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수좌 적명스님을 만나다-
유철주
조계종 기획실 홍보팀 주임
불자에게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수행에 목마르고 공부에 진전이 없는 사람에게 선지식은 바로 단비요, 삶의 나침반이기에 여러 선대 조사(祖師)들 역시 선지식을 자주 찾아 수시로 점검을 받으면서 정진하라고 강조했다.
2010년 경인년 하안거 결제를 하루 앞둔 5월 27일 문경 봉암사를 찾았다. 수좌 적명스님을 친견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어온 스님을 만난다는 사실에 설레는 마음을 좀처럼 주체할 수가 없다. 적명스님은 봉화 금봉암에 주석하고 있는 고우스님과 함께 수좌스님들은 물론 많은 불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이 시대 대표적 선지식이다. 그래서 봉암사 대중들은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 끝에 적명스님을 봉암사로 모셔왔다. 대중들은 조실(祖室)로 추대했으나 스님은 한사코 수좌(首座)로 살겠다고 해 ‘조실 격 수좌’로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향곡스님이나 송담스님이 조실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고도 후학을 지도했던 것처럼 스님 또한 ‘수좌라는 이름으로 조실 이상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름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한다.
봉암사 보림당(寶林堂)에서 만난 스님은 72세의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표정이 맑고 눈빛은 형형하다. 
적명스님은 지난해 동안거 해제날 처음으로 봉암사 대중 앞에 섰다. 당시 스님은 “외형의 불사는 끝났다. 이제는 내면의 불사를 해야 한다”며 조계종립 특별수도원으로서 봉암사가 다시 자리매김 돼야 한다는 뜻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의미에 대해 다시 물었다.
“봉암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으로 가난한 절이었습니다. 80년대 초반 한 스님이 콩나물을 많이 먹었다고 대중들이 화를 낼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최근에 훌륭하신 여러 주지스님들이 가람을 복원하면서 대중들이 정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제는 내면의 불사를 해야 합니다.”
스님은 그러면서 “봉암사에서 앞으로 10년 내에 10명 이상의 선지식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계종립 특별수도원으로서 1947년 ‘결사’ 이후 수많은 납자(衲子)들의 정신적 고향이자 한번쯤은 방부를 들여야 할 꿈의 수행처인 봉암사가 옛 명성을 되찾도록 하겠다는 스님의 얘기가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스님은 결제를 맞은 후학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수행의 길이라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삶 자체가 행복, 기쁨입니다. 이를 이해하자면 적어도 정신이 순일한 상태의 체험이 있어야죠. 공부의 기본적인 체험을 해야만 수행이 고행의 길이 아니라 환희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체험 없는 공부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부처님이 고행을 했다고 하는 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진정한 삼매, 선정에 들면 고(苦)가 없습니다. 희열뿐입니다. 이런 것을 한번 경험하면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당연히 수행의 길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희열 상태가 지속되면, 희열이라는 것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수행의 길을 고달파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명쾌한 설명이다. 알음알이 지해(知解)가 아닌 체험을 통해 할 수 있는 얘기를 스님은 정확하게 정리했다. 나아가 참선의 방법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명경지수(明鏡止水)’라고 합니다. 물이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을 때 맑음과 비춤이라는 능력이 발현됩니다. 참선이라는 것은 우리 심성에 원래 있는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계발하는 일입니다. 참선할 때는 화두를 들어서 마음을 명경지수 상태, 순일의 상태, 고요한 상태로 만듭니다.”
정혜를 같이 닦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북두(北斗)를 면남관(面南觀)하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얼굴을 남쪽으로 하여 북쪽에 있는 별을 보라는 말인데,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실제로 보이는 대로 말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의문이 시작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라고 고민하기 시작하고, 그 이후 화두에 몰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화선(看話禪)이 어렵다며 남방의 위빠사나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 풍토가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스님은 “간화선은 부처의 자리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했다.
적명스님은 스님들의 화두참구뿐만 아니라 재가불자들의 수행에 대해서도 지름길을 제시했다.
“<달마사행론>을 보면 그 첫째가 보원행(報怨行)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지금의 현실은 내가 만든 것이니까 원망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미래는 지금부터 짓는 것이므로 지금 최선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현재의 절망감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인 상태에서 미래를 위해 끝까지 매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의 길이요, 삶의 지혜입니다. 재가자들이 이 부분을 가슴에 새기고 정진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과(因果)’를 철저히 믿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현실문제에 의연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것이다.
달마스님은 보원행 외에도 수연행(隨緣行), 무소구행(無所求行), 칭법행(稱法行) 등을 제시했다. 수연행은 ‘사람은 인연에 따라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러한 것들은 모두 업보의 인연에 의한 것으로 인연이 다하면 모두 무(無)로 된다는 것을 순역(順逆)의 인연에 입각해서 도에 들어맞게 하는 것’이고 무소구행은 ‘가치를 밖에서 추구하고 집착하는 것을 그치며 추구함을 없애는 데 철저하고자 하는 것’, 칭법행은 일체 중생이 모두 본래 청정하다고 하는 이법(理法)을 믿고 이 이법에 맞도록 끊임없이 6바라밀(六波羅密)을 닦아나가되 이 6바라밀을 닦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얻을 바 없는 무소득(無所得)으로 철저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스님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사회 대표적 난개발사업인 4대강 문제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여쭈었다.
“율장(律藏)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 비구가 길을 가다가 도적을 만나 가진 모든 것을 다 털리고 길의 풀에 묶여졌습니다. 한참 뒤에 지나가던 이가 풀어주면서 ‘스님, 힘만 조금 쓰면 풀어지는데 왜 풀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죠. 스님이 ‘알지만 힘을 쓰면 풀이 뽑혀 죽을까봐 하지 않았습니다. 풀어줄 때까지 기다렸죠.’라고 했습니다. 이 비구스님의 얘기와 같은 자비사상이 불교의 기본 가르침입니다. 불가피한 살생, 개발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이 아닌, 다른 목적에 의한 살생, 또는 개발을 위한 개발이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인적이 없는 수백㎞의 강을 파헤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울 청계천에 가보니 좋긴 하지만, 온 산하를 청계천처럼 만드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불필요한 개발 외에는 자연을 보전하고 생명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준엄한 꾸짖음이다. 적명스님이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수많은 목소리를 거부하는 정부에 대해 죽비를 내려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일상에서의 수행을 부탁했다.
“하루에 10분, 길면 30분간이라도 염불이든 화두참선이든 관법이든 절이든 무엇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계속하다보면 어느 땐가 삼매에 들고, 희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팍팍해져가는 시대,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정진한다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스님은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봉암사 경내로 나오니 결제를 위해 분주히 오가는 스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번 철 방부를 들인 60여 수좌들은 뜨거운 무더위에 맞서 정진할 것이다. 적명스님이라는 큰 그늘이 있기에 봉암사의 여름은 뜨거우면서도 뜨겁지 않으리라. 종립선원의 미래가 희양산 봉우리만큼이나 밝아 보여 산문을 다시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