061m 높이에 조성됐으니 아이거북벽 정상은 마을에서 약 1,900m 위에 있고, 북벽의 순수한 높이는 1,800m 정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의 내노라하는 산악인들이 히말라야를 비롯한 여느 8,000m급 산군(山群)들을 다 제쳐놓고 가장 두려워하는, 또 그래서 가장 갈망하는 봉우리 가운데 하나가 이 아이거북벽이다.
높든 낮든 산의 북사면은 인간에게 불친절하다. 볕이 안 드는 데다 찬 북서풍에 늘 노출돼있기 때문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고산이라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시시각각 바뀌는 일기에 전면적으로 노출되는 자리이고, 폭풍 수준의 눈바람에도 아무런 방비 없이 맞닥뜨려야 한다. 70도를 넘나드는 수직 경사 빙벽에서 하켄과 아이젠에 달린 못 몇 개에 의지해 육체와 장비의 무게를 지탱한 채 언제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지 모르는 눈사태와 얼음사태를 예비하며 나아가야 한다. 악명 높은 북벽들 가운데 특히 아이거북벽은 석회암벽이다. 돌이 물러 바위 수준의 돌이 굴러 떨어지는 것도 예사라고 한다. 지형 역시 누군가의 묘사처럼 병든 폐의 형상으로 오목하게 패여 등반 루트를 개척하기도 힘들다. 단 한번의 실수가 생애 마지막 실수가 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아이거북벽의 악명은, 이 모든 자연적 난점에 더해 북벽이 선 자리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관광객들은 융프라우 철도를 이용해 클라이네 샤이덱에 닿고 숙소에서 나와 망원경만 들면 세계 최고의 클라이머들이 벌이는 등반의 사투를,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듯 눈앞에서 조망할 수도 있다. 그 생사의 드라마를 갈망하는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듯, 아이거북벽을 무대로 펼쳐진 장엄한 비극과 승리의 드라마 역시, 1935년 8월 첫 등정이 시작된 이래 끊이지 않아 왔다. 자일로 빙벽에 매달린 채 구조대와 관광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탈진해 숨진 산악인도 있었고, 시신 수습이 어려워 무려 2년 간 안타깝게 매달려 있어야 했던 클라이머도 있었다.
1937년 스위스 정부는 북벽 등반 자체를 금지하기도 했다. 당시 한 언론인은 북벽 등반을 “정신이상자들의 오락”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등반 금지령은 산악인들의 반발과 지역 주민들의 항의로 4개월 만에 해제됐고, 바로 그 해 이탈리아 등반대원 3명이 숨을 거둔다.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반대가 초등의 영예를 얻기까지 무려 9명이 숨을 거둔 것을 비롯, 지금껏 60명에 이르는 산악인이 아이거북벽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이거북벽은 지금도 산악인들의 거대한 공동묘지라는 음산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두에서 옮긴 한 산악인의 말(산악인 모두가, 늘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은, 왜 그렇게 험한 곳을 목숨까지 걸면서 오르려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6하 원칙’이라는 게 있다. 과학을 앞세운 논리와 이성의 세계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이 6하 원칙 위에 구축된다. 앞의 다섯 개는 수리·물리적으로 계측이 가능한 차가운 사실이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은 대답이 모호하다. 가령 ‘왜 지각을 했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은 ‘늦잠을 잤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다. 선생님은 다시 ‘왜 늦게 잤느냐’고 물을 수 있고, 학생은 또 그에 걸맞은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런다고 지각의 이유가 뿌리부터 캐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육체적 행위나 정신작용의 귀결 뒤에 던지는 ‘왜’라는 물음은 대답 뒤에 또 다른 ‘왜’를 잉태하기 십상이고, 결국 질문과 대답의 끝없는 행렬 속에서 꼬리를 문 뱀의 형상처럼 부질없이 맴돌이를 하게 하거나 아예 출발지점과 목적지조차 잃고 방황하게 하기도 한다.
