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 김주현_시인
새벽 7시, 오늘은 동작구민건강걷기대회가 있는 날이다.
벌써 몇 년 째 동네 행사로 지속 되고 있는 건 알지만, 그건 아내가 지역의 일을 하면서 의례 참석하는 행사로만 알았기에 공무원이나 통반장, 부녀회 임원들이나 관변단체의 행사로만 알고 있어서 나는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 것이다. 출발하기 전에는 단순히 조금 걷다가 오면 되는 걸로 알았는데, 아뿔싸!
그 넓은 국립 현충원은 비가 내리는 이른 새벽인데도 인파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옆으로는 서초구를 동쪽으로 하고, 관악구, 영등포구, 강 건너 용산구와 이웃한 지역으로, 말하자면 강남이라는 동네와 연결고리를 하고 있으면서 강북 취급을 받고 있는 곳이다.
그렇긴 해도 서울특별시에 종합대학교가 3개씩이나 있는 구가 아닌가? 중앙대학교, 숭실대학교, 총신대학교 ….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냈던 충절의 영혼이 잠든 지역 또한 동작구다. 바로 노량진의 사육신묘와 동작동의 국립현충원에 국가의 충신들과 국가유공자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
또, 서울에 환승역이 세 개 씩이나 있는 동네가 있을까?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 지하철 7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이수역, 지하철 9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동작역(이건 공사 중이지만….) 여기가 바로 동작동과 사당동이다.
이렇게 교통이 편리하고 사통팔달의 요충지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늘 마음속에는 자긍심이라든가, 자부심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아오진 않은 것 같아서 오늘은 조금 씁쓸하다.
길 건너 서초구와 집값과 학군문제만 나오면 어깨가 움츠러들고, 부와 권력과 기득권의 상징 같은 강남에 붙은 가난한 동네(?)의 시발점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비를 함초롬히 맞은 현충원의 숲은 신록에 쌓여 깨끗하고 아름다운 초여름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환희와 건강과 평화가 활짝 피어 있고, 모두 만족한 표정으로, 보는 이의 마음도 행복하게 한다. 국립 현충원 경내를 한 시간쯤 땀을 흘리며 걷기대회를 마치고 나니 국방부 의장대와 군악대의 사열과 시범이 있었다. 그건 국군의 날이나 외국 원수가 방문했을 때나 보여줬던 행사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육군의 듬직하고 무게가 느껴지는 행동과 해군의 깔끔하고 세련된 동작과 해병대의 절도 있고 용맹한 자태와 공군의 늠름하고 믿음직한 태도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의장대의 절도 있고 화려한 시범과 군악대의 장엄하고 단합된 연주가 이른 새벽에 비를 맞으며 이곳을 찾은 나에게 커다란 안도와 보람을 한 아름 안겨 준다. 믿음직한 내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 지금 우리를 지키고 있다는 신뢰와 함께….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아늑한 현충원의 아침은 나에게 한없는 자부심과 긍지를 선물해 주었다.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은 한 시간과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인 군인들이 보여준 절도 있고 화려한 시범이 이른 새벽에 이곳을 찾아 온 나에게 커다란 믿음을 심어 주어 그 동안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부끄러움도 모두 씻어 준 것 같아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6월은 호국영령의 달이다. 6.25전쟁부터 베트남 참전용사들, 수많은 작전과 훈련 중에 사망한 우리의 젊은 피들이 미쳐 꽃으로 피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곳이다. 매년 6월이면 현충일이다, 호국영령의 달이다, 해서 잠시 매스컴에서 떠들다 말고, 모든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출정식 비슷한 의식으로 참배를 하지만 진심으로 호국영령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고마움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요즘은 국립현충원이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외국의 예처럼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콘크리트 담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총을 든 군인들이 보초를 서던 담장을 헐고, 우선 사당동, 흑석동, 상도동 쪽으로 3군데의 문을 개방하여 새벽 운동을 즐기는 지역 주민들에게 휴식과 건강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완전히 담을 헐고 보기 좋은 철망 펜스로 바꾸어 한강이 보이는 조망권까지 제공한다고 한다.
이제 국립현충원은 어둡고 침침한 묘지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사계절 내내 꽃과 나무들이 화려한 장식을 해주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신을 할 것이다.
너무 심한 유원지 같은 분위기로 변신하지 않는다면 시민의 공원으로, 휴식과 건강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거기가 바로 역사의 충절이 잠들어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동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