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범
숲해설가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인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는 여름이면 오래된 회화나무가 화사한 꽃을 피운다. 하얀 꽃의 향기로 주변은 즐겁다. 조계사 옆의 우정총국에도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푸름을 자랑한다.
회화나무는 지체 높은 양반집이나 관아 터, 서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급 정원수이다. 궁궐에서도 많이 심어졌다. 창덕궁 정문 돈화문을 지나면 맨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노거수가 있는데 바로 회화나무이다. 좌측으로 세 그루가 있고 금천교를 지나면 더 큰 회화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창경궁에도 궐내각사 초입에도 오랜 세월을 버티다 속을 비우고 비록 지지대에 의지해 있으나 아직도 많은 가지를 드리우고 멋지게 서 있다. 선인문 주변에도 비명에 간 사도세자의 일화를 간직한 채 수형이 비틀린 기이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도 회화나무다.
회화나무에 꽃이 피면 여름이 한창임을 알 수 있다. 열정적인 더위가 물러가고 햇살이 건조하다고 느낄 때쯤이면 회화나무 가지에서는 연노란 꽃이 다투어 피어난다. 수많은 꽃들이 작은 벌새처럼 꽃잎을 열어 나무 전체를 우윳빛으로 물들인다. 다른 나무들이 열매를 살찌우고 익어갈 때 회화나무는 비로소 꽃을 피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대기만성이랄까 이어진 가지마다 수많은 꼬투리를 매달고 속에는 씨가 여물어 간다.
회화나무는 콩과식물로 실제로 꼬투리를 열면 작은 팥알 같은 씨가 3~5개씩 들어 있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리면 잎이 시든다. 떨어질 때는 깃꼴 모양으로 달려 있던 작고 긴 타원형의 잎사귀가 하나씩 떨어져 땅에 깔린다. 그러면 지상은 온통 녹색 카펫으로 변한다. 회화나무의 잎들은 꽃잎처럼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며 사라진다. 가로수로 심은 회화나무도 예외는 아니어서 떨어진 작은 잎사귀들이 빗물에 젖어 서러운 이별을 한다.
회화나무의 어린 가지는 녹색이다. 오래된 가지는 잿빛을 띠지만 더 오래된 묵은 가지는 거칠게 갈라지며 거대한 줄기로 자란다.
회화나무는 천 년을 사는 나무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와 함께 4대 장수목이다. 네 가지 오래 사는 나무 중에서 느티나무와 팽나무만이 우리나라 자생 수종이고 회화나무와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회화나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사기』 열전에 “성이 함락되자 백제의 해론이 회화나무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 훨씬 이전에 들어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회화나무는 지는 꽃이 아름다운 나무다. 장마가 막 끝난 어느 날부터 천천히 꽃이 벙글어지기 시작하여 점점 연노란 꽃송이를 더하다가 절정기를 지나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작은 꽃잎이 지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는다. 쓸어도 이튿날 자고나면 또 그만큼 깔려 있다. 밟고 지나가기 아까울 정도로 가련한 꽃 이파리들. 시들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송두리째 버리는 열정의 꽃들은 그렇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아쉬운 꽃이다.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아주 귀하게 여긴다.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 앞에 심는 나무다. 대성전에는 세 가지 중요한 나무를 심어 왔는데 측백나무와 은행나무, 회회나무가 그것이다. 이들 세 가지 나무는 천 년 이상 된 거목들이 많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세운 조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문묘에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를 심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함께 회화나무 거목이 아직도 많은 이유는 그만큼 귀하게 여겨 잘 가꾸고 보호해 온 덕분이다.
중국의 주나라 때 회화나무는 조정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궁궐의 뜰에 심고 삼정승으로 하여금 각기 그 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돌보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회화나무는 지금까지 입신양명의 표상이 되었다. 삼공구경三公九卿이 집무하는 곳에 심는 나무이므로 그곳으로 다가가기 위한 학문의 길을 괴문극로槐門棘路라고 했다. 여기에서 ‘괴’는 회화나무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회화나무를 ‘괴槐‘라 쓰고 ’느티나무 괴‘ 또는 ’회화나무 괴‘라고 읽었다. 황제와 군왕이 정사를 돌보는 궁궐을 ’괴신槐宸‘이라고 했는데 회화나무가 있는 큰 집이라는 의미다. 또한 음력 7월 회화나무 꽃이 필 때 치르는 진사시를 ’괴추‘라고 불렀다. 초가을로 접어드는 때 관리가 되기 위해 치르는 예비시험을 회화나무 꽃에 빗대어 지칭한 말이다. 시험장으로 가는 길을 ’괴로‘라고 한 것도 회화나무와 관련된 말이다.
주나라 때에는 묘지에 심는 나무도 엄격하게 구분했는데 왕릉에는 군왕을 뜻하는 소나무를 심고 종친은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인 측백나무를, 당상관 이상의 고급관리는 회화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학자의 묘지에는 모감주나무를 심었으며 일반 백성은 포플러를 심었으니 회화나무가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남가기南柯記』나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는 당나라 때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괴안국에 초대되어 잘 지내다가 문득 깨어나니 꿈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꿈에서 깨어난 순우분이 기대어 잠들었던 회화나무를 베어 냈더니 실제로는 개미의 소굴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회화나무는 입신양명을 염원하는 이상적인 나무이면서 동시에 피안의 세계로 가는 지표가 되기도 하였다. 서원이나 향교에 회화나무를 심고 사대부의 뜰에도 이 나무를 심은 것은 이처럼 비단 관상으로서의 가치를 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성정이 학문과 출세를 뜻하기 때문에 더욱 선호되었던 것이다. 회화나무는 선비가 진리를 찾도록 길잡이가 되어 준 나무였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관리로서의 첫발을 디뎌 진사시를 치르듯 고관이 관직에서 물러나면 향리로 돌아가 회화나무를 기념으로 심었다. 물러나는 관리에게 후배들이 회화나무 묘목을 선물했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회화나무는 자원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변재는 희고 깨끗하며 심재는 다갈색이다. 단단하고도 결이 고와 고급 가구재나 불상의 조각재로 쓰인다. 회화나무 씨는 괴황이라 하여 황색염료도 사용된다. 괴황을 삶은 물에 백반이나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고 비단이나 베를 물들이면 노란 옷감이 된다. 여러 번 반복하면 짙은 노란색 옷감을 얻을 수 있다. 회화나무의 초록색 가지도 잘라 습기로 생기는 여러 가지 증상의 치료제로 사용한다. 회화나무 꽃은 말려 치질, 혈변, 고혈압, 대하증 등을 다스리는데 이용하였다.
회화나무는 콩과식물로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기질이 적은 척박한 땅에서도 스스로 질소를 고정하여 살아갈 수 있다. 새로 조성한 땅이나 성토지에 심을 수 있는 나무로 좋다. 가축의 사료로도 좋고 떨어진 잎은 녹비 효과도 뛰어나다.
회화나무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최근에는 가로수로도 널리 심고 있다. 서울 인사동 길이나 강남의 가로수로 만날 수 있다. 줄기가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성질이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럽고 힘찬 기상을 느낄 수 있다. 학문이 개성이 있고 창조적이어야 하듯 회화나무 또한 개성이 뚜렷한 나무인 것 같다. 학문의 상징이요 지혜의 상징인 이 나무를 널리 심고 가꾸어 지는 이유다.
조계사 대웅전 앞의 회화나무 아래에서 미래를 꿈꾸고 사회와 중생을 제도하는 큰 뜻을 다시 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