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숙
수필가·문화센터 강사
살면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상대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려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전혀 의식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이뤄지는 상처도 있다. 상처는 마음의 상처와 신체적인 상처가 있는데, 신체적으로 생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지만, 마음에 생긴 상처는 트라우마가 되어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살면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만남 속에 그 누군가를 떠올리면 추억의 선물을 해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사람은 미움과 분노의 활화산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 상흔을 남긴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용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주위에서 과거 선생님의 편견으로 자신감을 잃고 성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평범한 우리도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 대상이 아닌 상처와 모욕을 준 자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면 무척 불행하고, 상처를 준 과거의 행동이 후회스러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에게 상처를 준 자를 평범한 우리는 쉽게 편안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물론 한마디로 어렵다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용서는 그 대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본인이 편안해지기 위해 해야 하는 필요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괴롭힌 누군가를 향한 미움의 불씨를 없애버려야 우리는 원망의 터널을 거쳐 행복의 터널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없었던 일로 한다거나 그 사람의 잘못을 지워주려고 하는 것이 용서는 아니라고 한다. 즉,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상처에 얽매여 힘든 감정의 족쇄를 스스로 풀기 위함이다.”라는 혜민 스님의 말씀처럼 내안의 응어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보다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도 용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상처를 준 자가 상처를 받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만약 상처받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자라면 그 사람의 영혼이 불행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아예 무시해버리고, 우리를 향한 자비의 눈길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자. 그러다 보면 굳었던 마음이 점점 녹으면서 여유가 생기고, 자신을 옥죈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서 미래를 보는 혜안이 탄생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는 반복된 과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상처의 목록이 나날이 늘어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상처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여! 용서란 비싼 통행료를 지불하고 자비의 눈길로 거듭 태어나 보자. 우리는 우리의 한 번뿐인 값진 인생을 분노의 감정으로 헛되게 낭비할 수 없으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