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시인

얼마 전 ‘빽’을 좀 써서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 다녀왔다. 절집에 가는데 무슨 ‘빽’까지 썼느냐고? 봉암사는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절집이기 때문이다. 조계종에서 스님들의 전문 수행 공간으로 정한 탓에 봉암사는 일 년에 딱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음력 사월 초파일)에만 일반인들에 개방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중생이 어리석게 ‘빽’을 좀 썼다고 나무라는 것일까? 산문(山門)에 들어서자마자 송화가루가 사정없이 눈과 코와 목구멍을 공격했다. 눈에서는 쉼 없이 고춧물이 쏟아지고, 콧구멍에서는 줄줄줄 점액질이 흐르고, 목구멍에선 떡방아 치듯 계속 기침이 올라왔다.

그래도 난생 처음 희양산과 봉암사의 속살을 맛보게 해준 ‘빽’은 고마웠다. 송화가루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희양산과 봉암사의 속살 맛은 막 데쳐낸 두릅나물처럼 은근하고 깊었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로 맛있는 부위는 희양산과 봉암사가 내장하고 있는 상징이었다.

희양산과 봉암사에는 크게 세 가지 상징이 시계(時計)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첫째는 앞에 잠시 언급한 것처럼 봉암사는 일 년에 딱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음력 사월 초파일)에만 일반인들에게 산문을 연다는 것이다. 1982년 6월 대한불교 조계종단이 특별수도원으로 정해 스님들의 참선 전용 공간으로 만든 탓이다. 이것은 봉암사의 가장 큰 상징이기도 하다. 천주교에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는 종신수도원이 있듯 한국불교는 봉암사라는 특별수도원이 있어 어떤 비바람과 후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버팀목과 주춧돌을 단전자리에 확보하고 있었던 셈이다.

봉암사에서 두 번째로 읽어내야 할 상징은 봉암사를 품고 있는 희양산이다. 희양산 역시 우리나라의 척추인 백두대간의 단전자리에 높이 998m의 거대한 바위산으로 우뚝 솟아 있다.

산 이름에서도 상징의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한자로 희양산은 ‘햇빛 曦’, ‘양기 陽’자를 쓴다. 그래서 그러리라. 멀리서 보면 희양산은 양양한 햇빛 아래 꼿꼿하고 육중하게 발기한 틀림없는 남근(男根)이다.

이것은 봉암사의 창건 설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신라 헌강왕 5년(879) 지증국사는 이곳을 돌아본 뒤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며 봉암사를 일으켰다. 발딱 일어선 남근 같은 육중한 바위산을 보며 지증국사는 스님들이 아니면 그 양기를 제압할 힘이 없음을 알고 이곳에 절을 지어 불꽃같은 스님들의 탯자리로 삼았던 것이다.

그 상징의 힘은 대단했다. 그리하여 한국 불교가 늪에 빠졌을 때마다 ‘봉암사 결사’ 등 그 상징의 힘으로 늪을 정화하고 그 늪 속에서 한국 불교가 남근처럼 다시 발딱 일어서게 해주었다.

그 때문인지 봉암사 일주문엔 네 개의 남근 기둥이 있다. 높이는 일주문의 허리께인데, 속인의 눈엔 영락없는 남근이다. 그것은 아마 봉암사를 찾는 스님들에게 그 양기를 제압할 힘이 없으면 아예 태고선원(봉암사 선방)에 들지도 말라는 강한 메시지가 아닐까.

봉암사에서 세 번째로 읽어내야 할 상징은 대웅보전, 금색전(대웅전), 조사전, 산신각 등 어느 전각에도 불전함이 없다는 것이다. 불전함이란 무엇인가. 복전함이다. 불교라는 복밭에 시주하고 복을 받아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복밭에 복과 바꿔갈 돈을 넣을 자루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평소에 산문을 개방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 때나 참배객을 받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갈수록 물질에 혼탁해지는 불교 혹은, 한국 종교계에 대한 자성과 경계의 상징으로 읽힌다.

나에게는 일차적 의미보다는 이차적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나의 그런 생각이 맞는다면 한국 불교와 스님들은 물론 다른 종교계의 지도자들도 일 년에 한 번쯤은 반드시 봉암사 법당에 가서 복전함을 없애듯 물질로 염색된 몸과 마음을 깨끗이 빨고 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는 종교로서의 불편함을 넘어 편안과 충만과 염결을 온 국민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독자는 필자가 왜 봉암사 이야기를 꺼냈는지 짐작했을 것이다. 봉암사는 단순히 종교와 절집으로서의 상징을 넘어 우리의 단전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암사는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먼저, 더 빨리’ 정상에 가닿기 위해 직선의 아우토반을 죽음을 무릅쓰고 질주하는 우리들에게 봉암사는 부처님의 염화미소처럼 소리 없는 소리로 우리들의 질주하는 가슴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봉암사는 그런 우리들을 위해 아름다운 여백과 여유의 곡선 하나를 마련해두었다. 용추동천(龍湫洞天) 계곡이 바로 그곳이다. 봉암사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10여 분쯤 가면 병풍바위에 새겨진 마애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이 나타나는데, 그 앞 개울물 건너 맥반석 바위가 참으로 기막힌 명당자리다.

그 맥반석 바위에 큰 대자로 누워 느릿느릿 배꼽 숨을 쉬고 있으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찌든 우리들의 허한 단전자리로 새파란 하늘이 쏟아져 들어오고, 양양한 희양산의 양기가 폭포수처럼 떨어져 들어오고, 딱따구리의 해맑은 퉁소소리가 교향곡처럼 흘러들어온다. 거기에 돌돌돌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오탁악세의 어지러운 세상 마음을 정화해준다. ‘빽’을 좀 써서라도 반드시 한번 희양산 봉암사를 둘러보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참고로 절집에서 최고의 ‘빽’은 당연히 절집 사람들이다. ‘빽’도 그렇게 좋은 쪽으로 쓰면 커넥션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양약이 된다. 그리고 그런 ‘빽’은 부처님께서도 기쁘게 눈감아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