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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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지혜의 나눔 실천을

수불스님
안국선원장


취재·정리 이권수 / 조계종 총무원


‘자성과 쇄신을 위한 5대 결사’ 중 네 번째 나눔결사를 주제로 법문한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스님은 물질적인 나눔을 넘어 깨달음과 지혜의 나눔 실천을 강조했다.
수불스님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이후 다섯 비구를 찾아가 법문을 하신 것이 나눔의 시초”라고 설명한 뒤 나눔결사를 통해 “부처님의 큰 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뒷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스님은 이어 쌀뜨물을 몰래 먹던 여인에게 탁발한 가섭존자의 일화를 예로 든 뒤 “먹을 것이 없어 공양을 올릴 것도 없었던 가난한 여인에게 나눔의 기회를 준 가섭존자의 모습은 부처님의 자비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특히 “기본적으로 나눔을 행하면서 진정으로 눈떠야할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기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며 깨달음과 지혜를 나누는 정신적인 나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법문 요지>


‘나눔’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면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없는 어떤 시련을 겪어왔겠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또 다른 어떤 입장과 다른 질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이 이렇게 이룩되지 않았겠나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이 출가를 결행하고 출가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1주일 용맹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도 6년 고행을 겪은 뒤에 마지막 1주일의 입장들이 굉장한 큰 시련을 가져왔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런 일련의 입장을 통해서 우리 인류는 정신적으로 무지에서 깨어날 수 있는 계기를 연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류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무명을 깨뜨리고 지혜로움으로 거듭날 수 있는 어둠에서 밝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그런 인연을 우리한테 전해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서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 나신 뒤 가장 먼저 한 것은 5비구에 대한 제도였습니다. 당신이 싫다며 떠난 5비구를 찾아가서 깨달음에 들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눔의 시작입니다. 물론 불교 이전에 인류가 생겨나면서 부모 형제가 있고 했기 때문에 물질적 나눔은 이미 충분히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로 교감할 수 있는 혁신적인 가치에 눈뜨지 못했습니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인류가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고마운 일입니까.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이런 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복적인 풍조에 빠져 혼란스럽게 살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안타까움 또한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데서 벗어나 거듭나기 위해 자성과 쇄신을 위한 결사가 시작됐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런 법회를 계기로 그런 입장들을 좀 더 확산시켜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큰 뜻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계승해서 뒷사람들에게 나누어야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실천할 때 인류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사태를 통해서도 느꼈듯이, 인류는 정신적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질서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찍이 부처님가르침 속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부처님의 제자인 두타제일 가섭존자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섭존자는 새벽원행 길에 쭈그리고 앉아서 무언가 먹다 부끄러워하는 가난한 여인에게 발우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주저하면서 그냥 지나가시라고 합니다. 그래도 가섭존자가 발우를 앞에 들이밀면서 ‘당신이 먹고 있는 것을 나한테 나눠 주십시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이것은 존자께서 자실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가십시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럼에도 가섭존자는 “당신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난들 왜 못 먹겠느냐”며 한사코 나눠줄 것을 청합니다. 이는 가섭존자가 가난한 여인에게 나눔의 기회를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섭존자의 그 모습은 부처님의 자비심이야말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길임을 보여준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떤 입장에서 깨어나도록 우리가 앞장서서 발원하고 그런 것을 결정지어 가는 모습으로 세상 사람과 함께하는 인연을 드러내야 되겠느냐, 이런 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과제입니다.
부처님께서 전한 메시지를 외면하고 세속에서도 다 아는 것들을 따라간다면 종교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종교가 생기고 나서 삶의 질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가 만들어지기 이전까지 인류는 사회적 가치, 인류적 가치의 기준으로해서 아마 사회적 구성원을 형성하고 씨족국가 이전에 어떤 모습으로 우리가 행하고 있었는지는 쉽게 알지는 못합니다. 참 곤란하고 어려운 삶을 우리 인류는 살아오지 않았나하면서 부족국가에서 도시국가 지금의 현대적인 국가 개념까지 왔습니다. 그러면서 불을 발견하고 농사를 짓고 문명의 이기인 기구를 사용하고 언어 문자를 사용하고 또 그런 입장에서 문명화되고 문화화 된 것들이 종교와는 무관하게 이뤄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진정한 종교가 등장하면서 인류의 가치는 한 번 더 큰 눈을 뜨게 되는 어떤 힘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를 믿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수단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라면, 종교인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사회를 맹목적으로 좇아가서도 안 되지만, 외면해도 안 됩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선행을 많이 합니다. 남을 배려하고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의 시대를 흔히 말법시대라고들 하지만, 그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더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뿐 아니라 역대조사와 선지식들의 가르침까지 있습니다.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어려워서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나눔 결사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신적 눈을 뜸으로 해서 우리의 입장이 변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일입니다. 지금은 비록 육안으로 보고 있지만 혜안, 법안, 불안(佛眼)까지 열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연을 맺어주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늦었다 하는 그 순간에 시작하면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인식했던 지혜는 밝음이 어둠을 비춰서 어둠이 밝아지면서 환해지는 모습을 지혜롭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종교가 세상에 공개적으로 드러나면서, 특히 불교가 세상에 드러나고 나서는 어둡고 밝고를 관계하지 아니하고 동시에 비출 수 있는 힘을 지혜라고 합니다.
밝음 먼저 비추고 어둠을 나중에 비추고 하는 모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비춰서 함께 볼 수 있는 여유로운 모습이 그 속에 있습니다. 그런 지혜를 어떻게 갖춰야 우리도 지혜를 눈뜰 수 있는가? 눈 뜰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런 기회를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제공받고 그 제공된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거듭날 때, 진정한 나눔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육바라밀이 하나이듯 5대결사도 하나입니다. 종단이나 불자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할 때 보다 나은 내일이 찾아옵니다. 종단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막무가내로 하는 법은 없습니다. 기대해도 좋을 만큼 합니다.
나눔이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이미 나누고 살고 있는데 불자가 안 나누어서 따로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법보시니, 무애보시니, 무주상보시니, 재보시니 하는 보시 이름도 수도 없이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몸에 배어 우러나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보살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종단, 우리 불교를 도와줄 때 최선을 다 해서 정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