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그 동안 필자는 선불교를 중심으로 해서 독자님들께 말을 걸어왔다. 참선 수행을 하시는 ‘출가 불자’가 글을 쓰셨더라면 우리들의 인생살이에 필요한 실질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겠지만, 직업이 대학의 철학교수이다 보니 그 방면에 국한하여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월간 『붓다』 편집실에서 필자에게 선불교 방면의 학술적 글을 쓰라고 집필 의뢰를 한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번 호에서는 지금까지와의 흐름에서 벗어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필자 자신의 철학적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철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은 그 학문적 태도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현재에 주목하여 철학하기를 하는 부류이고, 둘째는 과거에 주목하여 지나온 철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부류이다. 이런 분류법에 따라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불교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부류이고, 둘째는 역사 속에 지나간 과거의 불교의 퇴적물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둘 모두 가치 있는 일이며 상호 보완적이다.
두 부류로 나누는 것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지금 여기에 병든 환자를 치료하는 의학도가 있는 반면, 이러한 치료를 해온 역사를 연구하는 의학도도 있다. 두 쪽 모두 필요한 일이지만, 이 글을 쓰는 필자는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철학사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기보다는 지금의 철학하기를 높이 친다. 불교의 지난 역사를 연구하는 문헌연구자 내지는 불교역사학자가 되기보다는, 지금을 살아가는 불교철학자가 되고 싶다.
2.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필자는 지금을 살아가는 불교철학자의 입장에서 불자들은 어떻게 이날을 맞이해야 할지 그 심정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중국의 영가 지방에 사신던 현각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그 분께 남기신 책 중에서 『증도가』가 오늘에 전한다.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窮釋子口稱貧 궁석자구칭빈
實是身貧道不貧 실시신빈도불빈
貧則身常披縷褐 빈즉신상피루갈
道則心藏無價珍 도즉심장무가진
이상을 우리글로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가난한 부처님 제자들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빈도貧道’라 칭하는데
실은 몸이 가난한 것이지 도가 가난한 것은 아니다.
‘빈貧’이란 몸에는 누더기 옷을 걸친다는 뜻이고
‘도道’란 마음에 값진 보배를 간직하고 산다는 뜻이네.
출가 불자, 즉 스님들이 자신을 남에게 가리킬 때에 자신을 낮추어서 ‘빈도’라고 표현한다. 이때에 ‘貧’은 ‘가난할 빈’인데, 무엇이 가난한가 하면, 물질적인 면에서 가난하다는 뜻이다. 옷은 검소한 옷을 입고, 의식주에 있어 항상 소박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품은 뜻은 이루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다는 뜻이다. 어떤 마음을 지녔느냐하면, 중생을 구제하려는 큰 뜻이다. 또 마음속에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간직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귀하다.
영가 현각 선사께서 이런 말씀을 할 때에는 특히 ‘출가 불자’ 즉 승려들을 대상으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역시 ‘재가 불자’도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면서 ‘출가 불자’와 ‘재가 불자’ 모두 우리가 과연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또는 청빈하게 살면서) 마음에 도를 간직해야 한다. 재가 불자의 경우라면, 부자로 살면 좋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설사 그렇지 못해서 가난하게 살더라도 구차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남에게 신세지고 생활비를 빌리러 다녀서는 안 된다. 현대 자본사회에서, 생활비를 남에게 의존해서 산다면, 그것도 반복적으로 그런다면, 그런 가난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남에게 빌지 않고 살 정도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적은 역시 도덕적인 삶, 자신의 인격의 완성이어야 한다. 재가 불자는 이런 덕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부자로 사는 것이 죄악은 절대 아니다. 문제는 부자로 살면서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도를 마음에 품지 않는 재가 불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출가 불자의 경우를 보자. 출가 불자는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재자 불자들이 땀 흘려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가는 집단이다. 이런 집단을 ‘비구(比丘 Bhikkhu)’라고 하고, 한자로는 ‘걸사乞士’라고 한다. 걸식을 하면서 남의 밥을 동냥해먹고 살지만 그가 추구하는 삶은 선비와 같다는 뜻이다. 이런 정신을 계승하는 출가 불자들은 반드시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출가이건 재가이건을 막론하고, 불자들은 반드시 마음에 위에서 말한 도를 품고 살아야 한다.
3.
우리가 배우기로서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한 평생 제자들에게 전하신 말씀의 핵심은, 각자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제 인생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원천적으로 자신에게 갖추어졌다는 것이다. 인생은 절대자에게 빌어서 개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개개인이 모인 공동체가 하면 더더욱 효과적이라는 말씀이다. 개인의 업과 공동체의 업으로 세상을 살기 좋게 가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럴 수 있는 능력이 개개인에게 원천적으로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희망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출자 공동체를 만들어 그 속에서 그런 희망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 석가모니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면서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반성해 봅시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출가 불자님들 과연 행복하십니까?
돈 벌이 하면서 살아가는 재가 불자님들 과연 행복하십니까?
출가와 재가가 서로의 행복 추구를 위해 협력하십니까?
출가와 재가 불자가 힘을 합쳐 세상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십니까?
재가 불자가 출가 불자를 돕는 일은 저들에게 돈을 비롯한 물자를 제공하는 일이고, 출가 불자가 재가 불자를 돕는 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쳐주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두 집단은 힘을 합쳐야 한다. 그리하여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교를 알리고 그들을 불교 공동체 속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 설혹 아직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행복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과연 우리는 부끄럼 없는 불자의 길을 가고 있는가?
불교 안 믿는다고 다른 종교 차별하고,
재가가 출가를 불신하고,
출가가 도심을 잃고,
재물에 눈 어두워 도가 뭔지 모르고,
재가가 자립 경제를 이루지 못하고,
출가가 청빈하게 살지 못하고,
종교 집단 만들어 안 믿는 사람 무섭게 하고,
내 종교로 네 종교 배척하고,
종교를 빌미로 정치하고,
급기야 싸움하고 전쟁한다면,
부처님 오셨다는 걸 누가 믿겠으며,
예수님 부활하셨단 말 누가 믿겠는가?
anand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