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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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적하는 소들에게는 죄가 없다

 


정성운
텃밭농부


7월 16일, 나의 작은 기념일로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내가 텃밭에 기른 수박을 수확해 먹은 날이다. 텃밭 농사를 하면서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어 수확해 먹는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지난해에도 수박을 길렀지만 한 통도 얻지 못했다. 이날 먹은 수박은 망고수박이다. 몇 년 전부터 보급된 품종이다. 일반적인 수박과는 다르다. 우선 크기가 작다. 두 손을 둥글게 만든 정도의 크기이다. 무게는 1~2kg 정도이다. 속이 노랗다. 망고와의 만남이니 색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당도는 일반 수박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크기가 작으니 식구가 많지 않은 가족들이 먹기에 좋다.


내가 길러 내가 먹는다


내가 길러 내가 먹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밭을 일구어 씨 뿌려 거두기까지의 과정에 내가 참여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직접 농사하지 않는 한 누리기 어렵다. 수박 한 통을 먹는다는 것만 본다면 누가 길렀든 차이가 없다. 수박을 사서 먹으면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여린 순이 자라 아들줄기를 뻗고, 일곱 마디쯤에 엄지손톱만한 열매를 단 암꽃이 피며, 수정되지 못한 열매는 이내 말라버리며, 아들줄기 외에 생긴 줄기는 잘라주며, 어디선가 날아온 벌이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고, 이런 과정을 거쳐야 튼실한 수박 한 덩이를 얻는다. 1만5천 원을 지불하고 얻는 수박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과정이다.  
시장이 아닌 곳에서 먹거리를 마련했다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시장은 내가 참여할 수는 있어도 통제할 수는 없다. 돈을 내는 역할에 한정된다. 흥정은 할 수 있지만, 가격을 내가 정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내가 원하는 품질, 그러니까 무농약, 무화학, 무전기, 유기적 농법에 의해 생산되는 농작물을 구매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유기농 비율이 2%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농작물은 소위 말하는 관행농법(농약 비료, 토양소독제, 비닐하우스 또는 비닐 멀칭)에 따라 생산되는 체제이다.
텃밭은 규모가 작지만 내가 원하는 작물을 내가 선택한 농법으로 흠뻑 땀 흘려 길러서 먹는 재미를 준다. 나와 작물, 밭, 기후의 관계가 확연해진다. 텃밭은 단순한 땅 이상이다. 내가 자연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자연성, 직접성의 공간이다.


흐림 또는 폭우와 거센 바람의 날


인간이 농업을 시작한 것은 1만 년 전쯤부터다. 그전에는 사냥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구했다. 사냥보다는 채집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채집은 주로 여성들의 일이었다. 농업의 시작을 인간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로부터 정착 생활이 이뤄졌고, 먹거리가 풍족해지면서 계급이 생겨났고, 집단 간 식량의 불균형으로 인해 부족 간의 다툼이 전쟁의 규모로 커졌기 때문이다. 또 농업노동과 전쟁이 남성들의 몫이 되면서 남성이 주도하는 세상이 되었다. 정착과 계급 발생, 전쟁, 남성의 지배는 지난 1만 년 동안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농업의 시작을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 계기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농업이 있음으로써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앞으로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는 있다.
불교의 ‘세기경世紀經’은 이러한 상황을 담고 있다. 지배라는 억압 구조가 사람들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음을 전해주고 있다. 이 경을 역사로 읽어서는 안 된다. 지배와 피지배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탐욕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이 경의 주제이다.
지난 7월은 내내 흐림 또는 폭우와 거센 바람의 날이었다.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었으니 장마는 참으로 가혹했다.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힘겹게 버텨내야 하는 처절한 시기이다. 물의 힘을 이겨내기에는 사람의 힘이 달린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시간당 강수량이 100ml가 넘어선다면 불감당이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농사를 짓는 한 유튜버는 순식간에 물이 닥쳐 허리께까지 차올랐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배추 모종이며 포장용 종이상자, 수확해 저장 중인 마늘이 물에 잠겼다. 부인과 함께 그나마 쓸만한 것을 골라내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그의 마음은 빚이 떠올라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서산의 인삼농장도 물에 잠겼다. 길게는 6년을 길러야 하는 인삼이 상하면 피해가 막심하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기상 현상 중 하나인 장마는 지구가 더위를 식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기온이 오르면 바닷물이 증발해 구름을 만들고, 구름은 비로 내린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지구는 뜨거워져 사람이 살지 못한다. 작물도 키우지 못한다. 그러니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다. 지금의 극한기후는 사람이 만든 현상이다. 온실가스가 지구를 뜨겁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 더워졌고 더 많은 비를 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40도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겪어보지 못한 더위가 닥쳐왔다.


극한기후에 기여하는 농업


극한기후를 가져오는 원인에서 농업도 자유롭지 않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 메탄 배출량의 60%, 아산화질소 배출량의 80%가 산업농 활동에서 발생한다. 놀라운 수치다. 화학비료와 농약, 거대 농기계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세계 규모의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1%로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산업별 온실가스 배출 비율을 보면, 공공 전기 및 열 생산 부문이 32.7%로 가장 많다. 이어 수송 14.4%, 철강 14.3%, 화학 7.8%, 산업공정 7.5%, 가정 4.7% 순이며, 농업이 그 뒤를 이었다.[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2021년 국가 온실가스 잠정배출량’] 
이에 따라 농업 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낙농업이 발달한 나라인 덴마크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소, 양, 돼지를 키우는 농가에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조치에 대해 정부와 농민단체 등 관련 단체들이 합의했으며, 2030년부터 시행된다. 덴마크의 세무당국 책임자는 “향후 국가 전체 식품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덴마크의 이런 조치는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대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국제적으로는 합의했지만, 자국의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목표 이행을 미루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덴마크 사례는 파격적이다. 그러나 갈 수밖에 없는 길을 먼저 가는 것이라는 평가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탄소세만 부과하면 농가 부담만 늘 수 있는데 정부에 내는 (농민) 소득세를 60% 감면해주는 세수 중립적 세제 개편안을 도입해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탄소 배출량은 줄이고 경제주체들이 경제활동에 적극 나설 유인을 만들었다”며 “그간 선진국에서도 농업은 보호해야 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농업 부문에 탄소세를 도입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라고 말했다. 가축 분뇨·소화 과정에서 생기는 트림, 방귀 등을 통해 나오는 메탄은 지구 온실가스의 11%가량을 차지한다.[경향신문, 방귀 뀌었소?…덴마크 결국 ‘방귀세’ 매긴다, 2024.7.6.]
소들이 너른 초지를 거닐며 풀을 뜯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현장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좋지만은 않다. 푸른 들판에 유유자적하는 소들에게는 죄가 없다. 인간의 과도한 육식이 온실가스 배출의 보이지 않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