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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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명상

승한 스님
행복나눔 대중견성공동체 빠리사선원장


나는 가끔 ‘죽음 명상’을 한다. 죽음 명상을 하다보면 내 마음의 밑뿌리를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죽음 명상은 탐심의 밑뿌리를 들여다보고 끊어내는데 아주 좋다. 평소엔 별 생각 없이 살지만, 막상 곧 죽는다고 생각하면 억울한 생각, 아쉬운 생각, 못하고 산 생각,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우후죽순처럼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생각들을 깊이 통찰해 들어가면 그 밑뿌리에 바로 탐심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 명상은 그 탐심의 밑뿌리를 제거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해탈하는데 참 좋다. 지금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고 내 죽음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동안 지금 당장 죽을 수 없는 이유, 예를 들어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누가 키워줄까, 부모님이 연로하신데 내가 죽으면 누가 부모님을 모실까 하는 마음 때문에 나는 지금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 생각을 내가 죽어도 되는 이유 즉, 내가 죽어도 내 남편(아내)이 더 훌륭하게 키워줄 수 있으니까 남편(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죽으면 돼, 내가 죽어도 내 동생들이 부모님을 더 잘 모실 수 있으니까 동생들에게 부모님을 부탁하고 죽으면 돼 하고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죽을 수 없는 이유를 하나하나 죽을 수 있는 이유로 바꿔나가다 보면 평소엔 모르고 살았던 탐심의 원인들이 깨끗이 사라지며 시원한 자유와 해탈감을 맛보게 된다.


죽음 명상이 주는 공덕은 또 있다. 그렇게 죽음 명상을 하면서 떠올랐던 ‘죽을 수 없는 이유’들은 곧 이 세상에서 내가 더 값지게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선명하게 부각시켜준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선 그렇게 떠오른 ‘죽을 수 없는 이유’들을 잘 실천하고 살면 된다. 언제든지 내가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 일들을 실천하고 살면 자신도 좋고 상대도 좋고 모두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빈 마음으로 하는 일엔 개인의 불손한 욕망과 욕심이 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빈 자리엔 감사와 사랑과 행복의 물결만 밀물처럼 밀려들 뿐이다.
‘죽음 명상’을 하는 방법은 쉽다. 먼저 내가 지금 병원에서 한 달밖에 살 수 없는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유언장을 작성하자. 유언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쓰면 작성하면 된다.
1. 앞으로 한 달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2. 임종을 앞두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3. 죽음을 앞두고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4. 죽은 뒤 내 육신을 어떻게 처리해주길 원하는가?(매장, 화장, 장기기증 등)
5. 죽은 뒤 내 소유로 된 물건과 재산이 어떻게 이용되면 좋겠는가?
6. 나의 묘비명에 어떤 글이 적히기를 원하는가?
7. 내 삶이 새로 다시 시작된다면 어떤 삶을 살아보고 싶은가?


이렇게 유언장이 작성되면 그것을 흰 봉투에 담아 머리맡에 놓고 눕자. 마음속으로 나는 지금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죽음 명상이 훨씬 실감난다. 그런 뒤 자신이 작성한 유언장을 떠올려보며 다음과 같은 순서로 ‘죽음 명상’을 시작한다.
1. 두 손바닥을 가볍게 펴고 온 몸의 긴장을 푼다.
2. 이제 내가 내 육신을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명상한다.
3. 이제껏 내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감정들을 살펴보고, 그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고 용서한다.
4. 서서히 숨이 끊어져가고 있음을 느끼며 가까운 가족과 친구, 연인 등에게 마지막 하직인사를 한다.
5. 시체를 덮는 천이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는다.
6. 마침내 숨이 끊어져 내 영혼이 내 육신을 떠나갔다고 생각한다.


7. 내 몸을 떠난 의식체가 죽은 채 버려져 있는 내 육신을 바라보며 그때 일어나는 느낌을
살펴본다.
8. 지나온 내 한평생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돌이켜본다.
9. 남에게 준 고통이 얼마나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생각해본다.
10. 남에게 준 이익이 얼마나 나 자신을 행복하게 했는지를 생각해본다.
11. 나에게 다시 새 삶이 주어진다면 사랑과 자비의 삶을 살 것을 서원해본다.
12. 그런 상태로 10분 이상 조용히 누워 있는다.(그 상태 그대로 잠이 들어도 괜찮음)
이상과 같은 순서로 ‘죽음 명상’을 하되, 이때 티베트 만트라 명상 음악을 들으며 하면 ‘죽음 명상’이 더 잘 된다. 그렇게 한 시간쯤 ‘죽음 명상’을 하고 나면 삶과 죽음이 결국은 한 장의 나뭇잎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닌데 어쩌자고 그렇게 매사에 찧고 빻으며 탐욕과 이기심과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는지, 회한의 눈물과 함께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삶에 생기마저 돈다.
실제로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사람 가운데 한 분은 그렇게 ‘죽음 명상’을 생활화하고 산다. 김시전이라는 분이다.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목석산방木石山房’이라는 곳에서 반달곰과 꽃사슴과 멧돼지를 키우며, 나무 조각도 하고 시도 쓴다. 이제 환갑밖에 안 된 나이인데 이 분은 산방 뒤편 산비탈에 진짜 무덤을 만들어 놓고, 틈만 나면 그 무덤의 관 속에 들어가 ‘죽음 명상’을 하며 며칠씩 지내다 나온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평생 죽음을 눈앞에 둔 분들과 함께 살아온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생 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삶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수업과 같은 것’이라며 ‘그 수업들에서 우리는 사랑, 행복, 관계와 관련된 단순한 진리들을 배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삶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흐르는 단순한 진리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며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렇다.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찾아 ‘인생 수업’을 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안에 죽음을 항상 최악의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살 때 우리는 우리 안에 더 크고 넓은 사랑과 행복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살 수 있다. 죽음은 더 이상 상실과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생성과 자유로운 삶을 향한 ‘인생 수업’이니까.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점점 더 강렬해지는 날들이다. 햇살이 뜨거워지면 뜨거워질수록 점점
더 짙어지는 녹음綠陰처럼 우리도 가끔은 더 짙은 우리네 삶의 녹음을 위해 한번씩 ‘죽음 명상’을 하며 ‘인생 수업’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