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현
방송작가, 자유기고가
숭례문이 타버린 요즘 문화재 보호운동을 하자며 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안하는 것보다는 낮지만, 우리나라 국보1호 숭례문이 타기 전에 했으면 더 좋았을 걸….
그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현장에서 중학생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재잘재잘 떠는 아이들이 귀여워‘톡 건드려 볼까?’하는 장난기가 발동을 했다.
“애들아 너희들 촛불집회 나가니?”
그 질문과 함께 여기저기서 말릴 것도 없이 20여 명의 아이들이 흥분하며 조잘조잘 광우병과 미국 소 수입에 대한 열띤 토론의 장이 즉석에서 만들어 졌다.
‘에구 벌통을 건드렸구나 ….’
그래도 더 장난기가 발동하여 악역을 맡아 보며 말 한마디 더 던져 본다.
“그거 안 먹으면 되잖아.”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벌써 광우병 박사가 되어 있었다. 나의 어린 박사들은 너의 우문에 일침을 가한다.
“안 먹는다고 해결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쓰는 화장품, 마이싱 같은 캡슐의 껍질, 의약품, 햄버거, 떡볶이, 오뎅 등등 소가 안 들어가는 게 없어요. 그리고 저희는 단체급식 하잖아요. 어른들은 안 먹을 수 있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저희는 생존권이 걸려 있어요. 라면의 스프는 어떻고요. 뭘 먹고 살지 막막해요.”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열사로 만든 한국의 광우병 사태. 4.19 때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살기위해 촛불집회에 동참한다고 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에도 이런 열사들은 없었는데….
요즘처럼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한심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정권을 차지하겠다고 아귀다툼을 하며 싸울 때도, 경제가 땅바닥을 치는 현국에서 만원을 가지고 나가도 과자 몇 봉지 밖에 사들고 올 수 밖에 없는 우울한 현실에도, 이권을 위해 속이 보이는 거짓말을 할 때도, 속아줄 때도, 교육정책이 들쑥날쑥 하여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때도….‘ 누가 정치를 해도 똑같지 뭐!’하며 외면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혼자말로 욕한번 해주고 털어 버렸었다. 그런데 광우병이 발병될 우려가 있는 미국산 소를 수입하여 우리 국민들에게 먹인다고 한다. 국민의 목숨이 10~20년 후에는 전쟁이 없는 상태인데도 죽어 나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니 운모설이 나돌 수밖에…. 세상이 집회를 권하고 있다.

                                                               미국 소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모습
어쩌다 집회에 참석하다보면 시위에 참석하는 국민들의 힘과 에너지가 놀랍고 또, 이렇게 월드컵 이후로 국민들을 단합하고 한마음로 한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위정자에게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요즘은 회식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코드로 정착되는 단계까지 갔다.
공업중생(共業衆生)이라는 말이 있다.
이웃과 나, 자연과 나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자연이 오염되어 가는데 내 생활만 청정할 수 없고, 이웃이 고통에 신음하는데 나 혼자만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숱한 이웃과 더불어 있으며, 그러한 이웃들이‘함께 만들어 가는 세계’가 공업중생의 세계….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도 동업중생의 마음으로 본다면 그 잘못 또한 우리가 짊어져야할 업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가 되기까지의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지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참회 없이 다른 이가 참회하기를 바라는 것 또한 욕심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생명유지를 위해 고기를 먹고 있을까? 아니다. 요즘은 그것을 넘어서 과하게 고기를 먹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욕심으로 고기를 먹고, 쾌락으로 미국 소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모습 고기를 먹고, 이기심으로 고기를 먹고 있다.
어떻게 보면 광우병도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또한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 진 것이 광우병이다.
소는 원래 초식 동물이라 풀을 먹이면서 천천히 키워야 하는데. 인간들이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이고 빨리 키우려고 해서 생겨난 병이다.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인간이 죽어 가는 형국이 되었다. 또한 광우병에 걸린 소는 바이러스 때문에 병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병이 생기는 것이므로, 600도 이상으로도 튀기거나 굽거나 삶아도 광우병인자는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소뿐만이 아니라. 광우병 걸린 소를 사료로 만들어서 다른 동물에게 먹일 때 그 동물에게도 광우병인자가 100% 흡수되어 그 동물을 사람이 섭취할 경우 인간 광우병이 발생한다고 하니, 자연의 섭리를 어긴 인간에게 그 인과응보가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광우병은 커다랗고 맑은 눈을 가진 우리 누렁이게 고마워 할 줄 모르고, 그들을 가족의 의미보다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며 더러운 환경에서 같은 종족의 내장을 갈아서 먹인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우리에게 주는 응보인 것이다. 고통스럽게 죽은 동물들의 원한이 아무리 깨끗한 포장지로 먹음직스럽게 포장이 되었다고 한들 그 원한 에너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의 모든 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길러진 소가 스트레스를 안 받을 리는 만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주검이 그대로 먹거리로 만들어져 우리 아이, 그리고 내 몸의 한 부분으로 흡수된다고 생각해 본다면 육식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로 똘똘 뭉쳐 동물권까지 박탈당한 소의 스트레스와 원한에 대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헤 보자는 것이다.
저 푸른 초원에서 그림같이 살다가 우리의 식탁으로 온 소를 먹으면 우리의 세포도 행복해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먹여질 소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소도 자신의 몸으로 인해 다른 생명체가 건강해진다면 윤회의 굴레에서 조금 좋은 세상 으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바로 서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다.
세상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노랫말처럼, 동물을 먹거리로만 생각하며 다른 생명체를 배려하지 않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먼저 버려야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 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