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스님 / 대덕사 주지, 동국대 강사
서른을 갓 넘기고 제주도도 못 가본 비구가 이민을 가듯 큰 가방 여러 개를 힘겹게 들고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무작정 떠났던 때가 10년도 더 훨씬 전이다. 학업에 대한 원대한 꿈과 이상을 지닌 유학생도 아니고, 그저 무작정 망아지는 제주도에서 커야하고 사람은 서울 살아야 한다는 촌로들의 정자나무 한담(閑談)처럼, 큰물에서 한번 놀아보고(?) 싶은 충동에서 시골소녀 무작정 상경하듯 떠난 만행을 지금 생각해 보면 용기인지? 만용인지? 쓴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동부의 메릴랜드 주로 이주하였다.
문화적 충격에 힘겹기도 했지만, 상념에 젖어본다. 너무도 힘겨웠고 때로는 고독했지만, 내 인생에 이런 적막한 고요와 얽매이지 않은 자유스러움이 또 올까 싶다.
가끔은 힘이 겨울 때마다 그리워진다.
그때의 고즈넉함이, 한국의 정신문화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것이 개신교의 수입에 원인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은 소멸에 가깝다.
국민정서는 혼돈에 빠져 사회문제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기독교종주국인 미국에서는 교회가 텅 비어 한국의 이민자들이 교회를 임대해서 예배를 보는 실정인데,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기독교문화가 창궐한다.
비구는 부처님 법을 따르는 자이다. 이렇게 불교문화가 퇴색되어지는 시점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부처님 정신과 가르침을 전해야하는 사명감을 지닌 이어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남미인들이 미국을 동경하고 꿈의 나라로 여겨 밀입국을 시도하다, 간혹 생명을 잃는 일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그들이 ‘죽어서는 천국 살아서는 미국’이라고 하여 무작정 동경하는 선망의 나라 미국에서의 삶도 이제는 그리 쉽지만은 않다.
많은 이들이 실업과 주택난에 허덕이고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화되는 지경이다. 그러나 아직 미국은 지구촌의 정치, 경제, 문화를 좌지우지 하는 패권국가이다. 한반도의 마흔 세배나 되는 거대한 국가이고 수많은 자원과 인재를 보유한 최강의 나라이다.
거시적으로는 이러하지만, 온갖 인종이 어우러져 무질서한 듯 하지만 강력한 법치주의로 다스려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종교의 자유 (religious freedom)는 개척 초기부터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종교와 자유의 선택은 제한적인 면이 없지 않다. 재미교포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많은 것을 제공하여 준다. 이민 생활에서의 어려움이나 적응에도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안식처가 되어준다.
기독교가 정체성이나 한국인들의 정서에 크게 부합하는 요소는 없지만, 불교를 신행하는 이들조차 기독교로 개종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은 불교의 역할이 미비하고 이민자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는 적극성의 결여에도 원인이 있다.
또한 포교승들의 전문성 부족과 자질 없음에도 요인이 있고, 종단적 지원의 미비에도 상당부분의 미국포교의 어려움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미국에서 살면서 피부에 와 닿게 절실히 느낀 점이지만, 이민자들의 사찰인 중국계, 캄보디아 라오스계, 베트남계, 미얀마계, 일본계, 대만계의 대형사찰을 방문하여보니 그들도 자신들 나라의 고유 전통과 문화만을 배경으로 활동해서 인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독 대만계 사찰은 대형화를 꾀하였지만, 이는 본국의 지원과 재력 있는 후원자들이 일구어낸 결과일 뿐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의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증가한다는 언론의 보도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필자의 견해이지만, 서양에 전파된 불교는 서양에 토착화 되어야한다. 한국의 불교가 시스템에 문제도 있지만, 현지인들의 개종 또는 종교적 변화에 기대할 수 없고 대체적으로 이민 1세대 노년층 불자의 향수어린 불교, 실적 없는 포교에 한정된 것은 거주하는 스님들의 자질 부족에도 큰 원인이라고 재차 단언한다.
종단의 제도적 교육과 연수에 소외되고 참여 기회가 적음으로 인하여 종도로서 또는 수행인으로서의 의식이 희박하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또한 가장 큰 문제이지만,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전쟁터에서 장수에게는 칼이 있어야하듯, 언어구사능력을 갖추지 않고 해외포교에 임한다면 애초에 현지인 교화는 요원한 것일 뿐이다.
이질적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서양문화와 서양의 종교철학에 대해서도 폭 넓은 이해를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할 것이며, 포교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까지 갖추었다면, 더욱 부족함 없는 대용량의 포교사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이 있다. 그 나라의 법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관건이다.
지난 날 미국에서 포교에 대한 남다른 지식도 없으면서 겁 없이 덤비던 시절의 무모함에 한때는 자괴감이 일기도 했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숭산행원 큰스님처럼 미국포교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는 각오와 욕심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