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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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과 악행

한 애 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부단장


라자가하에 이어 웨살리, 사왓티, 꼬삼비에 차례로 정사들이 건립되자 비구와 비구니의 숫자는 급속도로 늘어났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며 그 제자들에게 예배하고 보시하는 이들도 거리마다 증가하게 되었으나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문제들도 안팎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지혜와 덕행을 배우기보다 명성을 탐하는 비구와 비구니가 생겨나고 종족과 계급으로 우열을
논하며 무리를 짓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열반을 추구하며 물과 젖처럼 화합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타일렀지만 교단 안에는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 교만을 탐하는 이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깨달음을 이루신 후 7년 사왓티에 머무시던 부처님은 제자들의 나태함을 경책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가사와 발우를 들고 사라지셨습니다.
즐거움이 가득한 하늘나라 삼십삼천으로 올라간 부처님은 그해 우기를 재석천과 어머니 마야부인 그리고 천녀들에게 설법하며 지내셨습니다.
우기가 끝날 무렵 지난 과오를 반성한 대중의 요청에 의해 마하목갈라나가 도리천으로 올라가
부처님을 다시 청하였으며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사부대중이 수행에 게으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마하목갈라나, 사부대중을 교화하기에 힘들지는 않습니까? 서로 다투지는 않습니까?
외도들이 소란스럽게 하지는 않습니까?”
“모든 비구와 비구니들이 자신의 오만과 게으름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모든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부처님을 뵐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뿔을 자른 소처럼 온유한 그들에게 외도의 비방과 소란은 조금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사리뿟따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사리뿟따는 새로 출가한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상깟사(Sankassa)에서 안거하고 있습니다.”
“전하십시오. 이레 뒤에 상깟사로 돌아가겠습니다.”
소식을 들은 수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상깟사로 향하였으며 라자가하에 머물던 수부띠 역시
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수부띠는 걸음을 옮기다 부처님은 형상으로 뵙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칠 일 후 부처님은 상깟사 성문 밖에 하강하셨고 기다리던 대중들이 부처님을 맞이하였으며 부처님은 그곳에서 사리뿟따와 수부띠의 지혜로움을 칭찬하고 사왓티의 기원정사로 돌아오셨습니다.
지난 잘못을 참회하며 스스로를 가다듬는 승가의 모습에 부처님과 제자들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으며 사왓티 사람들의 마음이 아지위까와 니간타를 떠나 불교에 쏠리게 되자 시기와 질투로 이성을 잃은 외도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거리에서 떠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면 우리도 고행을 했으니 고따마처럼 부처님이 아니겠는가? 왜 사문 고따마에게만 보시하는가?
우리에게 보시하는 자도 큰 과보를 받을 것이니 우리에게 보시하라.”
외도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부처님과 제자들의 명예를 실추시켜야 했습니다.
외도들이 모여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때 젊고 아름다운 바라문 소녀 찐짜가 외도들의 사원을 찾아와 외도들에게 인사하였으나 그들은 아는 체도 하지 않았으며 당황한 찐짜가 물었습니다.
“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요?”
“누이여 당신에게 잘못이 있어 이러는 것이 아니요. 우리는 고따마 때문에 지금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요.”
외도 수행자들의 관심과 칭찬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찐짜였습니다.
“무슨 일로 곤란을 겪으시는 겁니까? 혹시 제가 도울 수는 없을까요?”
“고따마 때문에 사왓티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도 없소. 그대가 정 우릴 돕고 싶다면 저 고따마의 명성을 한번 떨어뜨려 보시오.”
“그런 것이라면 제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찐짜의 큰 소리에 외도들은 기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찐짜가 기원정사에 모습을 나타내곤 하였습니다.
곱게 화장을 한 그녀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향과 꽃다발을 들고 해질 무렵 기원정사로 향했으며 설법을 듣고 기원정사를 나오던 사람들은 눈길을 끄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 늦은 시각에 어딜 갑니까?”
“내가 어딜 가든 당신들이 알아 무엇하게요?”
퉁명스럽게 시치미를 떼고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걸음을 돌려 부근의 외도 수행자들의 처소에서 잠을 잤으며 아침이면 설법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기원정사 문 앞에서 마을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이른 시각에 어디서 자고 오는 길입니까?”
