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스님
월봉사 주지, 불교텔레비전 백유경이야기 진행
요즘 불교텔레비전을 통해 ≪백유경≫을 강의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어쩜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어요?’
≪백유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항을 극단적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욕심에 극단적으로 눈 먼 사람, 사리분별이 없어 극단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상대를 극단적으로 미워하는 사람….
이렇듯 주위의 풍경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상항에만 고지식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백유경이라는 무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런데 ≪백유경≫을 읽는 사람들은 그 곳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어리석다며 비웃는다. ≪백유경≫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은 까맣게 모른다. 마치 양쪽 거울을 서로 맞닿아 비춰보면 거울 속에는 끝없이 상대편 거울에 반사되어 상이 투영이 되는데,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어 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백유경≫의 무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거기서부터 ≪백유경≫의 성찰은 시작되어야 한다. 내 부모형제가 주인공일 수 있고, 내 이웃과 직장 상사가, 내 친한 친구가, 그리고 내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불교 경전이 엄숙하고 진중하여 일반인들은 쉽게 이에 접근할 수 없는데 반해 이 경전은 부처님 진리는 생활 속에 있다
살다가 어리석은 잘못을 할 때,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모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직접 지적하기보다는 해학과 유머로 웃으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한다.
처음에 ≪백유경≫을 읽을 때는 거의 대부분 세 가지의 느낌과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첫 번째,‘ 어쩜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하며 상대방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생각하고, 두 번째,‘ 혹시 나는 이 주인공처럼 어리석은 짓을 행한 적은 없나?’하며 ≪백유경≫의 주인공과 자신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게 된다. 마지막으로‘나도 어리석은 일을 한 적이 있구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자아반성(自我反省)을 하게 된다.
≪백유경≫은 5세기에 인도의 상가세나(Sa?ghasena 僧伽斯那) 스님이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적 깨우침을 주고자 짤막한 교훈적 우화들을 모아서 편찬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부처님은 진리의 가르침을 각양각색의 개성이 있는 중생들에게 펼치실 때도 그 근기에 맞게 법을 펼치셨다. 어떤 때는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즉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잘 사용하셨다. 이 ≪백유경≫은 당근과 같은 가르침이다.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 회초리를 드는 것보다는 사탕을 주면서 그러지 말기를 당부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면서도 언중유골(言中有骨)식으로 불교의 깊은 사상을 은연중에 깨닫게 한다. 말하자면 출가자나 세속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불교의 진수를 웃는 가운데서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백유경≫은 진실에 계합되는 점을 노린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이 경전이 만들어질 때에는 100가지의 내용이었지만 후세에 이르러서는 그 중에서 두 가지가 없어지고 현재는 98가지만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각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는 인도 논리학과 같은 5단 논법을 쓰거나 일반적으로 쓰이는 3 단 논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단순한 2단 논법, 즉 먼저 비유를 들고 이어서 이를 불교의 교리 중에서 발췌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구성상 아주 간단하면서도 쉽지만 백유경 속에 들어 있는 지혜는 아주 깊다.
그 중‘떡 하나 때문에 도둑맞은 부부’라는 이야기를 통해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대입하여 살펴보자.
옛날 어떤 부부가 떡 세 개를 가지고 서로 나누어 먹고 있었다. 각기 한 개씩 먹고 하나가 남았다. 그래서 서로 약속하였다.
“누구든지 말을 하면 이 떡을 먹을 수 없다.??
이렇게 약속하고는 그 떡 하나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조금 있다가 도적이 그 집에 들어왔다. 도적은 그들의 재물을 모두 훔쳤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한 것이 있어 눈으로 보고도 말을 하지 않았다.
도적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남편 앞에서 그 부인을 겁탈하려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것을 보고도 말하지 않았다. 아내는 곧 '도적이야' 하고 외치면서 남편에게 말하였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어쩌면 떡 한 개 때문에 도적을 보고도 외치지 않습니까."
그 남편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야, 이제 이 떡은 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그들을 비웃었다.
사람들도 그와 같다. 조그만 이름이나 이익을 위하여 거짓으로 잠자코 고요히 있지만 헛된 번뇌와 갖가지 악한 도적의 침략을 받아 선법을 잃고 세 갈래 나쁜 길에 떨어지게 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출세할 길만 구한다. 그것은 저 어리석은 남편과 다름이 없다.
이렇게 웃음이 나올 만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욕심은 사람의 눈과 생각을 멀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큰 불행을 당하는 것과 이 두 부부의 행동은 틀리지 않다.
작은 것을 얻기 위해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형국이다. 이 비유처럼 우리나라 현 시국을 간략하게 표현할 말도 없을 것이다.
부처님 말씀은 팔만사천의 경전으로 표현해도 부족하다. 그러나 그 많은 경전 속에서도 부처님이 우리 중생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신다.
많은 사람들은 불교교리를 실제 생활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불교를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기복적인 것으로 왜곡해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는 생활 속에서도 나와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다만 등잔 밑이 어둡듯이 공기가 보이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존재하듯이, 부처님의 진리는 우리 생활 속에 함께하고 있다.
자! 그 진리라는 보물섬을 찾아나서는 데, 백유경이라는 지도를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