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부단장
히말라야 산 남쪽에 샤카족의 왕인 숫도다나왕과 왕비 마야부인은 결혼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깊은 잠이 든 왕비는 여섯 개의 이빨을 황금으로 치장한 거대한 하얀 코끼리가 허공에서 내려와 옆구리로 들어오는 신비한 꿈을 꾸었습니다.
잠에서 깬 왕비는 왕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왕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바라문과 선인들은 한목소리로 답하였습니다.
“경하드립니다. 태몽입니다.”
국사 마하나마(Mahanama)가 앞으로 나와 설명하였습니다.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지고 일곱 부위가 땅에 닿는 흰 코끼리는 잠부디빠를 통일할 전륜성왕만이 가질 수 있는 보배입니다. 왕비께서 전륜성왕이 되실 왕자를 잉태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왕에게 왕비의 회임은 더없는 경사였으며 숫도다나왕은 네 성문에서 무차회를 열어 굶주린 이들에게는 음식을,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는 의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회임을 하고도 왕비는 몸이 무거워지거나 피로를 느끼는 일이 없었으며 걷고 서고 앉고 눕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며 도리어 나날이 밝아지고 온화해지는 왕비의 얼굴만 보면 오래 앓던 사람도 병이 나을 정도였으며 나라 안팎으로 평화의 기운이 맴돌고 비바람도 순조로워 백성들은 더없는 경사라며 축복하였습니다.
해산할 날이 가까워지자 숫도다나왕은 꼴리야로 향한 도로를 정비하고 향기로운 꽃으로 길가를 단장했으며 왕비는 까삘라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며 노래와 향기가 넘치는 길을 따라 아버지 안자나가 기다릴 데와다하(Devadaha)로 향했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에 펼쳐진 사까족들의 마을을 지나온 행렬은 히말라야의 눈 덮인 다울라기리(Dhaulagiri)산이 멀리 보이는 룸비니(Lumbini)동산에 다다랐으며 드디어 꼴리야 땅에 들어섰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완연한 동산에는 온갖 풀과 나무들이 꽃을 피워 향기를 퍼뜨렸고 샘과 연못은 거울처럼 맑았으며 샛별이 유난히 반짝이고 동쪽하늘이 파르스름하게 밝아오며 영롱한 동산에 잠을 깬 새들이 합창을 시작한 기원전 624년 사월 초파일 비단처럼 부드러운 풀잎을 밟으며 가볍게 동산을 거닐던 마야왕비는 한 나무 아래 걸음을 멈췄습니다.
싱싱한 초록빛에 비취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나무는 공작의 깃처럼 화려했고 가벼운 바람에도 천인의 옷처럼 하늘거렸습니다.
손을 내밀어 무지개처럼 드리운 가지 끝을 잡는 순간 바람에 밀리는 배처럼 대지가 흔들리고 구름 없는 하늘에서 붉고 푸른 꽃비가 쏟아졌으며 왕비는 문득 산기를 느꼈고 놀란 시녀들이 서둘러 나무 주위로 장막을 치자마자 왕비는 산통도 없이 선 자리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사자처럼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내 오직 존귀하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三界 내 마땅히 안온하게 하리라.
아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레바퀴만큼 큰 연꽃이 땅에서 솟아올라 아기 발을 받들었으며 천지가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가 밝게 빛났고 사방에서 몰려온 천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홉 마리의 용이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을 뿌려 아기를 목욕시켰으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쏟아졌습니다.
왕비의 출산 소식은 곧 까빌라로 전해졌고 숫도다나왕은 위엄을 갖추고 룸비니로 달려왔으며 수많은 왕족과 대신들의 축복 속에서 숫도다나왕은 아기를 안아들었습니다.
아기의 피부는 솟아오른 태양처럼 황금빛으로 빛나고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일어설 듯 힘이 넘쳤으며 긴 눈매의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습니다.
숫도다나왕은 기쁨을 숨기고 바라문과 선인들을 초청해 조심스럽게 왕자를 내보였습니다.
“왕자의 상호와 운명을 살펴주시오.”
꼰단냐·락카나·라마·다자·만띠·수야마·보자·수닷따 등등 여덟 바라문이 왕자의 상호를 살폈으며 오래도록 상의한 바라문들이 두 손 높이 왕자를 받들고 숫도다나왕 앞에 나섰습니다.
“큰 경사입니다. 왕자님의 몸에는 평평한 발바닥에 수레바퀴 문양, 천개의 바퀴살에 선명한 테와 바퀴통, 푸른 연꽃 같은 눈동자, 정수리에는 상투처럼 살이 솟았으며 이와 같이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상호가 빠짐없이 갖춰져 있습니다. 게다가 왕족으로 태어나셨으니 분명 무력을 쓰지 않고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전륜성왕이 되실 겁니다.
이제 인류는 칼과 창으로 서로를 죽이고 서로 상처받는 일을 그치게 될 것입니다. 왕자님은 어떤 목적이든 다 성취할 것입니다.”
여덟 바라문은 놀라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찬탄하였습니다.
숫도다나왕은 늦은 나이에 왕자를 얻은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더군다나 전륜성왕이 된다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아기의 두 발에 예배하고 두 손으로 왕자를 받아 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복을 지었기에 이리도 훌륭한 아들을 얻었을까. 이 아이는 분명 원하는 바를 모두 성취하리라.’
“왕자의 이름을 싯닷타(Siddhattha)라고 하리라. 나의 아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게 하리라.”
기쁨도 잠시 사까족과 꼴리야족의 웃음과 노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왕자가 태어난 지 칠일 만에 어머니 마야왕비는 인간 세상에서의 짧은 생을 마치고 도리천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맞이한 숫도다나왕에게 사꺄족 장로들이 다가왔습니다.
