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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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자사

김지상
(화광전통미술연구소,중국국가박물관수복연구원)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 주변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절들이 아주 많다. 이러한 천년 고찰들은 북경에서는 한 번쯤 꼭 가볼만한 곳으로 빼놓지 말아야 할 곳 들이다.


베이징 서쪽에 위치한 천년고찰 담자사(潭柘寺)는 산세를 따라 세워진 절인데 주변에 산봉우리 9개가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AD 307년에 건설되어 지금까지 약 1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담자사는 북경이 생기기 전에 건립이 되었기 때문에 북경보다 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다.


담자사는 진(晉)대(265년~317년)에 처음 창건되었는데, 창건 당시 이름은 가복사라 불렸으며 이후 개축과 보수를 거치면서 이름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담자사가 세워지게 된 창건연기에 의하면, 북방의 왕군(王郡)이라는 사람이 그의 부인이 세상을 뜨자 부인의 극락왕생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찰을 창선하고 그 이름을 "가복사(嘉福寺)"라 지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담자사는 측천무후 때는 용천사와 만수사로, 청대에는 수운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청대 강회 31년(1692년)에 확장 개축불사를 한 후로는 사명을 유운사라 개명했다. 그러나 사원 뒤에 ‘용담’이 있고 산 위에 산뽕나무가 자라므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이 사찰을 담자사라고 불렀다 한다.


역사적으로 담자사는 역대 황제들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황실의 제1사원이라고 불리었다. 청대 강희 건륭황제에 이르러서는 담자사가 전성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이 도량에 주석했던 스님 수가 무려 3,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를 증명해주는 것이 담자사에 남아있는 어마어마한 가마솥이 있다.


이 솥은 담자사의 "진사지보(鎭寺之寶)"라고 하는 보물이다. 지름 3m, 깊이 2m 크기의 이 솥에 죽을 한번 끓이려면 십여시간이 소모된다고 한다. 솥을 씻을 때에도 절의 스님들이 사다리를 타고 들어가서 씻는다고 한다. 솥이 걸린 부엌에는 담자사라는 글자도 새겨져 있다. 부엌에 담자사를 새긴 연유로는 과거 담자사의 스님이 목조건축물인 담자사가 화재가 발생 할 것을 늘 염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지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담자사를 불속에 놓으면 화재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지스님은 생각 끝에 이 가마솥에 담자사라는 글자를 새기게 되었다고 한다.


담자사의 보물은 가마솥 외에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길이 1.7m, 무게 150kg의 석어(石魚)이다. 이 석어는 남해 용궁의 보물이었는데 용왕이 석어를 하늘의 옥황상제에게 바쳤고 옥황상제는 민간의 질고를 헤아려 석어를 담자사에 선물했다고 한다. 이 석어는 병을 치료하고 재해를 없애는 두 가지 신통력을 가진다고 하는데 이것을 믿었던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면 석어의 머리를 만지고 배가 아프면 석어의 배를 만져 병을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이 석어는 담자사의 운석을 가지고 만든 조각인데 운석에는 동과 희귀금속이 함유되어 검푸른 색을 띠고 석어의 각 부위를 두드리면 서로 다른 소리가 울려나와 악기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 석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못 하는 일이 없는 신어(神魚)로 자리를 하게 되었다.


담자사가 세워진 뒤로 많은 황제들이 이 절을 찾았다. 일부 황제들은 즉위하면 제일 먼저 담자사를 찾아 예를 올렸다고 한다. 이렇게 역대 황제들이 담자사를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담자사는 그 규모면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찰의 건축 양식은 좌우 양쪽으로 대칭되면서 중국 고대 건축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 외관은 금빛이 찬란한 자금성(紫禁城)의 축소판과 같다. 이러한 이유로 자금성을 축조할 때 이곳을 모델로 삼았다는 얘기도 있다.


사찰의 건축 양식은 동, 중, 서 3로로 구분이 되어 있다. 중로의 주요 건물로는 천왕전, 대웅보전, 재당, 비로각이 있다. 그 중 대웅보전은 이곳에서 제일 장엄한 규모인데, 정면 너비가 5칸이고 겹처마 2층 구조에 황금빛 기와를 얹고 단청은 중국의 전통양식인 청색이 주 색채를 이루고 있다.


대웅보전의 지붕 용마루 두 끝에는 큼직한 푸른 유리망새가 있고 망새에는 각각 긴 유금사슬이 하나씩 달려 있다. 색깔이 선명하고 형상이 생동한 망새는 청대에 개축하면서 원대의 양식을 모방한 것이며 사슬은 강희제가 하사한 것이다. 중간에는 봉황이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고대 장식물은 현재 베이징에서 보기가 쉽지 않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표정이 인자하고 살짝 미소를 띤 모습이다. 불상은 석재 수미좌 위에 모셔졌고 그 양편에는 아난과 가섭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데, 정교하게 조각된 목조상에 금박을 입힌 청대의 유물이다.


불상의 양식은 우리나라의 양식과 흡사하다. 주불도 우리나라 양식과 거의 비슷해 친근해 보이고 협시불 역시 거의 차이가 없다.


동로에는 방장원과 행궁원이 있다. 청대 제후들의 행궁인 행궁원은 원 내에 유배정을 보유하고 있는데 제왕들이 대신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시를 읊조리던 곳이다. 서로에는 능엄단 계단 등 법단식 건물과 약사전, 관음전 등 불전이 있다.


이밖에 산문 밖에 있는 상, 하 탑원 내에는 금·원·명·청 등 각 시대의 묘탑 70여 기가 있는데, 각양각색의 벽돌 구조로서 중국 승탑 형태와 제도의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이 된다. 이곳을 탑림 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는 원나라 세조였던 쿠빌라이의 딸로 때어나 출가수행을 한 묘엄대사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원 나라의 공주였던 그는 세조가 벌인 전쟁으로 인하여 무수히 희생되어간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서 평생을 수행하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담자사의 또 다른 볼거리는 자목련이다. 북경에는 많은 자목련 나무가 있지만 담자사의 자목련이 최고라고 한다. 수령 400년의 자목련이 꽃을 피울 때면 멀리서 바라보면 보라빛의 안개가 낀 듯하다. 그래서 해마다 목련꽃이 필 때면 많은 사람들이 이 자목련을 보기 위해 담자사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