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경 / 동국대 선학과 강사
옛날 어느 나라에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며칠을 앓다가 쓰러져 목숨을 잃는 무서운 병이었다. 온 나라 의사들을 동원하여 고쳐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당황한 왕실에서는 커다란 제단을 마련하여 갖가지 음식을 쌓아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이 재난을 물리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절에서도 기도법회를 하며 불자들은 가족의 건강발원을 위한 등을 켜려고 열심이었다.
그 나라에 한 가난한 보살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남의 집일을 하며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불심만은 누구 못지않게 진실하고 순수했다. 보살은 병에 죽어가는 사람들 소식을 듣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도 절에 가서 등을 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등을 켜려면 보시금이 필요했는데 너무 가난한 형편에 어려웠다. 그래서 열흘 넘게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바느질을 하였다. 마음으로는 오직“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 우리나라를 구해 주소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병을 물리치게 도와 주세요….”하면서 기도드렸다.
그 마음이 너무 절실하고 병든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 바느질하는 손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곤 하였다. 밤새 울면서 기도하게 되어 아침이면 눈이 퉁퉁 붓는 경우가 많았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보살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에 품 삵을 모아 결국 간신히 보시금을 마련해서 절로 향했다.
야외에 특별히 마련된 곳에 각자의 초에 불을 밝혀 올리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 틈에서 보살도 자신의 초에 불을 밝히고 합장하며 간절히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수많은 촛불 위에 여지없이 비가 쏟아졌다. 촛불들은 꺼져 가고 사람들은 안타까워 웅성웅성하고 비를 피하여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러나 가난한 보살은 개의치 않고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 도와주세요, 불쌍한 사람들을 살려주세요. …!” 가슴에서 마치 뜨거운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쏟아지는 빗속의 모든 촛불이 꺼졌으나 촛불 하나 만은 여전히 밝게 빛나며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가난한 보살이 밝힌 촛불이었다. 보살의 눈에만 어떤 현상이 나타나보였다. 그 촛불로부터 나온 빛이 하늘로 올라가 전부 퍼져서 온 국토를 밝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부터 사람들의 병이 낫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열흘 째 되는 날에는 전염병이 그 나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한 가난한 보살의 간절한 마음과 기도가 온 나라를 살리는 마음의 촛불이 된 것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과도 유사한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기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마음이다. 세간에서는 지위와 재산, 능력, 외모 등을 비롯한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려 하지만 부처님은 오직 우리의 마음만을 보신다. 따라서 기도할 때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청정하고 진실한 마음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자들의 정진의 기본도 바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심(下心)하는 마음 없이는 기도할 수 없다. 따라서 기도는 나라는 아집과 나 중심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일심(一心)으로 해야 한다. 집착과 기도는 다르다. 바라는 결과만 얻으려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물론 생활 속에서 바라는 바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정진하며 생활의 모든 것을 수행의 재료로 삼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지 그 자체가 불자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면 기복에서 그치고 만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다. 진실하게 기도해 본 불자라면 누구나 그 기도하는 과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도의 공덕을 받고 있음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쫓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고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어려운 일이나 중요한 일이 닥쳐도 평정 한 마음으로 묵묵히 삶에 임할 수 있다는 자체가 바로 크나큰 은혜요, 감사함이 아니겠는가. 특히 불자들의 기도는 달라야 한다. 나만을 위하는 일은 누구라도 한다. 세상사람 누구나, 악인조차도 자기 자신은 위할 줄은 안다. 내면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부처님의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 불자의 길이다.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중생무변서원도를 행하는 것이 참된 불자다.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일체중생을 위하시는 관세음보살의 마음과 모든 중생을 단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제도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과 그 마음을 본받는 것이 불자의 마음자세이다. 한 청년 법우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회사에서 진급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부서의 일곱 명 중 세 명만이 합격하게 되어있었다. 아무리 잘 해도 세 명 안에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정말 치열한 경쟁이었다.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다가 문득 다른 동료들이 시험을 잘 못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들었다고 한다. 그래야 본인이 쉽게 삼등 안에 들 테니까. 신실한 불자인 그는 이런 자신의 마음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내가 이러고도 불자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만일 진급하고 후에 사장까지 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승진하려는 것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인데 바른 마음을 외면하고 무엇을 위해 출세하려는 것일까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곱 명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떳떳하게 결과를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그는 평정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고 감사하게도 결과는 합격이었다.
이와 같이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이다. 만일 수능시험이라면「모든 수험생들이 건강하게 최선을 다해 실력을 발휘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의 마음이 아닐까. 그 안에 내 자녀가 포함되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바른 불자의 마음을 가지는 사람의 기도를 부처님께서 외면하실 리가 없을 것이다.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으니 그것이야말로 참된 에너지이다”는 말씀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불심으로 충만하게 충전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밝은 빛으로 불보살의 마음과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힘은 무한하다. 불자 모두가 깊고 간절한 한마음을 내어 기도 정진하시어 뜻하시는 바를 모두 원만성취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