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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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와 열반의 참뜻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출가일에서 열반일까지 사찰마다 경건주간으로 정진 중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팔상도八相圖를 형상으로 그림 그리듯 떠올려 보고자 합니다.
석가여래팔상도釋迦如來八相成道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요즘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가 온통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의 열풍으로 자자합니다.
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인 김수현은 이모 손에 이끌려 자박자박 걸을 때부터 구룡사에 다니던 어린이가 청년이 되어 방송에 자주 출현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데, 드라마 속 배경의 내용은 불교경전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석가여래부처님께서도 전생에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지금도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고 합니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의 모친이신 마야부인은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실 때마다 어머니가 되시어 인간 세상의 무상함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뒤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가,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용화세계龍華世界에 내려오시게 되면 먼저 오셔서 계시다가 몸을 빌려 주시고 또 그렇게 도솔천 내원궁으로 떠나신다고 하였습니다. 도솔천 내원궁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400년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인간 세상에 출현하시어 만 중생에게 깨달음을 열어 주시며 80년을 머무시다가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시간을 계산해보면, 부처님은 사바세계에 머무신 시간이 도솔천 내원궁의 시간으로는 5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몽리몽몽육유취夢裏夢夢六有趣요,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입니다. 꿈속에서 꿈인 줄 알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인데, 우리들의 현실은 꿈속에서 꿈인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즘은 꿈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이버 공간의 가상세계와 현실의 혼돈입니다. 그런 사이버 공간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렇습니다. 50년 간격으로 50명의 스님들을 줄 세우면, 2500년 전 부처님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부처님을 모시고 살았던 제자들의 행적과 가르침도 전해 듣고, 전승해온 그 시간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주인공이 400년 전에 우주 어느 별에서 왔다는 것도 이렇게 비춰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도솔천 내원궁의 하루가 인간 세상의 400년이라는 것을 알고 글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로 인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많이 남겨 주어 동남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26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카필라국의 싯다르타 태자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첫 일성으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늘 위 하늘 아래 우리 모두 존귀 하다” 하셨습니다.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 하리라,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가 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 허덕이고 있으니, 내가 마땅히 그들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리라” 선언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 태어나자마자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태어나면, 바로 일어나서 걷고 뛰어다니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일어나서 그 대열 속에 함께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분상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소년시절에 동서남북의 4대 성문으로 나아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목격하고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렇게 생로병사에 대한 의문으로 괴로워하던 중, 한 수행자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9세 되던 어느 날 모두가 잠든 시간에 출가를 하였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그렇게 설산으로 들어갔지만, 한 곳에 머물면서 정지된 시간 속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훌륭한 스승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 중에는 출가 이후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셨던 영축산靈鷲山도 있고, 사리불舍利弗과 목련존자木連尊者가 부처님 제자가 되기 위해 건너왔던 가야산伽耶山도 있고, 강가에서 소치는 소녀로부터 유미죽 한 그릇을 얻어 잡수셨던 니련선하尼連禪河도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훗날 그 일을 술회 하셨습니다.
『과거에 어떤 수행자도 이런 고행 할 수 없었고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이런 고행을 원치 않는다.』
고행자의 모습으로 설명할 때, 경전에서는
『머리를 만지면 파뿌리 뽑히듯 하고, 얼굴을 쓰다듬으면 덜 익은 오이 쥐어뜯어서 그늘에 말려 놓은 것 같다….』
고 하셨습니다.
아프리카나 북한 탁아소의 피골이 상접한 어린아이들의 비쩍 마른 모습을 떠올려보면, 부처님께서 6년 동안 고행자의 길을 걸었던 고난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인사 승가대학 강주이셨던 종진스님께서는 세속적 학문의 유혹으로 토굴에 살던 정우에게 오셔서 긴 밤을 보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정우는 언제가 제일 힘들어요?”
“스님은 언제가 제일 힘드셨는데요?”
“보고 느끼는 것은 괜찮은데 아직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은 장담할 수가 없어.”
그때 저는 대답 대신,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마음대로 못해서 쩔쩔맨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솔직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모습을 화면에 담아 두었다면, 지금쯤은 허탈하게 웃었을 것입니다.
어느덧 초로初老의 인생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스님께서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 번뇌요 망상의 욕락을 경계하며 두렵다’ 하셨을 것입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것들 이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수행하고 계실 때, 이를 방해하는 마왕파순이의 유혹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이것은 삼독三毒의 번뇌煩惱와 욕락慾樂의 망상을 여의고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들이 바로 타락했다고 떠나버렸던 이들입니다. 21일간이나 찾아갔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몸도 다 회복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진여 등 다섯 고행자가 머무르고 있는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서 그들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을 설하신 이후 45년 동안 전법의 길을 걸어가시다가 2월 15일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던 것입니다.
『여래께서는 처음 나실 적과, 출가할 적과, 성도할 적과, 미묘한 법 수레를 운전하실 때는 모두 8일에 하셨는데 어찌해서 열반에 드심은 보름날에 하시나이까? 잘 물은 말이다. 선남자여, 보름날은 달이 일그러짐도 자라남도 없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둥근 달이 떴을 적에는 열한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한 가지인가. 무명의 어둠을 깨트리고, 정도와 사도를 연설하고 나고 죽음을 벗어나며, 열반의 평탄함을 보여 중생들로 하여금 탐·진·치貪·瞋·癡의 뜨거움을 여의게 하고, 외도의 광명을 깨트리며, 번뇌의 도둑을 파괴하고,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 오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주며, 중생이 선근을 심는 마음을 내게 하고, 중생들의 욕락의 마음을 덮어주며, 중생들이 대열반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정각을 이루게 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의 즐거움을 가지게 하는 것이니라.』
보름달이 뜨면 평소에 없는 열한 가지의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원만 구족한 여래如來의 보름달이십니다.
월하노스님께서 써주신 글 가운데,
‘변조광명무여지遍照光明無餘地요 하방세계유암야何方世界有暗耶’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여래는 보름달과 같이 두루두루 모나지 않고 원만한 광명이 가득하여 남음이 어디 있겠느냐. 햇빛이 차별을 해서 너는 양지, 나는 음지라고 만들지 않습니다. 만드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태양은 골고루 비춰줄 뿐입니다. 그런데 구름이 가려서 햇빛을 막기도 하고, 언덕을 등지고 있어서 그늘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변조광명무여지, 그 광명은 남음이 없습니다. 하방세계유암야, 어둠이 있고 밝음이 있는 것은 나의 허물일 뿐입니다.
본래 부처를 찾고자 하는 것을 우리는 수행정진이라고 합니다.
본래 부처성품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데, 다만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출가해서 출가자의 길을 걷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편하고 한가함을 구하고자 출가한 사람은 없습니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살기 위해서도, 명예나 재산을 구하고자 출가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처님이 출가를 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출가자입니다. 출가자는 해탈 복을 입고 좋은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는 복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참 자유는 여기를 떠나서 저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곳이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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