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희
장순희치과 원장
한국치과교정연구회 부회장
2011년 7월 10일. 하노이를 통해 오후에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H대학교 치과대학 진료서클에 동참하여 해외 진료에 참여하였다. 1973년 치과 대학생이었을 때 배타고 섬 주위를 돌면서 환자를 보느라 힘이 많이 들었던 생각이 난다.
세월은 흘러서 근 38년 만에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한국의사가 만든 해브론 병원이라는 곳에서 진료를 하였다. 그 병원은 전액 무료진료였으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꾸려가면서 지역 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대부분 치아발치와 스켈링, 보존치료라고 썩은 이를 때워주는 정도이지만 치료를 받으려고 몰려온 사람들을 다 치료해 줄 수가 없어 번호표를 주면서 하루 200명 정도로 제한을 두었다. 치과진료의 가장 기본진료이기는 하지만 9대의 진료의자는 쉼 없이 돌아가면서 열심히들 하는 모습이 야전병원을 방불케 하였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치료해택을 받기위해 3시간 이상을 걸어서 혹은 차를 타고 와서 진료를 받고 가려고 점심을 걸러 가면서 까지 긴 줄을 기다리는데, 우리가 남해 진료를 하던 그때가 생각이 났었다. 4일간의 일정에 700여 명이란 숫자를 소화할 수 있었으며, 구강외과팀들이 와서 언챙이 수술을 할 수 있어 얼마나 보람을 느꼈는지 모른다.
주로 이곳의 구강상태는 양치질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으며, 치석이 씹는 면까지 덮여 있었다.  그로인해 치아가 많이 썩어 있으며 특히 어금니는 거의 뿌리만 남아 있어 식사를 원활히 할 수 없어서 그런지 성장이 많이 지연된 느낌이다. 더위에 치아가 더 많이 상할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나라 사람들의 눈빛은 참으로 사슴과 같다. 거짓이나 욕심의 눈빛은 찾을 수가 없으며, 3시간 이상 걸려 손녀 인지 딸인지는 잘 모르나 어떻게 하든 치료를 받고 가려는 분이 있어 애를 먹었다. 가뜩이나 통역이 모자라 말이 통하지 않는데 2명의 통역사가 붙어서 할아버지를 설득 하였다. 한 30분을 그러시다 가셨는가보다.
1960년대 시간여행이라 생각하고 떠났던 진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전 후 우리의 모습을 뉴스에서도 간혹 봐왔지만, 너무나 발전을 한 21세기의 한국의 모습은 여러 분야에서 익히 들어 왔다.
특히 치과 분야에서는 수술 분야가 두드러지고, 교정치료능력, 임플란트 등은 치과의사 자신인 술자도 놀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는 의료보험이 잘되어 있어 기본 진료는 보험혜택을 충분히 받고 있는 것 또한 국력의 신장을 과시하는 것이다.
더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비지땀을 흘려가면서 진료에 참가한 시간들이 너무나 귀하고 귀한 시간이었으며, 치료 후에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하면서 가는 그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은 무엇이었을까?
더운 나라에서 단일 과목에 38명의 대원들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간혹은 더위에 쓰러져 링거를 맞기도 하면서 우리들의 할 일을 하고 돌아왔다.
이제는 필자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이 열려 이렇게 귀한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마음 뿌듯하였다. 앞으로도 주어지는 시간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조건 없이 갈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겠다고 부처님께 서원을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