다만 삶의 논리는 ‘합리’라는, 말 그대로 합리적인 기준을 들이대 이유의 설명들을 거칠게 반올림해버린다. 사소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배제한 채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선에서 대답을 얼버무리는 것이다. 한 없이 따지고 들면 우주의 비밀과 같은 커다란 질문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왜’역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의문사가 아닐지 모른다는 미궁 속에 빠져들 것만 같아진다. 모든 ‘왜’의 연쇄 끄트머리에 던지게 되는 ‘왜’를 우리는 궁극적인 물음이라고 부른다. 신의 존재나 삶의 비밀 같은 것들이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무한히 반복될 질문이고, 또 당대의 상식과 집단의 정서에 부합하는 시대의 해답들이 나타났다가 소비되고 또 사라져갈 것이다.


북벽을 서양인들은 노스페이스(North Face)라 부르고, 산악인들은 죽음의 얼굴(Death Face)이라고도 부른다. 산악인들이 더 높은 곳 더 험한 곳을 오르려는 이유를 우리의 이성은 도전정신이나 성취욕, 명예욕 등의 합리적 답변으로 대충 만족한다. 그 답변 뒤에 생존이라는 인간의 근원적·본능적 욕망에 앞서는 욕망이 작동하는 기제에 대한 ‘왜’라는 물음은 애써 회피되거나 자제된다. 그러므로 저 산악인의 대답은 엄밀히 말하면 ‘모르겠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성적이지 않다는 말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꼬리를 자른) 합리적 대답만으로는 온전한 대답이 될 수 없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노스페이스’라는 아웃도어 브랜드에 대한 청소년들의 열광이 사회문제처럼 부각된 바 있다. 중·고교에 가면 노스페이스를 입은 학생이 한 반에 절반이 넘고 심지어 똑같은 색상의 옷을 입은 학생도 여럿이어서 체육복처럼 옷 속에 이름을 적어 다니는 사례도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청년기의 몰개성뿐 아니라 옷값이 고가(高價)라는 것, 그 때문에 부모들의 부담이 만만찮다는 것, 옷의 등급에 따라 신라의 골품제 시절처럼 신분(?)이 나뉘고, 옷을 구입하기 힘든 학생은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힘센 학생이 약한 학생의 옷을 빼앗아 입기도 한다는 사실 등등이 부각되면서부터다. 기성세대는 이 같은 현상을 개탄하면서 그 원인에 대한 여러 갈래의 대답들을 내놓고 있다. 미숙한 아이들이 판매업체의 고가 마케팅에 집단적으로 현혹됐다거나 청소년기 특유의 모방심리가 엉뚱하게(설명할 수 없는 기제에 의해) 발현됐다거나 또래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사 입게 됐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혹자는 한국사회의 천박한 고가 명품추종심리, 물질적 욕망에 휘둘려온 한국근대의 병리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답변들이 현상의 일부분을 사후적으로 풀이하는 것일 뿐, 엄밀한 의미에서의 대답은 아니고, 또 부분적인 진실일수는 있어도 전적으로 옳지도 않다. 다만 저 산악인의 답변에 주어만 바꿔 ‘인간이 다, 그리고 늘 이성적이거나 분별력이 있지는 않다’는 말이 그나마 정답일지 모른다. 인간은 이성의 존재라는 말은 이성적일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일 뿐이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어도 하루 24시간 중 정말 이성적인 순간은 불과 몇 분에 불과한 게 인간 아닌가.


‘왜’라는 질문은 그래서 공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 ‘왜’이기도 하다. 왜? 현대가 과학의 세기이고, 과학은 이성에 근거하니까. 아니 존재론적으로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니까. 어쩌면 그래서 공허함(空)이 이 세계(色)의 본질이고, 구체(色)에 대한 모든 질문들이 추상(空)의 허공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지 모른다.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가 아마도 그런 맥락에 아스라이 닿아있을 것이다. 거기서 해답을 구하려는 이들이 많아질 때, ‘왜’라는 질문 자체의 무게도 가벼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