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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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함이 빛나는 아름다운 고백

신봉승
극작가 · 예술원회원

20세기가 배출한 세계 최고의 석학‘아놀드 토인비(A · Toynbee)’교수의 역
저‘역사의 한 연구(A STUDY OF HISTORY)’중에서도 백미로 곱히는 <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내용은 문명이 무엇이고, 학문이 무엇이
며, 인생이 무엇이냐는 명제를 완전하게 새로 느끼게 한다.
세계의 고대문명의 4대 발상지를 말 할 때면‘황하 유역의 중국문명’이 거론된다.
문제는 남쪽에 있는 비옥한 땅 양자강 유역에서는 문명이 싹트지 않았는데, 왜 하필이
면 일기가 불순하고 토지가 척박한 황하의 유역에서 문명이 싹텄느냐, 하는 이 불가사
이를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도전과 응전>의 논리로 풀어서 자신의 역저‘역사의 한 연
구’를 20세기 최고의 명저로 자리매김하였다.
일기가 온화하고 땅이 비옥한 양자강 유역의 농민들에게는 <도전>해 오는 고통이 없
기에 매양 편하게만 살았다. 씨만 뿌리면 농사는 저절로 되었으니까. 그러나 황하 유역
에서 사는 농민들에게는‘가뭄’,‘ 홍수’,‘ 메뚜기 떼의 습격’등 무수한 <도전>에 지혜
로운 <응전>이 없고서는 살아남기가 어려워진다. 그들은 유실된 농토를 다시 분할하기
위해서‘기하학’의 원리를 터득해야 했고, 천문에 관한 지식이 없이는 불순한 일기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황하유역의 농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연으로부터의 <도
전>에 슬기롭게 <응전>하는 것으로 삶의 질을 높여갈 수가 있었다. 이 과정이 세계 고
대문명의 발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규명한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일약 세계의 문명
비평가로도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호
<도전과 응전>의 이론은 꼭 고대문명의 발상으로만 연결되는가. 아니다. <도전>과 <응전>의 원리는 모든
분야의 인간들에게도 고르게 적용된다. 정치가에게도, 기업가에도, 그리고 우리들 예술가에게도 철저하게 적
용된다.
신시컴퍼니의 대표 박명성이 쓴「뮤지컬 드림」을 읽으면서 위에서 거명한‘아놀드 토인비’교수의
<Challenge and Response>의 논리가 새로운 일에 나선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실감할 수가 있었던 것은 근래에 없었던 기쁨이었다.
- 왜 우리 관객들은 브로드웨이의 30년 전, 40년 전 레퍼토리만 봐야하는 걸까. 뮤지컬의 본고장에서는 지
금도 수십 편의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국내서는 그 소식조차 모르고 있대서야 말이 되
는가.
의문은 쉽게 풀렸다. 정답은 라이센스였다.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얼렁뚱땅 오래된 작품을 무대에 올리
고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 내려버리는 비양심적 관행이 판을 치고 있었다. 의문은 이내 불만으로 바뀌었고 불
만은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을 정당한 저작료를 지불하고 국내
에 들여오는 것이다.
참으로 당찬 도전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저작권을 도용하는 것을 다반사를 여겼던 지난 시대의 몰지각을 지
적하면서 라이센스의 도입만이 정도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더 어렵고 더 고달픈 응전의 길이자 도선의 길로 들
어서기로 한다. 그러나 도전에는 피 눈물을 쏟아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이 고통을 이기는 지혜로운‘응전
(Response)’이 있고서야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저자 박명성은 아직 젊다. 그 젊음이 도전정신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꽤 큰 감동을 받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이 글을 쓴다.
사실 우리 주변은 모든 일을 건성으로 알고, 건성으로 처리하는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중에서도‘대충
안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정도로 착각될 정도다. 항용 쓰고 있는 언어도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보통
PD라고 일컬어지는‘프로듀서’라는 용어도 실제로는 정립이 되지 않은 채 애매하게 남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
의 현실이다. 방송국에서는 항용 연출자를 PD
라고 하지만, 설사 그들이 기획제작에 관한 일에
관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호칭이다. 영화나 연극 쪽에서 말하는 기
획, 제작자라는 개념도 애매모호하게 사용되고
있 다 . 프 로 듀 서 (Producer), 프 로 듀 싱
(Producion), 프로덕션(Production)이라는 말
이 뒤범벅이 되어 사용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 한다면 저자 박명성은 이 책을 통하여 프로
듀서가 해야 할 일, 짊어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가
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의상, 박물관에서부터 패션쇼, 이
집트 왕궁에 이르기까지 순간적으로 바뀌는 무대
세트의 장면전환은“역시 디즈니구나”라는 찬사
를 받기에 충분했다. 예술과 과학의 화려한 만남
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적 뮤지컬의 흥행이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다>는 공연계에 많은 질문을 던져준 뮤지컬일 것이다. 장장 8개월의 장기공연이 도중하차
없이 지속될 것인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우리 배우들이 소화할 수 있을까. 150억 원
이 넘는 제작비를 과연 뽑을 수 있을까. 가수 옥주현의 파격적 발탁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것인가.
많은 소문과 억측, 그리고 별의별 루머들이 <아이다>에 대한 궁금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
다. 나는 <아이다>공연에 뿌듯함을 느꼈다. 공연을 관람한 모든 사람들이 만족스런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가 해야 할 일, 프로듀서의 소임이 무엇인지를 체험적으로 그리고 명료하게 밝혀 놓고
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프로듀서의 역할이 분명치가 않았던 우리의 현실에는 아주 귀중
한 문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뮤지컬과 관련된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썼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하
게 되었다.
나는 글을 써서 입에 풀칠한 지가 어언 반백년이나 된다.
그러자니 그 간에 읽었던 책들도 만만치 않다는 자부심도 있다. 도도한 강물과 같이 흘러가는 문
장과 만나면 그 물결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싶었고, 잔잔하게 물결치는 감동을 맛보게 되면 잠시
움직이지 못하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도 있다. 그런가하면 기교만 넘쳐서 내실 없는 글과 만
나면 냉큼 책장을 덮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이 책의 저자 박명성은 문필가가 아니다. 그런데도‘뮤지컬 드림’은 좀처럼 내 손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물론 위에 적을 소감처럼 내가 미처 몰랐던 일을 일깨워주는 내용도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문장이 너무도 진솔하여 손을 뗄 수가 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아름다운 책‘뮤지컬 드림’을 에세이 형식으로 씌어진 <보고서>로 분류하지만, 그 문장의
진솔함과 솔직함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거창한 수사를 거부하면서도 우리의 삶을 진솔하게 또 아름
답게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 공연이 끝났다. 환호, 기립박수,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감동이 그동안의 고생을
어루만져 주었다. 극단식구들도 훌쩍훌쩍 눈물을 흐렸다. 서로 얼싸 안기도 했다. 관객들의 감동,
나의 감동, 식구들의 감동, 모든 제작진의 감동. 이런 뜨거운 감동 때문에 이 어려운 일을 마약에 중
독된 사람처럼 계속하는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작업인가. 이것이 내가 여전히 뮤지컬을 하는 이유다.
뮤지컬 풍토가 척박했던 이 땅에서,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뒤집어 엎으면서, 새로운 뮤지
컬 풍토를 만드는 참 된 프로듀서의 길을 외롭게 걸어 온 저자 박명성이 이룩한 도전정신과 진솔하
고 아름다운 이 고백이 영원히 그의 작업과 함께 이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