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각배覺培 스님
각배 스님은 불광산에서 출가하기 전 아르헨티나에서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어느 해 브라질에서 홍법을 하던 각성覺誠 스님이 추천한 인연으로 저를 따라 유럽 홍법을 떠나는 길에 동행을 했습니다. 저는 각배 스님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질문하라 일렀습니다. 그러자 일정 내내 끊임없이 제게 질문을 하였고, 저도 제가 아는 만큼 모두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홍법 일정을 원만히 마칠 때까지 그는 수백 가지가 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학문’이란 배우고자 하면 물어봐야 하고, 질문을 해야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알고 싶은 것을 질문하고, 저는 바로 답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주고받는 사이 각배 스님은 어느 정도 증진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원래 다른 사찰에서 출가를 하려 했었지만, 마지막에는 불광산을 선택했고 우리도 크게 기뻐했습니다. 저는 겨우 이틀 동안 그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불광산의 독서회와 불광회 등을 창설한 소중한 인재를 얻었습니다.
저는 관리학이 때로는 이 ‘앎(知)’에서부터 그를 증장시키고, 이치에서 그가 알아차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치’와 ‘불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가 설명해 주어 지식이 늘고 공경심이 생겼기 때문에 신앙은 더 늘어나게 될 것이고, 비교적 쉽게 수행과 도를 깨우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나면서부터 알고, 누군가는 배워서 알고, 누군가는 곤경에 처해서 배우게 된다 하였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이해하고 알았다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불광산으로 꼭 오라!” 당부한 적도 없고, 그가 저에게 질문 좀 하였다 해서 인력을 충원하려는 것처럼 그를 스카우트하려고도 안 했습니다. 그저 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 그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선택이 있으니 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비둘기는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다시 돌아오는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훌륭한 말은 지나간 길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다행히 각배 스님이 수승하여, 수많은 문제를 해결한 뒤, 어디로 갈지 그가 알아차렸을 것은 당연합니다.
관리학에 대해 말하자면, 저의 관리는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관여를 안 한다는 것’ 내에는 또 많은 관리가 있다고 늘 말합니다. 관리학을 응용한다 하여 반드시 규제가 담긴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여상如常 스님, 각원覺元 스님
제가 불광산에서 『불광교과서佛光敎科書』를 편집할 당시, 두 제자가 저를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여상 스님이고 한 사람은 각원 스님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학원 석사 출신으로 불광산의 각 부서에 파견되어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이 주무 책임자의 방식과 마음이 맞지 않아 곤란을 겪던 중에 스스로의 고뇌를 표현하고자 저를 찾아온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하나의 쓰레기통’이라 비유합니다. 모든 사람이 쓰레기와 고뇌를 갖고 저를 찾아오지만, 즐겁고 기쁠 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똑똑합니다. 제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총명하지 않고 이 통로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저를 찾아오지 않고,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감정적 처리를 해버리니 그 결과는 늘 제 예상을 넘어섭니다.
여상 스님과 각원 스님이 저를 찾아왔을 당시 두 사람 모두 불광산에서 지낸 지 이미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총림학원을 졸업하고 석사까지 공부한 뒤에 각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니, 부서가 적합하지 않았다 생각했다면 그것은 그들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연분이 맞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도 그 두 사람의 능력이 어느 정도이며 성격은 어떠한지 알지 못했고, 갑작스럽게 찾아왔기 때문에 저도 뾰족한 수가 없이 “이렇게 합시다. 제가 지금 『불광교과서』를 편집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옮겨 적는 것과 타이프 치는 것을 도와주며 일단 여기에 있어 봅시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두 사람은 흔쾌히 저의 일에 동참하였고, 일도 무척 잘했습니다.
『불광교과서』 안의 수많은 삽화는 모두 여상 스님이 저를 도와 작업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불광교과서』가 깔끔하고 예쁜 디자인으로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또한 그때 저는 늘 노래와 이야기를 곁들인 포교를 제창해 왔는데, 각원 스님의 목소리가 우렁차, 노래와 이야기를 곁들인 포교 공연이 있으면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있는 곳에서 소임을 살며, 제가 집회를 열 때마다 각원 스님은 노래를 부르며 홍법하였고, 제가 편집하려면 여상 스님이 그림을 디자인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저를 따라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곳에 안착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소임을 다하고 화목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뒤, 저는 그들을 각자의 장점을 살려 발전하도록 소임을 맡겼습니다. 여상 스님은 저를 위해 문교기금회와 운수서차(이동도서관)를 맡아 운영하고, 불타기념관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각원 스님은 타이난에 남대별원南台別院을 건립하였고, 후에 타이베이 도량 주지 소임을 맡았습니다. 두 사람은 맡은 바 소임들을 훌륭히 처리하였고 널리 홍법을 펼치면서 각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였으며, 지금은 불광산의 우수한 동량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저를 찾아왔을 때 제가 먼저 야단을 쳤다면 그들은 마음속에 불만을 가졌을 것입니다. 억울한 마음으로 저를 찾아왔는데 제가 또 그들에게 야단을 쳤으니 불만이 마음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옳다 그르다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제 곁에 머물며 일을 하면서 안정을 찾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타인을 한 번에 너무 많이 책망하거나 너무 많이 칭찬하지 말아야 하며, 서둘러 결론을 내려 너는 이러이러하고 그는 저러저러하다 하며, 네 잘못이다 그의 잘못이다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일을 도리어 더 엉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능력과 배운 바를 펼칠 수 있도록 놓아두는 것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상 스님과 각원 스님에게 간섭하지 않는 관리를 하고,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고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성실하게 일하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저 멀리 치워버리고, 누가 좋고 나쁜지 상관하지 말고, 불법을 중요시하고 사업을 우선시하고, 인아人我를 마음에 담지 않고 대립하지 않는다면 해내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