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옷깃만 스쳐도 5백 생의 인연이라고 했던가. 그러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아들딸을
낳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데는 얼마나 많은 생의 인연이 필요하겠는가. 장구한 세월,
광활한 세상 속에서 살다 간 남자와 여자의 수는 갠지스강가의 모래알처럼 많을 터이다. 그 많
은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이 결혼을 하여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지 않
을 수 없다.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와 야소다라 공주가 결혼하게 된 데에는 아름다운 전생 이야기가 전해
져 온다. 아주 먼 옛날, 디빵까라(연등) 부처님 시절에 수메다(선혜 선인)라는 청년은 우연히 부
처님과 조우할 기회를 갖게 된다. 수메다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디빵까라 부처님께 공양
할 꽃과 향을 구했지만 성안의 사람들이 다 가져가버려 한 송이의 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때 마
침 푸른 연꽃이 담긴 화병을 안고 가는 고삐(구리 선녀)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수메다는 자신
이 가지고 있던 은전 500냥을 줄 테니 꽃을 자기에게 팔라고 사정한다. 고삐는 수메다의 간절
한 마음에 감복하여 연꽃 일곱 송이 가운데 다섯 송이를 건네준다. 그리고 나머지 연꽃 두 송이
는 자신의 이름으로 대신 부처님께 공양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들은 다음 생에 부부가 될 것을
기도하고 보살도 닦기를 서원한다. 이러한 기도와 서원을 담아 수메다가 던진 푸른 연꽃은 디빵
까라 부처님의 머리 위에 다섯 송이가 일산처럼 펼쳐지고, 두 송이는 어깨 위에 드리워졌다. 이
러한 인연으로 훗날 수메다는 싯다르타 태자가 되고 고삐는 야소다라가 되어 결혼하게 된다.
요즈음 불교식으로 법당에서 올리는 결혼식 식순에는‘헌화’순서가 있는데 이때에, 신랑이
다섯 송이의 꽃묶음을 주례에게 바치면 주례는 이것을 불단 동쪽에 올리고, 다시 신부가 두 송
이 꽃묶음을 신랑을 통해 주례에게 바치면 주례는 이것을 받아 불단 서쪽에 올린다. 이러한 헌
화 의식은 바로 연등 부처님에 대한 수메다와 고삐의 연꽃 공양에 연유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결혼은‘우연’이 아니라‘운명’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운명적인 만남이기에 그 사
랑은 꿈결처럼 달콤하리라.
그런데, 요즈음의 세태는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다시 말해 결혼의 운명성이 우연성으로 바뀌
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이혼율의 급증 현상은 그것을 웅변해 주
고 있다. 결혼 후에도 혹시나 하는 염려 때문에 혼인 신고를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놀라
움을 금할 수가 없다. 이혼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심각한 이유는 역시 성격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트하고 연애할 때는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조심하고 나쁜 점을 가급적 감추기 때
문에 상대방을 피상적으로 이해하여 공통점이 많고 호흡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혼
을 하고 함께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껏 알지 못했던 단점들을 발견하게 되고 자라온 환
경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이런 저런 의견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은 광신자를 치유하려면
성직자와 한두 달만 함께 생활하게 하면 된다는 서양 속담을 생각해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
다. 성직자를 멀리서 보았을 때는 거룩하고 존경스러웠지만 가까이서 시시콜콜한 면까지 속속
들이 알게 되면 환상이 깨지듯, 장밋빛 연애시절에서 냉엄한 결혼의 현실로 들어서면 수많은 실
망과 갈등 요인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결혼 생활에서 부부가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서로의‘차이’를 인정하고 나아가 존
중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생활 습관의 차이에서부터 취향의 차이, 사고방식의 차
이, 인생관과 가치관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차이는 실로 광범위하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
고, 어느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강요하게 되면 심각한 갈등을 불러오게 된다. 남편은 달콤한 음
식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담백한 음식을 강요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내는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 생활을 하고자 하는데 남편은 무조건 반대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내는 섹스를 절제하
려 하는데 남편은 섹스에 탐닉하려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불교적으로 볼 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아집’때문이
다.‘ 나’(我)도 없고‘내 것’(我所)도 없기에‘내 취향’‘내 방식’‘내 생각’도 절대적일 수는 없
다. 불교적 무아(無我)의 실천은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칼릴 지브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부부는 죽는 날까지 함께 해야 하지만, 그
‘함께 함’에는 떨어진 사이가 있어야 하며 그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들이 춤추게 해야 한다고 주
장한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서로 사랑은 하되 사랑으로 얽어매지는 말게 할지어다.
그대 영혼과 영혼의 두 기슭 사이에 사랑으로 하여금 뛰노는 바다가 있게 할진저.
서로서로의 잔에 술을 채우되 잔 하나에서 함께 마시지는 말지어다.
서로서로 저의 빵을 주되 같은 조각에서 먹지는 말지어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어 즐기되 그대들 하나하나 따로 있게 할지어다.
