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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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절판(法頂 絶版)

박관우
불교방송 기자, 한국기자협회 감사 


무소유의 원적이 남긴 것
법정 스님이 입적한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온 국민의 애도(哀悼)속에 사바세계 를 떠났다. 경건하게 다비(茶毘)가 진행되 었다. 이제 경해( 咳)에 직접 접하지는 못하지만 무소유(無所有)의 가르침은 영 원히 남을 것이다. 스님은 말 그대로 입적 (入寂)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소식(消息) 은 입적이었으나, 조용하지 않았다. 다음 날 각 일간지에 2.5면 이상의 특집기사가 실린데 이어 지금까지도 후속기사가 계속 되고 있다. 1993년 성철 스님 원적(圓寂) 이후 국민의 관심을 받고 봉행된 최고의 입적 관련뉴스라고 할수 있다.

이제 4월 28일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49재를 지내면, 조계산 불일암(曹溪山 佛 日庵)과 만년의 수행처인 오대산 수류산방(五臺山 水流山房)에 산골(散骨)하게 된 다. 조지훈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생전부 귀 사후문장(生前富貴 死後文章)이라고 했던가. 아니 생전에는 철저한 수행정신 의 표상이었고, 입적 이후 스님의 문장은 생전 보다 더 빛을 발하고 있는 분위기다. 


절판 선언의 반어현상
스님의 절판 선언에도 불구하고 출판가 는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재고로 남아있는 책은 팔릴 대로 다 팔리고, 책을 더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입적 이후 전 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스님의 책이 종 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스님의 입적 이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 하는것도 첫 기록이 아닌가 싶다.
한국출판인회의에 따르면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집계한 결과, 입적 이후 3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아름 다운 마무리>가 정상을 차지했다. 상위 20위권에서는 법정 스님의 저서가 무려 8 권이나 들었다. 공개시장만 아니라 중고 출판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중고샵에서는 문화재 거래를 연상케 한다. 대표작인 <무 소유>는 평균 거래가격이 새 책 정가(定 價)인 8천원의 6~7배에 거래되고 있다.
일부 거래에서는 최고 15만대를 호가 (呼價)하고 있다. 1976년 범우(汎友) 에세 이선(選) 가격을 보니 불과 7백원이다. 무 려 220배가 뛴 가격이다. 필자의 집에는 2003년 3월 20일 출간된 3판 55쇄본이 있다. 정가는 6천원이다. 75년 초판본이 있었는데 찾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절판 선언 이후 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서, 출간년도(出刊年度)와 판본(版本)에따라, 소장 가치(所藏 價値)가 달라지면서 거래 가격(去來 價格)이 형성되는 현상도 예상되고 있다.


출간책의 판본도 관심사
필자의 책장에는 무소유 1년 뒤에 출간 된 1977년 초판본 조지훈 선생의 <동문서 답(東問西答)> 에세이집이 있다. 출간된 지 33년이 지난 탓에, 헤어지고 남루한 모습이다. 76년판 <무소유>와 같은 생각 이 들어, 살펴보니 느낌이 새롭다. 먼저, 77년판은 요즘 고급 백상지와 달리 누런 갱지로 제작해 이미 갈색 단풍속에 세월
을 담아냈다. 또, 핸드북 크기에 세로 쓰 기로 편집해 다소 고풍스런 느낌을 준다.
책 마지막 페이지 출판란(出版欄)을 자 세히 보면 77년판과 2003년판에 몇 가지 다른 점을 볼 수있다. 한자 표현이한글 로 바뀌었고, 범우사 주소가 마포구 신수 동에서 구수동으로 바뀌었다. 궁금증을 내게 하는 것은, 출판사 등록번호가 바뀌 었는데, 1966년 8월 3일은 그대로인데,등록번호는 (가) 제 1-37호에서 등록 제 1039호로 변경돼 있다.
또 다른 점은 2003년판에는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와 이메일 주소가 적혀있고,팩스번호가 추가되어 있다. 초판본과 3판 55쇄본 간의 소통수단 변화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2003년판에는‘잘못된 책은바꿔 드립니다’라는 독자 대상 친절멘트까지 넣었다. 하지만 전화번호는 717-2121 그대로다.
가장 큰 차이점은 활자본과 컴퓨터본이 주는 독서의 질감(質感)이다. 77년판은 누런 갱지에 활자본으로 만들어, 마치 골동품 같은 느낌을 준다. 어릴 적 호롱불(kerosene lamp) 아래서 바느질 하던 어머니의 모습 같은 이미지가 겹친다고할까? 동문서답 가운데 지조론(志操論)의 첫 문장은 손으로 더듬어 옛 눈 맛을 살려 읽으면, 마치 증곡(曾谷)선생의 실제 육성이 들리는 느낌이 든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무소유의 추억과 화엄경
76년 초판본 <무소유>가 당장 여기 있으면 좋으련만, 조지훈의 <동문서답> 77년 초판본을 보면서 스님의 책과 마음을 생각했다. 이제 내용 보다는 그 자체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 은 가셨지만, 필자 곁에 책이 남아 호흡 을 대신하고 있다. 사실 녹음된 육성도 살아있는 메시지를 계속 전해주겠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스님의 76년 초 판본 <무소유>를 평생 어찌 잊을 수 있 을까? 집안 어디엔가 있을 초판본 <무 소유>를 찾아볼 일이다.
절판선언에는 책 내지 말라는 사전 (辭典)의 의미(意味)가 있다. 그러나 출 판금지라는 의사표시와는 달리, 어쩐지 76년 초판본에 그 선언의 진정(眞正)한 뜻이 숨어 있을 것 같다. < 무소유>가 첫 출간됐을 당시 우리 사회에 대해, 무 소유를 말할 수밖에 없었던, 언외(言外) 의 스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다 시 집안 책장을 둘러보니, 1998년 13 쇄 발간된 <신역 화엄경>이 있다. 423 페이지인데 역시 활자본이다. 또 찾아보니, <말과 침묵> <서있는 사람들> <오두막 편지>가 있다. 특히 <신역 화엄 경>은 스님이 세납 56세에, 3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편역(編譯)한 것인데, 80화엄의 방대한 분량을 원고지 2천장분량으로 핵심만 간추린 역작이다.


봄볕으로 다시 오는 스님
집안 책장에 있는 5권의 스님 책을 보 면서 새삼 후회가 된다. 스님 생전에 <신 역 화엄경>을 몇 번에 걸쳐서 완독하고, 심오한 뜻을 이해하려 했지만, 불민(不敏) 한 탓에 결국 스님 생전에 마치지 못했다.
다시 들어 해제(解題)를 보니, 이렇게 말 씀하신다.


“고전을 통해서 우리는 눈이 번쩍 뜨이 고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귀한 가르침을 만나게 되는데, 그러기까지는 뭣보다도 서둘지 말고 차분히 한 귀절 음미하듯 읽 어나가는 끈기가 필요하다”
3월 11일 열반하시던 날, 경춘선 퇴근길 에서「법정 스님의 입적에 붙여」라는 제목으로 북한강을 따라 쓴 시를 소개한다.


무소유가 떠났다.
80년대 굶주린 영혼에
이슬로 다가온 무소유가
새벽빛과 함께 떠났다.



…중략…


이제 육신은 산화散華되어
바람 한점
구름 한점
돌 조각 가루 한마디로
구천만리 휘돌아
영원한 봄볕으로 귀환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