“내가 어디서 자든 당신들이 알아 무엇하게요?”
매일같이 이렇게 하다 한 달쯤부터는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작은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사실 기원정사에 있는 고따마 방에서 자고 오는 길이에요.”
삼 개월쯤 지나 찐짜는 천을 배에 감고 임신한 여자처럼 붉은 옷을 입었으며 기원정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사문 고따마의 아기를 가졌답니다.”
베에 감은 천을 두껍게 늘리던 찐짜는 여덟 달이 지나고 아홉 달이 되자 둥근 나무그릇을 끈으로 동여맨 뒤 산달이 가까웠다는 표를 내기 위해 소의 턱뼈로 피부를 문질러 거칠게 하였으며 이윽고 어느 화창한 오후 당당한 걸음으로 기원정사로 들어가 설법하는 부처님 앞에 섰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의 웅성거림을 즐기기라도 하듯 찐짜는 갖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습니다.
“대사문이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법하고 계시군요. 그렇지요, 당신의 속삭임은 참 아름답지요, 당신의 입술은 또 얼마나 달콤합니까. 그런 당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 이 아이지요…….”
사정을 모르는 이라면 누구나 동정을 느낄만했습니다.
웃고 울기를 마음대로 하는 찐짜의 무서운 연극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달이 차서 배가 부르도록 당신은 나에게 음식은커녕 다리 펴고 누울 방 한 칸도 마련해주질 않는군요, 저야 어차피 버린 여자라지만 배 속의 애가 무슨 죕니까? 당신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은가요, 사람들 눈 때문에 직접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있지 않나요?
국왕이 당신의 제자이고 수닷띠 장자가 당신 제자인데 그것 하나 마련해 줄 수 없나요. 당신은 참 몹쓸 사람이군요.”
땅을 치며 울부짖다가 고함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는 그녀를 부처님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셨으며 웅성거리던 신자들의 눈길이 모두 부처님에게 쏠렸습니다.
부처님의 얼굴에는 조금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그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오직 그대와 나만이 알 것이다.”
“그렇지요, 당신과 저만 알지요, 그 비밀스런 짓거리 때문에 오늘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였습니다. 몸부림이 지나쳤는지 동여매었던 끈이 풀어지면서 옷 속에 감추었던 나무그릇이 발등에 떨어졌습니다. 설법을 들으러 기원정사를 찾았던 사람들은 찐짜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지옥에 떨어질 가증스런 죄를 지은 찐짜는 사왓티 사람들이 던지는 욕과 흙덩어리를 뒤집어쓰고 기원정사 밖으로 쫓겨났으며 이 사건으로 외도들은 더욱 비난받게 되었고 사왓티 사람들은 잠시나마 부처님을 의심한 자신을 책망하며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찾아와 걱정스러운 일이나 알고 싶은 것에 대해 물었으며 부처님께서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불교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신앙의 종교라 하지 않고 신행의 종교라 하며 불교인들은 신행 단계를 밟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신행단계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실되게 믿고 자신이 믿는 가르침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부처님처럼 지혜롭게 살려는 것입니다.
과거 비바시 부처님으로부터 석가모니불에 이르기까지의 일곱 부처님 즉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그리고 과거칠불의 제7불로 현재 현겁에 나신 부처님 즉 석가모니불인데 이 일곱 부처님께서는 불교의 진리에 대해서 똑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 게송을 칠불통계라고 합니다.
제악막작하고 중선봉행하라. 자정기의하면 시제불교이니라.
모든 악을 짓지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이렇게 쉽고 평범한 것이 불교라면 특별히 배울 것도 없겠지만 이것은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알고 있으나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불교를 지식으로만 배우려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으니 마치 밥짓는 법을 배우기만 할 뿐 먹지 않아 굶어죽은 것과 같습니다.
죽을 때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니듯 무엇이 그 사람을 따라다닐까?
선행과 악행 이 두가지야 말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지은 것으로 자기의 것이다.
죽을 때 이것을 가지고 간다.
마치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니듯 이것이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사람은 선행을 닦아야 한다.
선행은 저 세상에서 든든한 후원자다.
모든 재산과 함께 이 몸도 끝내는 버려야 하므로 이것을 알아 자신도 즐기고 남도 이로운 보시를 해야 한다.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