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시골에서 가시나무를 베어낼 때 가시가 손에 찔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백이십퍼센트 가시가 손을 찌르지만 그래 어디 한 번 찔러봐라 하고 손에 불끈 힘을 주어 단단히 붙잡으면 박혔던 가시도 저 멀리 도망갔던 기억이 하나씩은 다 있다. 『유마경』을 읽다가 천녀가 유마의 방장에 모인 보살과 성문제자들에게 꽃을 뿌리는 대목에서 문득 시골의 가시나무 생각을 떠올린다.
譬如人畏時 비여인외시
非人得其便 비인득기편
비유하면 마치 사람이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을 때
귀신이 그 틈을 타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명나라 통윤스님이 『관중생품』에서 해석하고 있는 내용이다. 한 줄 더 읽어 본다.
若菩薩 離畏生死 약보살 이외생사
一切五慾 無能爲者 일체오욕 무능위자
如淨名之受魔女 여정명지수마녀
是也 시야
만약에 보살이
생사에 대한 두려움을 떠나버리면
일체 오욕이 어찌해볼 수 없으니
정명거사가 마녀를 받아들인것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 몸에 찾아와 있는 가지가지 통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뼈가 부러졌는데도 나는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하면서 달리기 운동을 한다면 무모한 만용이다. 전에 어디선가 축구선수의 인터뷰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상대방 선수와 심한 볼 다툼을 하다가 무릎을 부딪쳤는데 뜨끔 뜨금하는 것을 꾹 참고 경기를 마쳤다.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와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았더니 뼈가 부러져 있더란다. 사실 웬만한 통증은 그 통증을 두려워하지만 않으면 얼마 있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우리 몸에 갖추어져있는 자연치유력은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미련스럽게 억지로 참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병원에 가야할 상황이면 병원에 가고 약을 먹거나 운동요법이 필요하면 물론 병행해야 한다.
문제는 통증을 대하는 나의 자세이다.
일단 통증이 느껴질 때 그 통증에 두려움을 품으면 통증이 말할 수 없이 증폭된다. 몸이 무겁고 시도 때도 없이 졸려서 시골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아득히 오래 전의 일이다. 의사선생님이 몇 가지 진찰을 해보더니 대뜸 “간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해야 된다.”고 말하는 순간 온 몸에 힘이 쑥 빠졌다. 안 아프던 곳까지 덩달아서 아픈 것 같고 밥맛도 아예 없어졌다. 도시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집안 어른 되시는 분이 말씀하셔서 좀 더 큰 병원을 찾아갔다. 여기서도 수술해야 된다고 하면 어쩌나 이런 저런 온갖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별거 아닙니다. 피로가 좀 쌓여있을 뿐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는 순간 발가락 끝까지 힘이 솟구쳤다. 팔뚝에도 생기가 찰나에 돌아왔다.
시골병원 의사 선생님이 오진을 한 것이라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수술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술하지 않고도 여전히 갈비뼈 안에 있으면서 기능을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그런데 아직도 수술해야 된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온몸이 묵직해지고 별거 아닙니다 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몸이 가벼워졌던 기억은 생중계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선명하고 또렷하다. 말 한마디가 몸을 무겁게 하기도 하고 가볍게 하기도 한다.
박지성 선수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히딩크 감독이 왔을 때 “너는 열심히 하면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수 있다.”라는 한마디를 해주는 바람에 그냥 신이 나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나중에 영국에 진출하고 나서 히딩크 감독과 얘기할 기회가 있어 그 얘기를 했더니 히딩크 감독은 그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마디 말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은 진정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반성도 하고 있다. 아니 한마디 말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오고 또 한마디 말 때문에 마음까지 가벼워지게 내 마음이 단단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쓴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동시에 내 안에 있는 간에게 깊이 미안합니다 하는 마음과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간과 쓸개의 입체 경계면까지 스며들도록 보낸다. 간뿐만 아니라 모든 장기를 떠올리면서 미안합니다 하는 마음과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보낸다. 실제로 폐·대장·위·비·심·소장·방광·신·심포·삼초·담·간님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하면 몸이 한층 거뜬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다. 절대 반말로 하면 안 된다. 존중하는 지극한 마음이 아니면 췌장의 깊은 속까지 감사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結習未盡 결습미진
華着身耳 화착신이
結習盡者 결습진자
華不着也 화불착야
번뇌의 습기가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꽃이 몸에 달라붙는 것이니
번뇌의 습기가 다 없어지면
꽃이 옷에 달라붙지 않습니다.
천녀가 사리불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두려움이라는 꽃도 마찬가지이다. 불안한 번뇌의 습기가 아직 남아있으면 다른 사람의 무심한 한마디에 그만 무언가 껄끄러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온다. 그러나 내 마음이 무심해져 있으면 저 상대방의 말이 내 마음의 물결을 흔들지 않는다. 언제든지 흔들릴 준비를 하고 있는 물결은 미풍에도 파도를 쳐올리지만 무심한 물결은 태풍이 몰아쳐도 고요할 수 있다.
문득 『수청집水淸集』이라는 책에 있는 구절이 떠오른다.
水淸而靜 수청이정
則月現全體 즉월현전체
月非取水而遽來 월비취수이거래
水濁而動 수탁이동
則月無定光 즉월무정광
月非捨水而遽去 월비사수이거거
물이 맑고 고요하면
달 전체가 연못에 나타나지만
달이 갑자기 물을 취해서 이르러 오는 것이 아니고
물이 흐리고 뒤흔들리면
달의 고요한 광명이 없지만
달이 갑자기 물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것도 아니라네
어떤 사람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내 마음이 어떻게 되는 것은 저 말이나 글, 티브이 때문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 될 준비가 되어있는 내 마음 탓이다.
내 마음 속의 컴퓨터 화면이 어떻게 껌벅이고 있는지 곰곰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