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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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얹혀진 여름꽃비 가슴에 화두로 담아보다

고은사 카페 ‘우화루’에서


 이서연 시인


하루 종일 분주하지만 분명한 것은 없다. 분명하지 않아도 마음자리 찾아 미소 하나 챙겨 볼 수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주인이 될 수 있다. 내 자신의 주인공을 알고 분주함 속에서도 순간순간 자신의 영혼을 챙겨 볼 수 있다면 아무리 번뇌가 불덩이처럼 끓어도 가는 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내 안으로 들어가 본다. 지금 초록은 깊어가고 바람은 진해지고 햇살이 무거워지고 있다. 과실이 익어가는 계절엔 한웅큼의 햇살이 달콤함을 빚고 한 겹의 바람이 과실의 결을 다듬어 간다. 신호현의 시인의 시 「의성 옥자두」에 “오랜 세월 단단히 익어/투명하게 익은 몸”이라는 구절이 있다. 옥자두의 향기가 있는 고장을 자두의 계절에 들어가 보았다.
숲은 여름 속으로 들어가는 그 누구라도 참나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특히 의성 고운사로 들어가는 숲길은 고운 최치원의 학문과 정신을 담아 놓은 ‘최치원 문학관’을 지나면서부터 묘한 설렘을 준다. 그 설렘으로 적송 우듬지 끝에 걸린 구름에게 벗을 청하게 된다. 숲은 변하는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알려 주고, 바람은 변하지 않는 모습 속에서 변하는 진리를 말해 준다. 고해의 중생에게 숨 가쁜 일상은 항상 버거운 순간의 연속이다. 그래도 이생에 몸을 받아 태어난 이상 감내해야 할 이치임을 알기에 버거움은 이렇게 숲길을 걸으며 숲길을 안내해 주는 바람에게 안겨 풀어갈 뿐이다. 
고운사는 등운산 품, 연꽃이 반쯤 핀 형국이라는 ‘부용반개형상’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산사다.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해 ‘고운사高雲寺’라 했는데 신라 말 불교와 유교·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如智·여사如事 스님과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여 그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가운루는 고운사 산문에 산자락과 수평을 맞춘 듯 계곡 바닥을 딛는 나무 기둥으로 지주목을 세워 얹힌 건물이다. 본래를 가허루駕虛樓였는데 공민왕이 노국공주가 죽자 전국을 여행하다가 고운사에 들러 직접 가운루라는 어필을 남겼다고 한다.
고운사는 최치원의 흔적을 염두에 두지 않고 둘러보더라도 연못 같은 하늘에서 수행하는 고운 구름과 도반이 되는 도량임을 느끼게 된다. 이곳 고금당 선원은 서산, 사명, 전강 큰스님들이 거처 간 활두참선도량이라 지금도 면벽참선 납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도량을 현대인들을 위해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살펴보고,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는 마음여행”을 제공하고자 템플스테이를 허락하고 있다.
도량 중심에는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 예고한 ‘연수전’이 있다. 연수전은 본래 기로소耆老所의 원당이다. 기로소는 일흔 살 이상의 정2품 이상 문관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인데 태조와 숙종, 영조, 고종이 이곳에서 수행한 바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황실 건축의 격에 맞게 지어져 문화재청에서 보물로 눈여겨보고 있는 건축물이다. 사면에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운릉도와 봉황도, 장생도가 그려진 벽화가 신비롭고 오래되어도 품격이 느껴진다. 전국에서 기가 쎈 장소로 알려져 나침반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곳을 둘러보는 것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고운사는 지장도량으로써 죽어 저승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를 다녀왔냐고 물어본다는 지장보살이 약사전에 모셔져 있다. 그곳엔 반듯하고 또렷한 표정의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있다. 소박한 미소에 합장하고 돌아서면 그 전각 맞은편으로 한 조각 구름처럼 보이는 삼성각이 보인다. 삼성각에 올라가 도량을 내려 보노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바람이 알려 주는 심법의 길머리가 트인다. 바람 속에서 잠깐의 졸음도 참선이 되고, 고요히 깊게 쉬는 숨은 참선에 든 졸음을 깨운다. 
세월의 향기를 품고 있는 삼층석탑이 있는 길을 오르면 나한전이 마치 구름처소인 듯 나타난다. 맑은 하늘에 구름은 꽃이다. 구름 한 점만으로도 온몸에 법향이 스미는 것을 보니 그 구름이 가슴 속 꽃비로 내려오는가 보다. 고즈넉한 자리가 참 맘에 든다.


