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부단장
부처님께서 시따와나에 머무실 때 어느 날 초저녁, 사왓티의 상인 수닷따가 매형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던 매형이 이날은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얼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 집안사람이 눈길도 주지 않았으며, 부엌에서는 음식 준비로 분주하고 하인들은 구석구석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그는 사람들 틈에 끼인 매형을 발견하였습니다.
“얼마나 거창한 잔치가 있기에 이리 법석을 떠십니까?”
“오, 자네 왔는가?”
“누구 결혼식입니까, 아니면 마가다국의 왕이라도 초대하신 겁니까?”
“내일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공양에 초대했거든.”
“부처님이라고요?”
“그래, 부처님.”
완전한 지혜를 깨달으신 분, 번뇌에 물들지 않고 온갖 고뇌를 해결해주시는 성자가 매형의 집에 오신다니,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부처님은 성 밖 시따와나에 머물고 계신다네.”
“지금 찾아뵐 수 있습니까?”
“이 사람 참 성미하고는, 날이 저물어 오늘은 늦었네. 내일 공양에 오시면 뵙든지 정 기다리기 힘들면 날이 밝거든 찾아뵙게.”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매형 집을 나와 시따와나로 향했습니다. 성문 밖은 칠흑처럼 어두웠으며 간간이 새어나오던 인가의 불빛마저 끊기자 길은 고사하고 코앞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숲에 들어서자 두려움이 엄습해오며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이 때 머리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은 온갖 보배보다 귀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물러나지 마십시오.”
그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런 분을 직접 뵌다는 건 좀처럼 오기 힘든 기회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더 내딛자 누가 횃불이라도 비춘 듯 길이 환희 보였습니다.
그 때 새벽이슬을 밟으며 부처님께서 아침 햇살처럼 눈부신 모습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수닷따.”
처음 보는 이의 이름을 어떻게 아셨을까? 밝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성자의 모습에 상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정신을 차린 상인은 무릎을 꿇고 합장하였습니다.
“저는 사왓티의 상인 수닷따입니다.”
“수닷따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수닷따는 환희심이 일어 부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법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당신의 제자가 되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받들고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주소서. 세존이시여 당신을 위해 정사를 짓겠습니다. 제자가 살고 있는 사왓티를 방문해 주소서.”
부처님은 세 번이나 간절히 청하는 수닷따에게 눈을 감은 채 허락의 표정을 보이지 않으셨으나 수닷따는 네 번째로 간청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을 위해 정사를 짓겠습니다. 사왓티로 오셔서 안거를 보내십시오.”
감았던 눈을 뜨고 조용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수닷따는 기뻐하며 매형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해가 높이 뜨고 조용하고 온화한 수행자들이 줄을 지어 찾아오셨습니다. 온 집안사람들은 예의를 다해 성스러운 이들을 맞이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공손히 올렸습니다. 공양이 끝나고 부처님은 집안사람들에게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법문 끝 무렵에 수닷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 예배하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다시 사왓티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존께서 머무시기 알맞은 장소를 물색할 비구를 저와 동행하게 해주십시오.”
좌중을 둘러보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리뿟따, 이 일을 그대가 맡아주겠는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사왓티로 돌아온 수닷따는 곧바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사리뿟따와 함께 여기저기 물색하던 수닷따가 드디어 적당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은 꼬살라국의 태자인 제따 소유의 동산이었습니다. 수닷따는 제따 태자를 찾아가 부탁하였습니다.
“태자님의 동산을 저에게 파십시오.”
“팔 생각이 없습니다.”
“값은 원하는 대로 쳐 드리겠습니다. 제발 저에게 파십시오.” 태자는 장난삼아 한마디 던지고 자리를 일어섰습니다.
“돈이 많은가 봅니다. 동산을 황금으로 덮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그럼 거래가 성사된 겁니다.”
“거래가 성사되다니요?”
“동산을 황금으로 덮으면 팔겠다고 방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난 당신에게 동산을 팔 생각이 없으니 썩 물러나시오.”
이에 수닷따는 곧 재판을 신청했습니다. 확대된 분쟁은 꼬살라국 최고 법정의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말에는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농담이었다고는 하나 만인의 존경과 신망을 받는 태자님이 자신의 말을 번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수닷따는 환호하며 황금을 가져다 동산에 깔기 시작했습니다. 마차들이 종일 엄청난 양의 황금을 날랐지만 동산은 반에 반도 덮이지 않았습니다. 기우는 석양빛에 쭈그리고 앉아 땅바닥을 긁적거리는 수닷따에게 태자가 비웃으며 다가갔습니다.
“장자여, 후회되면 지금이라고 말하시오.”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창고의 금을 꺼내올까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재물을 낭비하면서까지 동산을 사려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이오?”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해 정사를 세우기 위해섭니다. 태자님, 저는 이익을 좆는 장사꾼입니다. 저는 부처님을 만나 어느 거래에서보다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지금 제가 들이는 밑천은 앞으로 얻을 이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사가 건립되면 매일같이 부처님을 뵙고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닷따의 눈동자는 확신과 기쁨으로 빛났습니다. 이 말에 제따 태자도 감격을 했습니다.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이 동산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태자님.”
“이토록 당신이 정성을 다하는 분이라면 훌륭한 성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동산의 입구만은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성자들이 머물 이 동산에 화려한 문을 세우고 제따와 나라마라는 이름을 새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태자님.”
제따 태자는 수닷따에게 목재를 지원하는 한편 땅값으로 받은 돈으로 동산 입구에 아름다운 정문을 세웠습니다. 오랜 노력 끝에 정사가 완성되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낙성식에 참석하셨습니다.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수닷따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제자가 이 정사를 부처님께 바칩니다.”
“장자여, 이 정사를 이미 교단에 들어온, 현재 들어오는, 미래에 들어올 사방의 모든 비구들에게 보시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 제따 태자께서 보시한 숲에 수닷따가 세운 이 정사를 과거·현재·미래의 승가에 보시합니다.”
좋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사를 보시한 공덕은 크나큰 공덕이라고 여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롭고 좋은 결과를 원한다면 지혜로운 이들이 머물 정사를 짓고, 법을 거짓 없이 설해주는 비구들에게 깨끗한 마음으로 옷·음식·약·침구를 보시해야 합니다. 정사에서 지내는 비구들은 부끄러움 없는 수행자의 모습을 가꿔나가야 하며 자기를 믿고 따르는 불자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설해줄 수 있어야 하며, 시주와 비구 모두 참다운 진리를 구현해 현재 이곳에서 고요한 열반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