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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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니 다행이랴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봄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뿌리의 떨림이 많이 느껴지고 있다. 잎새가 될
에너지는 가지 중간쯤을 지나서 엄청난 파동에너지로 전진하고 있다. 겨울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을 여러 차례 보고 있지만 다가오는 봄마다 봄마다 감동이다. 아직 호흡이 중단되지 않았음도 새삼 절감한다.


최근에 만난 어느 분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그 분은 30대 초반에 돼지 도살하는 일을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했었다.


“돼지한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제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요, 화물차에 여러 마리를 싣고 도살장에 가서 잠시 기다릴 때입니다. 우리가 보면 5분이나 10분 뒤에 죽을 돼지들인데 그 짧은 시간에도 조금 있다 죽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죽기 살기로 서로 싸웁니다.
또 좀 똑똑한 수놈은 어느 틈에 암돼지에게 끊임없이 데이트 신청을 합니다. 망치로 때리다가
잘못될까봐 목 줄기를 칼로 어찌해놓고 밖에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오면 돼지의 숨이
멈추어져 있습니다. 이제 보니까요, 그 돼지가 바로 접니다.”
걸쭉한 말솜씨로 그냥 툭툭 던지듯이 말을 하는데 그 말 속에 들어있는 솔직담백한 진동에너지가 상당하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100년 안에 다 마감신고 하는데 지지고 볶고 명절 때 형제끼리 안보고 이웃집 사람 보면 고개 돌리기도 하고 호프집 가서 손잡고 장소를 옮기기도 하고……암돼지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수돼지는 그 순간에 눈이 참 초롱초롱합니다.”
저 꽃들도 그 매서운 꽃샘추위를 뚫고 피어나도 얼마 안 있어 지고 말 터인데 저렇게 몸부림치고 있다. 피어있는 꽃과 피어나려는 꽃들의 몸부림이 온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다.


맹자에 있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나라 선왕宣王과 맹자가 토크쇼를 한다. 제선왕은 제환공이나 진문공처럼 중국을 한 손에
잡고 호령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齊宣王問曰
제선왕문왈
齊桓晉文之事 可得聞乎
제환진문지사 가득문호
제선왕이 물었다.
제나라 환공이나 진나라의 문공처럼
중국천하를 호령하게 되는 일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때 패권을 잡았던 선대의 왕들을 거론하면서 제선왕 자신도 그렇게 패권을 잡고 싶으니
패권 잡는 비결이 혹시 없는지 맹자에게 묻고 있다. 맹자가 점잖게 술잔을 돌려준다.
孟子對曰
맹자대왈


仲尼之徒 無道桓文之事者
중니지도 무도환문지사자
是以 後世無傳焉 臣未之聞也
시이 후세무전언 신미지문야
無以則王乎
무이즉왕호
맹자가 대답했다.
중니의 문도들은 제환공과 진문공이 패도정치를 했던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후세에 전해진 것이 없어 제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만두지 말고 기어이 말하라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지향해야 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선왕이 묻는다.
“덕이 어떠하면 왕도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한다.
“백성을 보호하면서 왕도를 행하고자 하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과인과 같은 사람도 백성을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어떤 연유로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지금부터 맹자가 하는 이야기가 <곳속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이 곳속장만 따로
떼어서 1000독을 하면 한문공부가 많이 진전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曰 臣聞之胡.
왈 신문지호흘
曰 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왈 왕좌어당상 유견우이과당하자
王見之 曰 牛何之
왕견지 왈 우하지
對曰 將以.鐘
대왈 장이흔종
王曰 舍之 吾不忍其.. 若無罪而就死地
왕왈 사지 오불인기곡속 약무죄이취사지
對曰 然則廢.鐘與
대왈 연칙폐흔종여
曰 何可廢也 以羊易之
왈 하가폐야 이양역지
不識 有諸
불식 유제
맹자가 말했다.
“제가 호흘이란 사람에게 들으니 그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왕께서 당위에 앉아있는데 소를 끌고 당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께서 그것을
보시고 물었습니다.
“소를 어떻게 하고자 하느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장차 흔종을 하려고 합니다.[흔종은 새로 종을 주조하여 완성하면 짐승을 잡아 피를 내어서 틈이 있는 곳에 바르는 것이다. 피가 굳어서 종이 튼튼해지게 만든다. 우리 몸속에서 피가 굳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자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놓아주어라. 나는 그 소가 두려워 벌벌 떨면서 사지로 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렇다면 흔종을 폐지해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폐지까지야 할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도록 하여라.”
그리고는 맹자가 덧붙인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曰 有之
왈 유지
曰 是心 足以王矣
왈 시심 족이왕의
百姓 皆以王爲愛也
백성 개이왕위애야
臣固知王之不忍也
신고지왕지불인야
“예 있었습니다.”
“이 마음에 충분히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이 재물을 아끼려고 했다고 여기겠지만 저는 왕께서 소가 두려워서 벌벌 떠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잘 압니다.”
맹자는 제선왕에게 그 마음을 확충시키면 왕도를 행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사실은 이 대화를 주고받는 왕과 맹자와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와 읽는 독자들도 저 사지를 향해서 걸어갔고 또 걸어가고 있다. 벌벌 떨고 있느냐, 콧노래를 부르고 있느냐, 무덤덤하게 가고 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지를 향해서 가는 길에 계절의 변화도 있고 밤과 낮도 있고 이런저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으니 그 아니 다행이랴.
한문 공부의 사부님이신 보문 동현 송찬우 선생님께서 극락왕생하셨다. 위암말기라는 지중한 병이 있으셨는데 입적하기 50분 전에 몸을 일으켜 세워 달라고 하더니 가부좌를 틀고 나무아미타불을 조용히 지극하게 염하시면서 편안하게 입적하셨다. 극락에서 위암이랑 신경통이랑 싹 완치되셔서 속환사바 중생제도의 원력을 펼쳐 주십사 축원을 올린다.
봄, 나뭇가지마다 수액이 확확 돌아주고 있다. 모든 분들의 혈액이 원활하게 돌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혈액도 자연스럽게 돌아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