구름은 타고난 외로움으로 세상을 쓴다
나의 길이 어디든 세상은 나의 언어로 태어나고
나의 언어가 세상이 되는 길에서
바람은 외로운 구름을 태우고 세상을 돈다
머무는 길에 잎을 틔우고 그 잎에 입맞추며
때를 기다리는 이의 가슴으로 구름을 보내주며
 
고운사 도량으로 나를 보내 준 바람
잠시 그 속뜻을 헤아리다 여름 한 칸 자리하고 누워 본다
쓸데없는 말 부질없는 언어를 고르다가
구름이 꽃향으로 내려오는 이치를 찾으라
느닷없는 화두에 화들짝 깨어 본다
 
가운루를 보면서 가운루 중심을 지나는 물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우화루다. 가운루를 건너가면 풀꽃을 피우고 있는 높은 축대가 있고, 그 끝에 공양간이 있다. 공양간 입구에 걸린 호랑이의 눈이 범상치 않다. 나를 따라오는 눈빛인지, 나의 길을 비춰 주려는 눈빛인지 범상치 않은 그 호랑이의 또 다른 분신이 우화루 건물 벽에도 그려져 있다. 건물 처마 밑에 ‘천년 솔향 雨花樓 Coffee’라는 작은 푯말이 다정하게 보인다. 솔향과 아름다운 꽃비가 내리는 카페인가 하며 우화루에 들어가 메뉴판을 봤다. 가을 길목에 들렸다면 고운사 돼지감자차를 한 잔 마셔 보겠건만 여름 한가운데를 건너는 여행 중인 까닭에 카페에 은은히 퍼져 있는 커피향을 이기지 못해 커피를 주문했다. 한편에는 불교용품을 팔고 창가에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는 평범한 찻집이지만 아담하고 고적한 고찰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내게 정성스레 커피를 주시며 넌지시 건네는 차보살님의 따뜻한 안내가 법문처럼 들린다. 우화루에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도교의 영향을 받은 의미의 ‘우화루羽化樓’와 불교적 의미의 ‘우화루雨花樓’가 있다고 한다. 벽화의 호랑이 눈이 심상치 않더니 등운산을 휘감고 있는 구름 또한 범상치 않구나 싶다. 우화羽化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나온 말로 사람이 몸에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이다.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말과 부합이 된다. 의성은 마늘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마늘은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세포노화를 늦춰주므로 불로장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우화등선 한다는 말이 있다. 여름이 가득 차 있는 연못과 가운루가 보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다보니 의성과 최치원, 그리고 우화루가 묘하게 오버랩 되었다. 신선사상과 부처님의 법향이 흐르는 도량에 앉아 차를 마시는 이 몸은 언제까지 시체 덩어리일 뿐일까 성찰해 본다.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산자락
멎은 듯한 시간 위에 잠시 쉬어가라는 자리
가슴에 꽃을 피워 세상을 향해 뿌리는 마음으로
차를 한 잔 마시렵니까
천년을 지나온 솔향으로 마련한 산사카페에서
그대, 나와 차를 나누시렵니까
 
마음은 생각의 머리, 화두가 엉키는 날에는 그냥 쉬어갈 뿐이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둘이라도 외롭고, 여럿이어도 외로운 게 사람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관념에 묶이기보다는 이렇게 바람이 구름을 싣고 오고 그 구름이 꽃비를 내리는 순간을 산사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듯 즐기며 쉬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