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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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생긴 일

조한곤 / 파라미타 사무국장


전국의 사찰에서 불자들이 지극정성으로 올리고 있는 백중기도가 한창입니다. 이렇게 백중을 앞둔 시기가 되면,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는 어느 절이랄 것 없이 백중맞이 불공과 기도를 붙이고, 불자들도 가족과 함께 절을 찾아 부처님께 선망부모와 조상의 왕생극락은 물론 평소에 자신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소망을 발원하게 됩니다. 그러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상 숭배와 효사상을 키워나가면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한민족으로서의 일체감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처럼 훌륭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이어오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민족인데, 언제부터인가 경로효친의 사상이 사라지고 위계질서마저 무너지는 각박한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이 오늘의 세태이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역시 변화하는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럴 때일수록 종교인, 특히 우리 불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7월의 어느 일요일, 이렇게 백중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지하철 안에서 경로효친의 사상이 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 일을 몸소 겪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해질무렵에 귀가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지하철에 들어섰을 때는 빈자리는 없었지만, 휴일이어서인지 안이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서 한 정거장을 지나자 빈자리가 하나 생겨서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앉아서 몇 정거장을 지났을 때 허리가 70도는 굽어보이는 한 할머니가 초등학교 3~4학년 쯤 되어 보이는 손자아이와 함께 전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일어나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자신이 자리에 앉지 않고 손자에게 앉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손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고,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주체하기 힘들어하면서도 참고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있자 옆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가 못이기는 척 일어나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는 어색해서인지 옆 칸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은근히 울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비록 얼굴에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긴 했지만 덩치는 중학생만한 아이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게다가 그런 아이에게까지 어른들이 자리를 양보해야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과 함께, 우리 사회의 도덕성 타락은 결국 비뚤어진 자식사랑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가슴이 아파오기까지 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자식농사는 평생을 해야 하는 일이고 개인의 성품이나 환경에 따라 교육방법도 달라져야하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과연 부처님께서는 아들 라훌라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시켰을 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부처님의 외아들이면서 제자이기도 한 라훌라 존자를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이야기는 초기경전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 중 「라훌라 교계경」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경에 거울을 예로 들어 라훌라에게 평소의 행동과 몸가짐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라훌라야, 거울의 목적이 비추어보는 것에 있듯이 자신을 거듭 비추어보고 난 뒤 몸으로 행동을 하고 말로 행동을 하고 마음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 ‘나는 이제 몸으로 행동을 하려한다. 내가 행하려는 이것이 나에게 해악이 되지는 않는가? 남에게 해악이 되지는 않는가? 또 둘 다에게 해악이 되지는 않는가? 이것은 해로운 행위라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조해보고난 뒤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동을 하라.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비추어보고서 ‘내가 이제 지으려는 이 행동은 나에게 해악이 되고, 남에게 해악이 되고, 둘 다에게 해악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해로운 행위라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알게 된다면 너는 절대로 그런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비추어보고서 ‘내가 이제 지으려는 이 행동은 나에게 해악이 되지 않고, 남에게 해악이 되지 않고, 둘 다에게 해악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유익한 행위라서 행복으로 귀결되고 행복한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알게 된다면 이런 행동은 해도 된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아들 라훌라에게 거듭해서 자신을 스스로 비추어보고 반조해본 뒤에 행동할 것을 간곡히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라훌라가 한 나라의 왕자인데다가 부처님의 외아들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자칫 대중생활에 누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를 걱정하여 다른 제자들보다 더 혹독한 수행을 시키고 또 매사를 조심하라는 뜻에서 엄하게 가르침을 주셨던 이 법문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 부모들이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지하철에서의 그 할머니가 부처님의 이 법문을 단 한번만이라도 들었더라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 자기 자식 귀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대개가 자식을 한두 명 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어느 가정이나 자식을 귀하게 키웁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생활의 대부분이 자식 위주로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하철에서의 그 할머니도 그 부모들이 사회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을 교육시키지 않고 자식을 받들어 모시듯 키웠기 때문에 오히려 손자를 받들어 모시듯 대했던 행동일 것이었고, 그 손자 또한 할머니가 자신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으로 여겼을 터입니다.
이러한 자식교육의 결과는 곧바로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지나친 개인주의가 그것이고, 도덕성의 타락이 그것이며, 경로효친의 정신이 사라져가고 있는 사회현실이 또한 그것입니다.
자식교육의 첫출발은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판단하는 판단력을 키워주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의 출발은 건전한 상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떤 행동이 나에게 이로운지, 아니면 해로운지를 판단하고 어떤 행동이 남에게 이로운지, 아니면 해로운지를 판단하는 판단력을 키우게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해로운 행동은 엄격하게 절제하도록 하고 이로운 행동은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가르치는 것이 자식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찰마다 백중기도가 한창인 이 때, 부처님의 이 자식교육법이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 개인주의가 없어지고 이타행이 넘쳐나는 사회, 도덕성이 되살아나는 사회, 우리의 오랜 미풍양속이었던 경로효친의 정신이 되살아나는 살맛나는 사회가 되기를 부처님 전에 간절히 발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