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스님 / BBS 거룩한 만남 진행
탄생은 누구에게나 새롭고 축복해 주는 삶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왠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같다. 하지만 늘 어느 곳이든 내가 존재하는 곳에 존재하는 그림자인 것을….
인연이라고 하죠.
포기할 수는 없죠.
내 생에 이 아름다운 날이
또 다시 올 수는 없을까요.
나를 놓지 말아요.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의 일부분이다. 가끔 아직도 이 노래가 들리면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환자가 생각난다. 물론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감염우려가 있어 1인실에 있었던 환자를 방문하게 되었다.
비가 오던 날로 기억이 되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환자는 방문하는 나를 힐끔 쳐다보곤 눈을 감아 버린다.
보호자 역시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별 반응 없이 방문을 거절했다. 몇 번 방문을 했지만 변화가 없었다.
어느 날 방문을 하니 보호자는 없고 환자 혼자 앉아서 눈인사를 한다.
용기를 얻은 내가 가까이 가서 보니 발이 부어 발목 부분에 양말로 늘린 자국이 있었다. 얼굴도 부어 있고 손은 마디와 손끝에 멍이 들어 있었다.
발을 쓸어 주며 말을 걸었다.
“많이 부었네요.”
“자주 부어요. 원래 이렇게 빵순인 아닌데.”
환자가 머쓱하게 웃는다. 미소가 예쁘다.
손을 만지며 “아프진 않아요?”라고 물으니 “아프진 않아요. 보기 흉하지요? 약 반응 때문에 이래요”라고 밝게 답을 한다.
“보호자는 어머니… 세요?”
“아! 네 지금 잠깐 앞에 나가셨어요. 뭐 사러…. 나 때문에 힘이 드실 거예요. 하루 종일….”
눈이 빨개지는 것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가 보다.
울진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서 디자인을 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가 몸에 이상이 왔다고 했다. 감기인 줄 알았는데 약을 먹어도 여러 날 동안 나아지질 않아 검사를 해 보니 간과 신장에 이상이 생겨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간암인데다 희귀성 질환이 겹쳐 투병이 어려운 상태였다.
자신보다 어머니가 스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본인은 내가 방문하는 것이 불편하냐고 물으니, 어머니는 울진에서 다니는 절이 있으시고 본인은 다니는 곳이 없으니 스님의 방문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힘든 어머니를 위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서로 기다리는 정이 오가는 사이가 되어 가면서 그녀는 오히려 바쁘게 다니는 나의 건강을 챙겼다.
“아이고, 스님. 그래 다니다 내처럼 이래 된다. 나중에 후회 말고 이리 좀 쉬라”며 자신의 침상을 내어 주기도 했다.
밝고 이야기도 잘하는 그녀의 이런 저런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녀의 꿈이 자신의 작품을 나에게 보여 주는 것이라며 시간이 더 주어지길 기도해 달라고도 했다.
어느 날인가는 영 냉랭한 분위기여서 방문한 나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른 후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으니, “마… 이제는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으니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거 먹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그러란다. 그래도 쪼매 억울하니까 집에 가서 민간요법도 좀 해보고 밥이라도 잘 먹어 볼라 그런다. 서울이 좀 답답하잖아, 스님”이라고 답을 하는 그녀.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어 울진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는 그녀도 어머니도 눈물을 떨군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스님, 잊지 말고 우리 잘 지내다 보면 또 보겠지 뭐…”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그녀와 서로 안고 말없이 있었다.
잠시 후 “스님도 건강 챙기소. 그래 다니지 말고 알았제! 전화라도 자주 합시다.”
그렇게 고향으로 간 그녀와 가끔 전화를 하면 그녀의 휴대폰에서 노래가 흐른다.
처음엔 잘 몰랐다,
점점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이제는 전화기 들 힘도 없다”라는 대화를 하고, 그녀가 아닌 어머니가 전화를 대신 받으며, “이제는 우리 아이가 먹질 못한다”라는 근심어린 통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 아이가 어젯밤 몸을 바꾸어 갔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그녀가 내게, 아니 정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가장 절실한 이야기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도움을 주기보다는 내게 더 큰 위로가 되어준 그녀를 나는 잊을 수 없었다.
지금 나는 그 노래를 들을 수 있고 기억하지만 이제 그녀의 전화는 번호조차 없는 전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죽음은 어떤 것일까?
또 많은 병상에 있는 환자들의 죽음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생명연장? 태어난 이래 우리 모두는 생명을 연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지, 누구에 의해 알게 되는 것과 무심히 지나는 시간의 의미일 뿐이 아닐까?
지금 이순간도 되돌릴 수 없는 죽어 가는 시간인데, 이 아름다운 날이 다시 올 수 없는 것처럼….
대비란 모든 중생에게 사랑을 주는 일이고,
대비란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함께 하는 일이다.
<대지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