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 아시아기자협회 운영위원
종교는 언어를 통한 진리세계
어느 종교든지 수행수단의 대부분은 언어(言語)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언어도단이라고 해서, 참선수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선어록의 양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물론 수천 년 내려오는 경전 역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종교는 언어매체를 통한 진리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언어는 말 그대로 언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언어의 의미에 따라서 우주자연이 표현되고, 진리가 생명을 갖고 인류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말을 잘해야 하는 사람들
사실 언어와 관련한 직업을 말하라면, 방송기자가 대표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20여 년간 방송기자를 하면서, 제대로 말을 하면서 살아왔는가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말을 잘하기는커녕 그동안 먹여주고 입혀준 말과 언어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라도 가졌는지 자문하게 한다. 말 중에서도 모국어인 한글에 대해서는 얼마나 감사를 느꼈는지 생각해 본다.
외국어 실력이 썩 훌륭하지 않은 필자 입장에서는 한글이 아니었다면 언론활동은 고사하고, 가족생계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글과 언어의 고마움,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마치 물과 공기의 고마움을 생각하듯이 모국어를 생각하고 살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따지고 보면, 살아서는 한글이 먹여살려주고, 죽어서도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은 유가족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글이 아니겠는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선택
말과 관련된 대표 직업 가운데 기자 얘기를 잠시 언급했지만, 무엇 보다 정치인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행위의 대부분이 말로 이루어지는데다, 구어든 문자든 법률행위 역시 언어를 통해 전달되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말을 잘해야 한다. 말도 말이지만, 음성(voice color)도 좋아야 하고, 무엇 보다 용어선택이나 표정관리도 잘해야 한다. 단순히 말만 잘해서는 안 되고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통해서 시민들이 친근하게 느끼면서 경청할 수 있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
예로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해서, 인물 선택의 표준으로 신수와 말씨와 글씨와 판단력을 봤다. 이 말은 중국 당나라 관리 선발기준과 덕목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요즘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회사 입사시험에서 같은 실력이면 인물 좋고, 말과 글이 좋고, 판단력이 훌륭한 인물을 선발할 것이다. 정치인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정치 쟁점의 흐름에 따라서 여야 정당의 선택도 있겠지만, 신언서판의 원리는 유권자의 선택기준이 되고 있다.
정치인의 설화 파문
최근 말 때문에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도마위에 올라있다. 7.28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파장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여야 간 설전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 미루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거짓말 파문으로 확대되는 등 문제가 꼬리를 물고 있다. 당 제명 조치를 앞두고 있는데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학벌이나 용모를 보면 웬만한 정치인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측은지심을 넘어서 헛똑똑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당 차원의 제명이 되기에는 처리 정족수 때문에 쉽지 않더라도, 강 의원이 공부한 국내외 최고 명문대학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추락한 당의 이미지 역시 다시 회복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중에서는 강용석 의원을 둘러싸고 공사석간의 험담은 물론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는 루머도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필설로 다 옮길 수 있을까. 이른바 <카드라 통신>인데, 시중에서 하는 떠도는 말처럼 남 말하기 좋아하는 풍토에다 인터넷에 트위터까지 나와 있는 판이니 오죽하랴. 성희롱 발언을 비꼰 풍자성 루머부터 강용석 의원을 놀리거나 비하하기 위한 악담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저런 루머를 이 지면에 옮긴다면 자칫 필화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쯤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언어비용과 공공정책
언어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공공언어 때문에 연간 약 280억 원이 낭비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행정기관의 어려운 용어 때문에 얼마만큼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지, 또 이러한 어려운 행정용어와 정책명칭을 알기 쉬운 말로 개선할 경우 어느 정도의 경제적 효과를 얻게 되는지를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했다.
조사결과 일반 국민이 행정기관의 서식 등을 작성할 때 어려운 행정용어 때문에 치러야 하는 시간비용은 1년에 약 170억 원으로 추산되었다. 이는 일반 국민이 치러야 하는 비용 118.3억 원과 민원 처리 공무원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 51.8억 원을 합친 것이다.
이에 따라, 어려운 행정용어를 알기 쉬운 용어로 개선할 경우 얻게 될 비용 절감액은 첫해에 51억 원 등 5년간 총 570억 원, 10년간 1,168억 원, 20년간 2,336억 원, 그리고 무한 지속되는 경우에 총 3,431억 원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되었다.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유용한 점을 알려주는 것인데, 쉬운 정책용어는 애민의 첫 걸음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브랜드 마케팅과 언어
말 얘기가 나왔으니, 기업 브랜드 마케팅에서도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한 기업에도 여러 가지 브랜드가 있고, 심지어 기업명은 숨기면서 상품명으로 브랜드 마케팅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LG냉장고이면서도 한동안 디오스라는 상품명으로만 세일즈를 했고,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인데, 넥서스라는 상품명이 마치 기업명인 것처럼 알려진 때가 있었다. 유사한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급격한 기술변화는 후광 브랜드(umbrella brand)가 보편화되고 있다. 독자 또는 단일 브랜드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 브랜드를 변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동방생명이 삼성화재로, 호남정유가 LG칼텍스정유로, 경인에너지가 한화에너지로, 극동정유가 현대정유로 바뀌었다.
이뿐 아니다.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업체는 현지 어감에 맞게 브랜드 명칭을 바꾸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 부정연상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경그룹은 영문표기에서 Sun Kyuong의 발음으로 애를 먹었다. 마치 타락하다 또는 젊은이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바람에 아예 영문 이니셜 SK로 사명을 정했다. 제일제당 역시 영문 발음이 감옥 또는 죄수를 떠올린다는 이유로, CJ로 통일했다.
본래 취지에 맞는 언어 사용
기업과 정치인의 예를 들어 봤지만, 결국 언어는 본래 취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설화 파문의 당사자 강용석 의원의 본인 입장이 말하지 않아도 대충 읽혀진다. 이런 저런 변명 속에 사태를 더 키우는 측면이 없지 않고, 당 차원에서 상대 당의 또 다른 설화를 부각시키려고 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닌 것이다. 국민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아는 것은 다름 아닌 상식이다. 사안에 따라 직접 확인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일반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짐작할만한 일이면 단순히 소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솔직한 것이 제일 좋다.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이고, 잘한 것은 잘 한 것이다. 그런데 변명을 하고 모양을 낸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잘되지 않고, 잘 된 것이 잘못되는 경우는 희박하다.
기업 제품도 마찬가지다. 본질은 품질이다. 품질이 좋으면 마케팅이 저절로 된다. 입소문이라는 것이 있다.
브랜드 명칭과 이미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품질이 그렇지 못하면 시장경쟁력은 금방 식고 만다. 언어의 중요성은 본질과 품질이 제대로 살아날 때 생명력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