마치 거문고의 줄들이 비록 한 가락에 떨릴지라도 줄은 서로 간섭을 받지 않듯이.
『( 예언자』,「 결혼에 대하여」중에서)
결혼 생활에 있어 사랑 못지않게 소중한 덕목이 존경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적이기에 남
편이 아내를 존중하면 아내도 남편을 존중하게 되고,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면 아내도 남편을 무
시하게 된다. 불교의 초기 경전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 할 도리와 의무에 대해 각각 다섯
가지 사항을 설한다. 즉 남편은 아내에게, (1)아내를 존경하고 (2)아내를 예의로써 공손히 대하
며 (3)아내에게 충실하며 (4)집안살림의 권한을 부여하고 (5)장식품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아내
는 남편에게 (1)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고 (2)남편의 일가 친족을 잘 받들며 (3)정조를 지키고
(4)남편이 모은 재산을 잘 지키고 (5)무슨 일에나 능숙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이 가르침에 나타
난 불교적 부부 관계는 수직적이고 봉건적인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민주적
인 관계임과 동시에 서로가 존경하고 봉사하는 호혜적이고 합리적인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러
한 바람직한 부부관계는 서로에 대한 존경이 그 근본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 사항이 있고 부부 사이에도 똑같은 금기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제 친구 홍길동이 아버지는
부장인데 아버지는 왜 과장밖에 안 되셔요?”라고 묻는다면 그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아내가
남편에게“내 친구 남편은 월급이 많던데 당신 월급은 왜 이렇게 적어요?”라고 다그친다면 남편
의 마음은 어떨까. 어떤 형태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결혼 생활에 있어, 육체적 사랑이든 정신적 사랑이든, 사랑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자 생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원만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사랑의 관리와 기술이
필요하다 하겠다. 초기 경전의 하나인『악간냐 숫따』의 다음 내용을 보더라도 결혼 생활의 본질
은 사랑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초원에서 쌀을 모아 그것을 섭취한 결과, 그들의 신체는 더욱
형체화되어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이후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져 성적 교섭
에 탐닉했다. 다른 존재들이 그들의 행위에 눈살을 찌푸리자 그들은 집을 짓고 그 속에서 남
편과 아내로서 살기 시작했으며, 초원에서 모은 쌀을 계속 음식으로 취했다. 이리하여 가족이
라는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자따까』에 의하면, 부처님은 사왓띠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설하셨다고
도 한다.
곱고 부드러운 옷을 입고 배부르게 진미를 즐기며 윤기나는 피부를 자랑해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내는 차라리 밧줄에 목을 매달아 죽는 것만 못하다. 가난하여 거적을 깔고 누
웠더라도 남편의 애정어린 눈길을 바라보며 남들이 알지 못하는 행복을 누리는 아내는 사랑
을 받지 못하는 부자의 아내보다 낫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사랑은 감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의지(will)의 문제이기
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강력한 느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은 결단이고 판단
이며 약속이다. 사랑이 단지 느낌일 뿐이라면 영원히 사랑한다는 약속은 불가능하게 된다. 느낌
은 어느 순간 왔다가 그냥 사라지기도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무례하게 굴면 안 된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려서도 안 된다. 남편이 퇴근할 무렵이면 오히려 옷 매무새
에 신경도 쓰고 가벼운 화장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려야 하며,
서로를 각자의 영원한 소유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서로에게 매력을 잃고 나아가 사랑
을 잃게 되는 지름길이다.
끝으로 부부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두 사람은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갈 것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면 조그만 실수나 잘못은 이해하고 덮어주게 된다. 가급적 한
눈을 팔지 말아야 하고‘사음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지도론』(大智度
論)에는 사음의 열 가지 해악이 설해져 있다. 첫째, 불륜관계의 여자 남편이 항상 자신을 해치려
고 노리고 있다. 둘째, 부부 사이가 화목하지 않아 항상 싸우고 다툰다. 셋째, 선업(善業)은 자
꾸 줄어들고 죄악은 나날이 늘어난다. 넷째, 아내와 자식은 늘 외로워하며 가족과의 관계가 점
점 소원해진다. 다섯째, 재산이 나날이 줄어든다. 여섯째, 다른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거나 사랑
받지 못한다. 일곱째, 일가친지에게 사랑받고 환영받지 못한다. 여덟째, 남에게 원망을 받는 업
연(業緣)을 심는다. 아홉째, 몸이 상하기 쉽고 죽은 후에는 지옥에 떨어진다. 열째, 여자로 태어
나면 바람둥이 남편을 만나고, 남자로 태어나면 정숙하지 못한 아내를 만난다.
이렇게 하여 남편과 아내 사이에 오랜 세월을 통해 존경과 사랑과 믿음이 쌓여 가면‘우리는’
의 노랫말처럼, 그들은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고, 마주잡은 손끝하나로도 너무 충
분한 영원한 우리가 될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화평한 가정은 불
국정토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우리는 수행자처럼 한결같이 서로 이해하고 인내하
며 용서하고 사랑해 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