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자유기고가
도심 가로수 사이로 연등을 매달고 불을 밝힐 즈음, 스무 살 대학초년생이 겪었던 한 친구의 각인이 떠오른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꽃 천지인 봄 뜰에 수수꽃다리가 지고 아카시아 향기가 넘칠 무렵이었다. 밤새 초파일 제등행렬 뒤풀이로 노곤한 늦잠을 깨우는 전화벨이 울렸다.
“놀라지마.”
“뭐?”
수화기 저 편에서 머뭇거리는 모양이 역력했다.
“친구가 병원에 있어. 사고로……”
“왜?”
장난치지 말라고 전화 한 친구를 다그쳤다. 몇 시간 전까지 제등행렬 앞에서 커다란 코끼리상을 끌며 힘써 웃어주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벽녘에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전복돼 친구는 운명하고 동승한 선배 3명은 중상으로 입원해있었다.
대학 새내기인 우리들에게 불교신행은 초파일과 함께 시작되었었다. 연잎을 꼬며 앉아 있노라면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빈 강의 시간, 불교학생회에 들리면 연등 작업하는 선배 동료와의 수다에 정신이 팔려 강의시간을 놓치기도 했었다. 3월 말부터 제등행렬 준비를 위해 동아리방 아래층 실습장을 빌려 연등을 만드는 작업장이라는 의미에서‘연등원’을 열었는데, 그 친구는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던 터라 거의‘연등원’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그런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그 친구를 알고 지낸 추억의 비중만큼 그 친구 몫까지 열심히 살아서 의미를 기억하려했었다. 그게 남아있는 사람의 몫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스무 살, 거리로 뛰어들었다. 사회변혁을 목청껏 외치는 게 당당한 지성인의 몫이라고 행동했다. 그 자각은‘변화’에 대한 기대로 이어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주변에 시선 놓기를 멈추지 않았다.
“인형을 준 일은 참 잘한 일이야”
세상을 염려하는 마음은 주변을 의식하는 불편함으로 나타났다. ‘우리 아파트에 비리가 있어.’
‘애들 학교에는 문제가 너무 많아.’‘내가 정치를 하면 더 잘 하겠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채 주위를 경계하는 쌈닭처럼 잔득 볏을 세우고 눈초리를 매섭게 치켜 올리고 다녔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시비를 걸면 확 덮칠 기세였다. 나 자신과 아이 그리고 남편을 위하는 일이 이기적이라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런 편협한 생각이 아직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사고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루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아이가 친구들을 데려왔다. 가뜩이나 학기 초 진단평가 등 시험과 학습에 대한 중압감이 아이보다 엄마를 더욱 압박하는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터라 갑작스런 아이 친구들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아이가 집에 도착하면 학교숙제며 학습지 풀이 등 일거수일투족 간섭하고 싶은 유혹에 들썩인다.
무리지어 노는 아이들과 달리 혼자서 집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우리 집 큰아이와 작은 아이의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물건 함을 뒤적였다. 급기야 그 아이가 조그만 인형을 만지작거리더니 그것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슬쩍 넣는 것이 아닌가. 둘째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인지라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이가 고슴도치 인형을 참 좋아한단다. 네 바지주머니 빵빵하네. 주머니에 뭐 들었니?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여기 인형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줄게”
나는 캐릭터 인형들이 든 커다란 자루를 꺼내 보이며 아이에게 협상안을 내놓았다. 그 아이 스스로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게 하고 싶었다.
얼마 후 둘째 아들의 인형은 제자리에 놓여있었다. 한참 놀다가 밖에서 꼬마손님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둘째 아이가 물었다.
“엄마가 하영이에게 아구몬 인형 줬어요?”
“응, 내가 인형 줬어.”
“인형을 준 일은 참 잘한 일이야. 그 녀석이 놀이터에 나가서도 잘 놀더라고. 난 그 녀석이 웃는 걸 처음 보았거든.”
“그 아이 이름이 하영이구나. 그런데 그 아이 다른 애들과 좀 다르더라.”
“그 녀석은 좀 아프대. 과학 독후감 쓸 때도 종이에‘야호’라고 써도 선생님이 혼내지 않아.
아마 그 녀석이 아파서 선생님이 봐 주나봐.”
우리 집 아이는 짝꿍이 되었다는 하영이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영이는‘자폐아’가 갖는 특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날 하영이와 내가 나눈‘협상안’을 아들 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치우친 생각 없이 서로 어울려 노는 모습이 놀라웠다. ‘순수함이란 아이처럼 서로의 다름을 편견 없이 대하는 마음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니 흐뭇했다. 그리고 아픈 아이와 어울려 노는 내 아이가‘스승’처럼 빛나 보였다. 좀 달라도 거리낌 없이 대하는 마음, 자신을 밝혀 주변을 감싸 안는 넓은 대자비심이 느껴졌다. 순간, 내 아이가 그 아이처럼 아프지 않은 것에 또한 감사했다.
아픈 세상, 자성을 밝혀 여기저기 부르튼 아픈 세상이 보인다. 내가 다 치유할 수 없는 현존이다. 생존을 위한 극한경 쟁과 자리다툼, 시기와 악다구니로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풍요의 마음을 갖는다면 조급하지 않 게 내 자신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변해야 서로가 감싸주고 어우러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남편을 위하는 일이 세상을 위하는 첫걸음임을 알았다.
그 동안 남은 자의 몫이 등 떠미는 시간이었다. 스무 살 친구의 못 다한 삶을 대신 열심히 살 아주어야 한다는 부채감과 사회적 변화의 갈증을 달래기 위해 목청만 돋우던 조급함 때문에 자성을 밝히는 데는 소원했다. 결국 자신을 밝히기 위해 너무도 많이 돌아왔다. 나를 밝히고 세상을 이해하며 감싸 준다면 더 큰 지혜의 등불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