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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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色, 戒 Lust, Caution)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성(性)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서로 소통되지 못하면 폭력이 되어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지만, 소통되면 테이블에 앉은 수많은 시간동안 넘어서지 못한 벽들을 일거에 넘어서게 하니 말이다. 서로가 죽이고 죽어야 할 ‘적과의 동침’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성은 치유의 묘약일까, 아니면 치명적인 독약일까….
<색계>에서 중국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와 독립운동가 왕치아즈(탕웨이)가 침대에서 벌이는 정사는 스릴이 넘친다. 조국을 배신하고 일제에 항거하는 동족을 잡아 죽이는 데서 오는 삶의 부조리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이’는 엑스터시 속으로 피신하고자 섹스에 몸을 불사른다.
독립운동단체의 ‘사주’를 받아 오랜 공을 들여 ‘이’에 접근해 머리맡에 권총을 감춰두고 정사를 벌이는 치아즈는 기회를 틈 타 ‘이’를 죽여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이’의 능수능란한 감각의 제국이 치아즈의 온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 달콤한 쾌락은 이제 치아즈의 심장까지 파고든다. 만약 치아즈가 ‘심장에 박힌 사랑’이 되어가는 ‘이’를 쏴버린다면, 자신의 심장마저 멈춰버릴 지 모른다.
치아즈의 뒤에는 그가 홍콩에 유학해 다니던 대학 때부터 순수하게 좋아했던 애국청년 광위민(왕리홍)을 비롯한 대학 연극반 친구들이 있고, 그 뒤엔 독립운동 지도자 ‘우영감’이 있다. 대학시절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광위민을 3년 만에 상해에서 만난 치아즈는 다시 거사에 합류해 미모를 무기로 적을 사로잡는 최 일선에 나선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의 암살 위협과 일본의 감시 속에서 불안해하며 누구도 믿지 못하던 ‘이’는 치아즈가 어린시절 부른 사랑의 노래에 마침내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리고 ‘이’는 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치아즈에게 선물하게 된다.
그러자 치아즈는 “왜 반지를 사주냐”고 묻고, ‘이’는 “나는 보석엔 관심이 없다. 다만 그걸 낀 당신의 손이 보고 싶은 거요”라고 말한다. 치아즈가 친일파를 암살해야하는 ‘본분’의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 ‘이’의 마음을 읽고부터였을 것이다.
‘이’와 함께 치아즈가 보석가게에 반지를 찾으러간 때, 밖에선 그의 옛 친구들이 숨어서 저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 치아즈는 정사할 때와 같은 간절한 눈빛으로 “지금 가라!”고 소리치고, 이것이 저격수를 피하라는 말임을 바로 알아들은 ‘이’는 몸을 날려 그 자리를 벗어난다. 이로서 ‘이’는 살아나고, 치아즈와 그의 첫사랑과 친구들은 모두 잡혀 그날 밤 처형당하고 만다.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흔들려 ‘나쁜 놈’을 처단하기는커녕 자신과 친구들까지 잡혀 생명을 잃게 한 치아즈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 ‘나쁜 놈’이 건 ‘마법의 섹스’에 혼이 팔려 거사를 망쳐버리고 조국과 친구들까지 배신한 ‘못된 년’인가.
하지만 누가 치아즈를 심판 할 수 있을 것인가. 독립운동 지도자인 우영감은 거사 교육을 마친 치아즈가 떠나면서 영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달라며 준 편지를 치아즈가 나가자마자 불살라버린다. 처음부터 치아즈 ‘개인’은 없고, 오직 독립을 위해 도구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내보인 것이다.
치아즈가 ‘이’와 몇 차례의 정사를 벌인 뒤 찾아와 “그가 뱀처럼 내 심장에 얼마나 깊게 들어오는지 알기나 하세요. 그 순간 그의 머리에 총알이 박혀버릴까 봐 두렵다”고 고백할 때도, 우영감은 “그만!”이라며, 그 자리를 회피하고 만다. 철저히 ‘인간’으로서 치아즈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철저히 도구가 되라는 것이다. 사이보그도 이 쯤 되면 눈물을 흘리는 ‘인간’이 될 터인데….
그렇게 모든 감정의 탈출구마저 봉쇄당한 채 막막하게 되돌아서는 치아즈에게 광유민은 처음으로 키스를 하려한다. 그러자 치아즈는 “왜 3년 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며 돌아선다. 치아즈는 조국이 무엇인지, 해방이 무엇인지, 민족이 무엇인지 모른다. 오직 대학시절 광유민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그가 자신의 참여를 원했기에 그가 원하는 대로 거사에 참여했고, ‘원치 않는 상대’와 섹스파트너가 돼 섹스 연습까지 했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모두가 그를 단지 도구로만 이용했을 뿐, 진정으로 그를 이해하고 사랑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막막했다.
독립이란 위대한 일이다. 잔혹한 일제를 경험한 한국인들이나 중국인들에게 ‘독립’과 ‘해방’이란 말은 목숨 이상으로 고귀하다. 따라서 개인과 가족까지 희생하면서 독립을 위해 몸을 던진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의 위대성을 말해 무엇 하리. 그 분들 덕에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이렇게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으니.
더구나 제국의 막대한 힘과 폭력 앞에 너무나 왜소한 독립운동단체의 상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못 됨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수단과 방법’, 그리고 ‘과정’이 간과될 수는 없다. 더욱 더 ‘인간’은. 만약 그것이 무시된다면 독립운동조차도 훗날 자신의 권력 야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정작 그 험고의 36년 세월을 거쳐 독립을 한 뒤 우리의 남북의 지도자들도 가족들조차 뒤로한 채 오직 나라의 독립에 헌신한 동지들을 숙청해 ‘자신만의 천국’을 만드는데 열중했었으니깐.
그래서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 간디는 인도의 독립에만 목을 매는 이들을 향해 ‘정작 중요한 것은 인도의 독립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고, 한 마을 한 마을이 깨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존엄을 깨닫는 각성에 이르지 않고선 목적을 달성해봐야 그 안에서 또다른 불평등과 굴종과 모순과 폭력이 기다리고 있음을 간파했으므로.
세상은 너무도 목적 지상주의, 성공 지상주의가 판치고 있다. 주위의 인간도 모두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인 것을. 누구는 내가 잡고 상승해야 할 끈이며, 누구는 밟고 딛고 일어설 디딤돌이며, 누구는 내 욕구의 배설구다. 모든 이가 모든 이의 도구가 되어가는 서글픈 현실이다.
치아즈는 도구로 이용당했지만, 그에게 늘 소중한 것은 어떤 대의명분이 아니라 사랑이었고, 인간이었다. 민족적 각성이 없다 해서 한 인간의 그런 모습을 멸시해도 되는 것일까.
치아즈와 치아즈의 친구들은 그 날 밤 모두 처형됐지만, 선수들인 우영감과 ‘이’는 살아남았다. 우영감은 젊은이들의 양심을 자극해 철저히 독립을 위한 도구로 헌신하게 했다. ‘이’는 치아즈의 순수함에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두려움을 피할 변태적 섹스와 도구로만 이용한 채 치아즈를 지켜주지 못하고 그를 처형하라는 문서에 사인을 했다. 독립운동가 우영감도 친일파 괴수 ‘이’도 감정에 의해 본분의 마지노선을 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계율에 철저했다.
‘인간애’를 희생시킨 채 추구해야할 것이 무엇인가. 과연 인간과 사랑과 자유와 평화를 희생시켜서 지켜야할 것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