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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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합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삼십년 넘게 대중포교의 현장에서 불자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남은 시간도 그렇게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자들에게 언제나 거사님과 보살님이라 불렀지, 신도님이라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신도님이 잘못된 표현은 아닙니다. 믿을 신信자, 무리 도徒자입니다.
신도는 공동체이니, 잘못된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정감이 들었습니다. 신도님이라 부르면 꼭, 그 사찰에 속박되게 하는 듯 했습니다. 종교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참 자유를 지니기 위함입니다.
어느 사찰에서 만나더라도 서로가 반가워할 수 있는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소풍 다니던 절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다니시던 사찰도 있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절에서 맺었던 인연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오신날, 연등불사에 인연 맺었던 절에도 동참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종교이든지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믿음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보시의 공양금은 우리 생활 속에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불자들은 승속僧俗 간에 절에 오면 법당이나 종무소에 들렀다가 가게 됩니다.
법당에서 불보살님 전에 참배를 할 때면, 불전함에 보시금을 넣게 됩니다.
보시금은 근검절약하게 살며 사용할 수 있는 순수한 공양금이어야 합니다.
생활수준보다 과다하거나 인색해서는 보시금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정 부분은 반드시 공양금으로 보시되어야 지혜와 복력이 생길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 같은 소중한 인연의 시간을 통해서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열반경涅槃經』에, “부처님 세상 만나기 어렵고, 바른 법 듣기 어렵고, 두려운 마음 일으키기 어렵고, 좋은 나라에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 몸 받기 어렵다.”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두려운 마음이란,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삶,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할 것입니다. 좋은 나라에 태어나기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이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서四時節序가 있는 좋은 환경의 국가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시간에 노출되어진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겪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세상을 떠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은 ‘여몽환포령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입니다. 꿈과 같고 번갯불 같고 환영 같은 세상임을 알아차렸으면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네 인생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인연 맺었던 이가 며칠 전에, 몇 달 전에,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분상에서 대답 하였습니다. 그 중 한 제자가 “부처님이시여, 인생은 호흡 하나에 있나이다.” 하니, “그러하니라.” 하셨습니다.
인생의 생명줄은 호흡 하나에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레코드판 줄이 몇 줄이냐?’고. 한 줄입니다. 한 줄로 이어져 있어야 노래가 몇 곡이라도 반복되지 않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 태중에서 열 달 동안, 성장하다가 세상에 나와 탯줄이 잘리는 순간부터 숨을 쉬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탯줄에 의지하여 음식을 공급받고 숨도 쉬었습니다. 그래서 태란습화胎卵濕化 중에 태중胎中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 호흡의 들숨 날숨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들숨 날숨으로 유지되다가 그 숨을 멈추게 되는 순간, 우리들의 목숨은 마감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미국에 있었습니다. 미국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정우가 구룡사에 없었다고 하여 죽은 것은 아닙니다. 사바娑婆에 머물다 인연이 다하면 떠나야 되지만,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가까운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런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다만 안목이 없어서 못 볼 뿐입니다. 그러나 깊은 인연을 가지고 살았던 이들은 서로 느끼며 살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착으로부터 마음이 여유로워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과 자비로 항상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잘 대해주며 살았으면 합니다.
‘몽리몽몽육유취夢裏夢夢六有趣요,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이라 하였습니다. 꿈속에서 꿈인 줄 알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인데, 우리들의 인생은 꿈속에서 꿈인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잠 잘 땐 꿈인 줄 모릅니다. 더러는 꿈속에서 꿈인 줄 알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꿈으로 인식하는 시간보다 현실로 착각하는 시간적 횟수가 더 많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이든 꿈이든 호흡하고 있는 그 시간들을 긍정적으로 유지하며 잘 살아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생각, 그것이 우리의 삶에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야말로 참된 부처 성품을 잊지 않는 일입니다. 도를 이루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유마경維摩經』에 보면, “생사生死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거기 물들지 않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세계(열반)에 있으면서도 생사의 바다(生死大海)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보살菩薩의 행이다.” 하였습니다.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서 솟아, 물속에 있으면서도 그 물이 연잎이나 연꽃을 젖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중생을 사랑하면서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지 않는) 애정愛情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행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욕심이 적은 것과 만족함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욕심이 적다는 것은 “구하지도 않고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욕심이 적은 것이요, 만족함을 안다는 것은 적게 얻었을 적에 후회하거나 뉘우치지 않는 것이 만족함을 아는 것이다.” 하신 것입니다.
얼마 전,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과 대만에 갔을 때 90이신 성운대사님께서 우리 일행들에게 ‘정우스님은 30년 넘게 친한 벗으로 지낸다.’고 하셨습니다. 성운대사님은 12살에 출가하여 80여 년을 승가에 머무르고 계시는 큰 선지식이십니다.
스님을 뵐 때마다 ‘정우스님과는 부자지간 같다.’고 하시는 참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30년 넘는 인연의 친한 벗’이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본사 주지 스님들이 불광산을 방문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홍콩에서 법회 중에 오셨습니다. 우리들에게 긴 시간의 만남을 나누어 주시고 그날로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셨지만,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셨습니다.
그러실 때마다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배워야 할 자비하신 연민심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부처님께서 사바의 인연을 마감하시는 길에, 외도外道의 자존심 때문에 수백리길을 따라 오면서도 가까이 오지 못함을 아시고 그를 불러 마지막 제자로 삼으셨던 자비행과, 달라이라마 스님을 우리 후학들은 닮아가야 할 수행의 덕목德目입니다. 우리들도 후학들에게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망초심不忘初心, 오매물망寤寐不忘. 처음 마음 낸 그 마음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래, 그래’ 공감하며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들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계산되지 않는 일들입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답이었는데, 머리로 생각하다가 오답誤答을 내는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번뇌의 개미집과 벌집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단한 삶은 다양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관심과 배려로 따뜻한 어울림을 가지면서 이웃도 살피고, 가족도 살피고, 절에 나오는 불자들은 어울림 속에 힘들어하는 이웃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고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부처님오신날에 이웃들과 동사섭同事攝하며 불심佛心 가득한 불종자를 움으로 틔우는 길목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