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돈
한의학 박사
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햇살고운한의원 대표 원장
흔히 배가 차다고 하는 환자를 진찰해 보면 두 가지의 경우를 볼 수 있다.
실제로 배의 온도가 내려가 차기도 하고, 정작 본인은 차다고 느끼고 있으나 손으로 만져보면 별로 차갑지도 않은데 자각적으로만 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배가 차다고 호소하는 사람의 수가 계절적으로 겨울보다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여름으로 갈수록 오히려 더 늘어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마 여름철에 의복이 얇아지고 찬 물이나 음료수 또는 참외 수박 같은 생냉물(生冷物)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여하튼 날씨는 점점 더워지는 여름으로 성큼 다가선 것 같다.
배가 차다는 것은 한의학적으로는 생기가 부족하다는 말이고 체온과 상관없이 배가 차다는 것은 심장과 배가 따로 논다는 말이다. 심장 활동이 발바닥까지 잘 출입한다면 우리 몸 어디에도 차갑다, 시리다 하는 느낌이 있을 리가 없다. 쉽게 말해서 혈액순환이 잘 안되면 배가 찬 것이고 잘 되면 배를 비롯하여 손발까지 다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배가 차가워지는 원인으로는 술을 자주 마시든지 식사가 불규칙하여 위와 장이 약해서 그렇든지, 자연유산이나 소파수술을 자주 하여 자궁이 약해진 경우는 직접적으로 배를 차갑게 한다. 고민, 짜증, 우울증, 초조, 불만 등의 스트레스에 의해서도 배가 차질 수 있다.
또 체질적으로 타고나기를 원래 속이 냉한 체질로 태어날 수도 있다.
배의 기능은 음식물을 먹고 소화시키는 것인데, 배가 차다는 것은 그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봐도 된다.
배가 찬 것은 심장에서 내보낸 혈액이 위장이나 대장으로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기능이 저하된 결과로서, 위장기능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면 음식을 잘 흡수, 소화하여 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배설하게 된다.
그러나 배꼽주위가 차면 그 기능이 저하되어 소화불량증세가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더부룩하며 탈이 쉽게 나고 또한 꾸르륵거리거나 방귀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 이때의 방귀는 냄새가 독한데, 이유는 위장에서 음식이 소화 흡수되지 못하고 부패하여 독한 가스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배가 찬 것 중 특히 아랫배가 찬 것은 하초의 기능에 힘이 빠졌다는 것인데, 남자라면 대장이나 전립선기능과 생식기의 양기가 떨어졌다고 보면 될 것이고, 여자의 경우 자궁이나 방광에 힘이 없다고 봐도 된다.
이렇게 하초에 힘이 빠지면 남성의 경우 소변에 힘이 없거나 배뇨를 하려면 한참 있어야 시작할 수 있고 배뇨 후에도 개운한 느낌을 들지 않으며 속옷에 오줌을 몇 방울씩 묻히는 경우도 흔하다. 또 스태미나가 떨어져 성욕이 저하되거나 발기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불임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는 예가 아주 많으며 생리불순 생리통 냉대하 난소 난관 같은 자궁 부속기 질환 방광질환 또는 하체가 자주 붓고 두꺼워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배를 따뜻하게 덥혀주고 활동을 시키고 해야 장부의 기능이나 기타 생식기의 기능이 개선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배가 차게 느껴진다고 무조건 다 속까지 냉한 것은 아니다.
체질에 따라 다르지만 속이 냉하면서 배가 찬 경우가 있는가 하면 속은 열이 많은데 겉에는 찬 기운이 싸고 있어서 배가 차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배가 차다고 해서 무조건 뱃속을 덥히는 약을 복용하게 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부작용이 일어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속에 열이 있으나 겉으로만 배가 찬 사람에게 인삼 꿀 부자 같은 약재를 복용하게 한다면 오히려 복통 설사 구토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므로 단순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며 한의사의 진단을 받아 정확하게 평가받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