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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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물결이 피워내는 물보라꽃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가을의 자기장 에너지가 여름의 자기장 에너지를 밀어내고 우리 곁에 다가왔다. 어디로 가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도 제풀에 지친 것일까. 번개처럼 달리던 우사인 볼트도 세월의 흐름은 어찌해볼 수 없었던지 100미터 세계 일인자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만사가 그렇듯 넘겨주고 넘겨받고 다시 넘겨주는 모습이 아쉬움을 머금은 채로 그런대로 아름답다. 특히나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가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장자 내편 중에 제5편인 덕충부德充符의 한 대목을 읽어본다.


魯有兀者 王駄 노유올자 왕태
從之遊者 종지유자
與仲尼相若 여중니상약


노나라에 절름발이가 있으니
왕태이다
그를 따르면서 노니는 이들이
중니와 더불어 서로 같았다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다. 장자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허긴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안부를 서로 물은 지가 오래된 후배는 세종로 충무공 동상 밑에서 강감찬 장군과 이순신 장군이 캔 맥주 몇 박스를 놓고 마시는 것을 본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다가 잠에 떨어진 적도 있다.
왕태도 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절름발이인데도 그를 따르는 제자가 공자와 서로 비슷하다니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상계라는 또 한 사람의 가공 연극배우가 등장한다.


常季問於仲尼曰 상계문어중니왈
王. 兀者也 왕태 올자야
從之遊者 종지유자
與夫子中分魯 여부자중분로
立不敎 坐不議 입불교 좌불의
虛而往 實而歸 허이왕 실이귀
固有不言之敎 고유불언지교
無形而心成者邪 무형이심성자야
是何人也 시하인야


우리 선생님이 세상에서 비교할 데 없이 가장 훌륭한 줄 알고 있었는데 우리 선생님과 제자의 수가 비슷한 사람이 있다니 공자의 진짜 제자인지 아니면 가공의 제자인지 알 수 없지만 상계라는 사람이 호들갑을 떨면서 공자에게 묻는 장면이 본적도 없는데 저절로 떠오른다. 일단 일차적인 의미를 풀이하고 다음이야기를 진행해보자.


상계가 중니에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
왕태는 절름발이입니다.
그런데 그를 따르면서 노니는 이들이
선생님과 더불어 노나라 사람을
절반으로 나누어놓고 있습니다.
서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앉아서 이치를 논의하는 것도 아닌데
허하게 텅 빈 채 갔던 사람들이
마음이 꽉 채워져서 돌아간다고 합니다.
말로하지 않는 가르침이란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이며
형체를 보여줌이 없는데도
마음을 완성시켜주는 세계가
있는 것입니까?


仲尼曰 중니왈
夫子 聖人也 부자 성인야
丘也直後而未往耳 구야직후이미왕이
丘將以爲師 구장이위사
而況不若丘者乎 이황불야구자호
奚假魯國 해가노국
丘將引天下而與從之 구장인천하이여종지


중니가 말하였다. 그 분은 성인이시다.
나는 다만 뒤로 미루느라 아직 못 갔을 뿐이다.
나도 장차 스승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데 하물며 나만 같지 못한 사람의 경우이겠느냐. 어찌 노나라뿐이리오. 나는 장차 천하의 사람들을 인도해서 더불어 그분을 따르리라.


상계라는 제자가 스승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흥분이 좀 가라앉는다.


常季曰 상계왈
彼兀者也 而王先生 피올자야 이왕선생
其與庸亦遠矣 기여용역원의
若然者 其用心也 獨若之何 약연자 기용심야 독약지하


상계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절름발이인데도 선생님보다 훌륭하다니 용렬한 자취와는 거리가 먼 것이군요 만약 그렇다면 그 마음씀이 정말이지 어떤 것입니까.


그렇다. 마음씀이다. 손금을 보는 것이 관상을 보는 것만 못하고 관상을 보는 것이 심상을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용심, 마음씀이 어떠한가를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仲尼曰 중니왈
生死亦大矣 생사역대의
而不得與之變 이부득여지변
雖天地覆墜 수천지복추
亦將不與之遺 역장불여지유
審乎無假而不與物遷 심호무가이불여물천
命物之化而守其宗也 명물지화이수기종야


중니가 말하였다. 그의 마음씀은 생사가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를 변화시킬 수 없고 천지가 뒤집어진다고 해도 더불어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살펴보건대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으면서  외물과 더불어 옮겨가지 않고 만물의 변화를 천명으로 여기면서 근본종지를 지키는 사람일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심無心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왕태는 무심해진 상태에서 오는 이들에게 저절로 맞춤형 주파수로 응대한 것이다. 일부러 맞추어주는 맞춤형이 아니고 일종의 자동맞춤형이었다고 생각을 해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필자는 자동맞춤형 공부를 한참 해야 될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따로 공부를 한다고 해서 자동맞춤형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시험을 통과하거나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에 문제와 재미가 더불어서 함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인의 풍모를 지녔다고 전해지는 고려의 문신 오형吳詗의 시 한 수를 읽어본다. 추일범주秋日泛舟이다.


水鳥浮還沒 수조부환몰
沙洲直復斜 사주직부사
傍舟山展畵 방주산전화
迎棹浪生花 영도랑생화


물새는 떠올랐다가 빠져들어갔다가
모래톱은 곧았다가 구부러졌다가
배 옆으로 산은 그림 전시회 펼치고
노를 맞이하는 물결은 물보라꽃 피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