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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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장자의 「서무귀편」

박 상 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장자를 읽어보면 혜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장자가 하는 말에 그럴듯하게 반론을 한다. 장자는 이 말을 받아서 대꾸한다.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가만히 음미해 보노라면 입심 좋은 두 사람이 토크쇼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전체적인 대화를 풍부하게 해주는 것처럼 독자의 생각을 고양시켜주기도 하고 증폭시켜주기도 하고 때로는 저렇게 격렬해도 되나 하는 아슬아슬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장자와 혜서를 꺼내는 것은 월드컵이 한창이어서이다. 축구는 말하자면 발로 온몸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토크쇼이다. 토크쇼의 무대가 제법 넓고 잔디도 깔려있고 심판도 있고 빙 둘러싸서 응원을 핑계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인물들도 많다. 위성중계 덕택에 이제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마음만 먹으면 월드컵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지나간 경기도 언제든지 살려내서 볼 수 있는 기계도 많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에 열리는 통에 광적인 축구팬들은 건강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텐데 그게 어디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것인가.
마시고 소리 지르고 월드컵 마치고 나서 보약이라도 잘 다려 마시면 뭐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자기가 할 일을 하면서 중계를 보면 더운 여름에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다 보면 상대 공격의 리듬을 절묘하게 끊어내는 태클 동작이 있다. 공격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몰고 가는 공을 파내는 기술인데 공격수가 다치지 않게 공만 톡 따내면 문제가 아닌데 거의 대부분 공격수를 쓰러뜨리는 것이 큰 문제이다.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입을 모아 이구동성으로 “동업자 정신을 살려서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아야 합니다.” 하고 틈만 나면 외치지만 거친 호흡이 몰아치는 경기장에서는 심각한 부상으로 교체되는 선수도 있고 부상을 입히는 바람에 퇴장을 당하는 선수도 있다. 축구 경기라는 전체 그림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장자 <서무귀편>을 보면 한 사람이 자기의 코끝에 파리날개처럼 진흙을 얇게 발라 놓고 다른 사람에게 도끼로 깎아내게 하는 대목이 있다.


莊子送葬 過惠子之墓
장자송장 과혜자지묘
장자가 어떤 사람의 장례를 치르고 혜자의 묘소를 지나가게 되었다.
顧謂從子日
고위종자왈
따라오는 사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영人堊漫其鼻端若蠅翼 使匠石착之
영인악만기비단약승익 사장석착지
영땅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코끝에 진흙을 파리날개처럼 얇게 발라놓고 장석에게 깎아내도록 하였다.
匠石運斤成風 聽而착之
장석운근성풍 청이착지
장석이 도끼를 휘두르자 바람이 씽씽 일어나면서 시킨대로 깎아내었다.
盡堊而鼻不傷 영人立不失容
진악이비불상 영인입불실용
그런데 진흙을 깨끗이 깎아내었는데 코도 다치지 않았고 영땅에 사는 사람도 우두커니 서서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월드컵 태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장자 서무귀편의 도끼이야기를 하는 것은 태클을 저 장석이 도끼를 바람이 씽씽 일도록 휘둘러서 코끝의 진흙만 깨끗하게 깎아내고 코는 다치지 않게 한 것처럼 상대선수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고 멋진 태클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세 살 때 가마솥 모서리에 부딪히는 부상을 입는 바람에 50여 년을 죽기 살기로 고생고생하다가 이제 많이 극복한 필자 자신의 통증체험학습의 기억세포가 축구 경기를 보면서 서로서로 부상을 입히지도 말고 부상을 입지도 말아야 할텐데 하는 걱정을 잔뜩 하고 있는 것이다. 천재적인 축구실력을 한창 보여주다가 부상 때문에 축구라는 무대에서 쓸쓸하게 걸어 나간 선수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실제로 이번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도 마지막에 한 선수는 부상이 회복되지 않는 바람에 다음 대회를 기약해야하는 일도 있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지금 저 대표선수들보다 더 축구재주도 뛰어났던 선수가 그만 부상이라는 덫에 걸려서 축구를 그만두고 어느 포장마차집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월드컵을 보면서 “내가 잘 나갈 때는 저 선수는 후보 선수였다”고 친구들에게 자랑반 자탄반 하는 경우도 아마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한 생각 돌이켜보면 우리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실시간 경기로 펼쳐지고 있는 월드컵이다. 원고마감 시간이 임박해서야 글이 써지는 필자의 글쓰기 습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규경기시간이 지나고 얼마간 주어지는 추가경기 시간에 골을 넣어보려고 애쓰는 꼴은 아닌지 글을 쓸 때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다음 원고마감 임박 전까지는 생각도 잘나지 않는다.


축구 경기가 되었든 실전 인생 경기가 되었든 경쟁상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경기의 파트너에 대한 그야말로 대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대승적인 배려라고 해서 일부러 경기를 져주거나 하자는 것은 아니다. 탁구를 쳐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전력으로 온몸을 휘둘러서 스매싱을 주고받아야 신도 나고 운동도 하는 것 같다. 탁구 초보시절 조금 잘 치는 상대방이 살살 봐주면서 이쪽 코트로 공을 넘겨주면 비록 실력은 없지만 신경질나지 않았던가. 살살 넘겨주는 사람도 흥이 안 나고 받는 사람도 흥이 나지 않는다. 탁구채로 상대방을 치지 않고 공을 혼신의 힘으로 후려치면서 스매싱을 주고받는 랠리가 펼쳐질 때 경기하는 선수와 심판과 관중과 티브이 시청자들까지도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할 수 있다. 월드컵도 마찬가지이다.


태클하는 축구화의 스터드 끝이 공을 향해야지 상대선수의 정강이나 발목이나 무릎이나 어느 신체부위를 향해서는 안 된다. 월드컵 전체가 한 송이의 살아 움직이는 꽃송이라면 그 꽃에서 꽃잎을 억지로 뜯어내서 꽃을 상하게 하면 안 될 일이다.
물론 수준이 아직 덜 올라온 선수가 등장해서 새벽에 잠을 아껴가면서 티브이를 보는 사람의 눈에 졸음이 절로 오도록 하는 경우도 더러 없지 않아 있다. 우리의 정치와
경제도 한 편의 월드컵 경기인데 선수가 입장하기도 전에 저 선수의 수준이 이렇다 저렇다 한다면 그 경기는 보지 않아도 대강은 짐작이 되는 것이다.
엄마가 아들에게 어떤 경우에 “너 그러려면 학교 다니지마~” 하고 악에 받쳐 소리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식탁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것은 모자간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엄마와 아들의 게임을 아빠는 대부분 느긋하게 바라본다. 저러다가 또 서로 손잡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텐데 뭐 하면서 말이다.
월드컵 시청도 그렇게 느긋하게 할 일이다. 내 업무를 보면서 월드컵을 봐야할텐데 월드컵을 보면서 내 업무를 보는 경우가 간혹 없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우리네 삶이라는 커다란 화면 속에 지금 월드컵도 떠있고 세월호도 떠있고 원고쓰기도 떠있고 원고독촉도 떠있고 출근퇴근도 떠있고 만남과 헤어짐도 동시에 떠있고 부처와 중생이 함께 떠있다. 화면에 떠있는 공간에 와있는 계절이 여름이다. 모든 분들의 건강을 축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