“왕이시여, 왕자님을 키울 분은 마하빠자빠띠(Mahapajapati)가 적당합니다. 이모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 못지않습니다. 자애로운 마하빠자빠띠라면 왕자님을 깊은 사랑으로 보살필 것입니다.
숫도다나왕은 왕자를 품에 안은 마하빠자빠띠와 함께 카삘라로 발길을 돌렸으며 왕이 왕자와 함께 돌아온다는 소식에 사꺄족은 거리로 달려 나와 꽃과 음악으로 환영하였습니다.
성으로 들어서기 전에 성문 앞 큰길가에는 온 나라 사람들이 예배하고 받드는 사당이 있었으며 왕은 여러 신하와 바라문들의 권유로 신들의 축복을 받기 위해 왕자를 안고 사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당에 모셔진 신상神像들이 일시에 고꾸라졌습니다. 불길한 징조일까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왕에게 국사가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놀라지 마소서. 낮은 이는 감히 높은 이의 예배를 받지 못합니다. 신상들이 스스로 아래로 내려온 걸 보면 왕자님은 분명 신들보다 높은 덕을 지닌 분입니다. 왕자님은 하늘 가운데 하늘이십니다.”
한편 히말라야 깊은 숲 속에서 선정에 들어있던 선인 아시따(Asita)는 천인들의 소란에 깜짝 놀랐습니다. 신들의 왕인 제석천을 비롯해 도리천의 신들이 웃옷을 벗어 들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으며 아시따는 경의를 표하고 신들에게 물었습니다.
“수메루 꼭대기의 신들이여, 아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도 이렇게 온몸의 털이 곤두서도록 기뻐하진 않으셨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손뼉을 치고 악기를 두드리던 신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더할 수 없는 지혜와 복덕을 갖추신 분이 룸비니 동산에서 사꺄족 숫도다나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늘 위 신들과 하늘 아래 인간세계에서 가장 윗자리에 계신 분, 가장 높으신 분, 모든 생명체 가운데 가장 존귀한 분, 머지않아 그분은 뭇 짐승의 왕인 용맹스런 사자가 포효하듯 법륜을 굴리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인간세계에 커다란 이익과 안락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신들의 찬탄을 들은 아시따는 급히 인간세계로 내려와 숫도다나왕의 궁궐로 달려갔으며 왕은 아버지인 시하하누의 제사장이자 자기의 스승이기도 했던 아시따를 정중히 맞이하였습니다.
“선인이여 무슨 일로 급히 오셨습니까?”
“왕자님은 어디 계십니까, 저도 뵙고 싶습니다.”
다급한 목소리에 숫도다나왕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마 잠이 들었을 겁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왕자님은 오랜 세월 잠을 자지 않은 분입니다. 항상 깨어 있을 것입니다.”
잠시 후 마하빠자빠띠가 아기를 품에 안고 나왔으며 아기를 받아 안은 아시따는 형형한 눈빛으로 찬찬히 상호를 살폈으며 말없이 아기를 마하빠자빠띠의 품에 돌려주었습니다.
잠시 후 아시따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렀으며 선인의 눈물에 놀란 숫도다나왕이 물었습니다.
“왕자에게 큰 위험이라도 닥치는 겁니까?”
아시따는 왕자의 두발에 공손히 예를 올리고 말하였습니다.
“왕자님은 가장 높은 분, 인간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입니다. 왕자님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연민하여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릴 것이며 왕자님의 청정한 행은 온 세계에 널리 퍼질 것입니다.”
잠시 고개를 숙인 아시따가 말을 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살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왕자님이 최고의 진리를 설하시기 전에 저는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견줄 수 없는 지혜와 자비의 힘을 갖추신 분의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는 건 너무나 큰 불행입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궁을 나온 아시따는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 조카 날라까를 불러 말했습니다.
“먼 훗날 누군가의 입에서 ‘세존’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바른 깨달음을 얻어 진리의 길을 가는 이가 있다’는 소문이 들리거든 주저하지 말고 그곳으로 찾아가거라. 선인 가운데 으뜸가는 선인인 그분께 예배하고 최상의 지혜와 해탈을 묻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청정한 삶을 실천하라. 나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묘법연화경 여래 수량품
그 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보살과 일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께서 진실하게 밝히시는 말씀을 듣고 이해하라.
미륵보살이 선두가 되어 부처님께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하고 원하옵나니 그 진실을 설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이 기필코 부처님 말씀을 믿고 받들겠나이다.
너희들은 여래의 비밀한 신통력을 자세히 들으라.
모든 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들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석씨의 왕궁을 나와 가야성 가까운 도량에 앉아 위없이 높고 바른 완전한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선남자들아, 내가 성불한 지는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백 천 만 억 나유타 아승지겁 그 이전이니라.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설법하여 교화했고 또 다른 백 천 만 억 나유타 아승지 국토에서도 중생을 인도하여 이익케 하였느니라.
선남자들이여, 여래는 모든 중생들이 작은 법을 좋아함으로 덕이 엷고 업장이 무거운 것을 보고 저들을 위해 나는 젊어서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성불한 지는 이와 같이 오래이고 멀지만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해서 부처님 도에 들게 하려고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선남자들이여, 여래가 설한 경전은 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니라.
너희들 지혜로운 이 의심 내어 품어두지 말고 큰 죄업 길이 끊을지니 불타의 가르침은 오직 진실하니라.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나서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믿고 있지만은 실은 부처님이 되신지 벌써 한없는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없이 긴 세월 동안 부처님은 항상 이 세상에 상주하시고 영원의 부처님으로 모든 중생의 근기를 아시고 모든 방편을 다하여 구제하러 오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영원의 법속에 거짓은 없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