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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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람이 차향으로 맴도는 아름다운 산사

 수선사 ‘커피와 꽃자리’에서
                   
이서연
시인



질기게 느껴지는 여름도 그 끝은 힘이 없다. 매미 소리가 줄어드는 듯 하는 순간 귀뚜리의 노래가 가을 끈을 끌고 온다. 여름에 다 하지 못한 일들이 가을로 넘어가는 게 은근 걱정스럽다. 시간을 밟아가며 알뜰하게 지낸 듯 하건만 여전히 어느 틈으로 빠져 나갔는지 시간의 거름망엔 다 하지 못한 일만 걸러져 있다. 서슴없이 일을 하는 것 같아도 늘 쭈빗되는 게 많다.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려고 나 자신을 다그치듯 노력을 해도 제자리에서 맴맴도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럴 때가 바로 인생시계에 태엽을 감아야 할 때다. 전자 시대에 아날로그 같은 말이겠지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삶의 가치와 의미를 충실히 다지는 내용을 담으려면 지금 어떤 속도로 인생 시계가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고 태엽을 감아 줄 필요가 있다.
시계에 태엽을 감아주는 것과 인생시계에 태엽을 감는 것엔 차이가 있다. 시계태엽은 시계가 느려지거나 멈추기 전에 태엽을 감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인생시계엔 오로지 ‘쉼’이 태엽이다.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다시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을 만들기 때문이다. ‘쉼’-이건 막을 수 없는 세월을 보다 탄탄하게 하는 생명력을 준다.
인생태엽을 감아주는 쉼을 위해 떠난 곳이 경남 산청이다. 지리산 기운 한 자락 받고 싶었고, 아름다운 절이라는 소문에 끌려 수선사를 찾았다.
산청읍에서 이정표를 따라 제법 꾸불꾸불 산으로 올라간다. 지리산 동남쪽 마지막 봉우리인 웅석봉 기슭에 정갈하고 단아한 절 수선사는 직접 보지 않고는 말만으로 짐작하기 어려울만큼 그냥 마냥 아름답다. 절 입구에 흔히 있어야 할 일주문이나 천왕문 대신 최근에 지었다는 화장실이 당당하게 나타난다. 지형을 이용해 공간활용을 십분 활용한 지혜와 현대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외형적으로 봐서는 카페가 아닐까 싶다. 실내화를 갈아 신고 들어가면 은은한 박물관 느낌이다. 함부로 볼 일을 봐서도 안 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이가 내가 아니라 내가 아름다운 풍경의 한 쪽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고급스럽고 품위있는 화장실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주차를 하고 절 입구로 올라가려니 나무의 생김새대로 짜서 만든 작은 문에 ‘여일문(如一門)’이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한결같이’라는 그 다정한 뜻이 무척 가슴에 와 닿는다. 한결같기가 쉬운가. 그 여여(如如)함을 갖기가 쉽지 않기에 인생태엽을 감으려 산사를 찾은 것이 아니겠는가 싶어 이 절의 스님이 던지시는 화두라는 생각으로 문을 한참 보았다.


허기진 가슴으로 물음표가 들어온다
-한결같은가
마음 밖과 안에 문지방 없듯이
알 수 없이 시작한 인생시계에
그 끝이란 경계 또한 알 수 없는 것
 
혹여 내 몸으로 들일 수 있을까
지리산 바람 한 점 떼어 가려 들렸을 뿐인데
뜰 안과 밖 문지방을 넘기도 전
주장자 깃털이 날리듯
쿵! 하는 소리가 마음부터 가부좌 틀게 한다
-<여일문如一門을 드나드는 바람이 부러운 날>-


여일문은 절로 올라가는 길 입구로 만들었을 것 같은데 그 문은 닫혀 있고, 축대에 여전히 피어 있는 능소화 한 무리를 따라 오른편 산길을 오르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예쁜 연지蓮池가 나타난다. 그림 속 풍경을 풀어 놓은 듯 지리산 봉우리와 구름을 담아 놓은 연지는 여경 스님이 호미 한 자루 들고 다랑논을 파서 만들었다고 한다. 삐걱거리는 목책길이 연지 위를 걷는 즐거움을 준다. 연꽃이 진 자리에 가을을 들일 준비를 하는 연지는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열어 준다. 나무다리 입구에 “시절인연人蓮”이 적혀 있다. 시적인 표현이면서 선적이다. 시적인 표현이나 선적인 표현은 해설하지 않고 그대로 음미하는 게 좋다. 하나로 표현될 수 없고, 표현으로 표현이 다 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연지를 걷는 이에게 “시절인연人蓮”을 던져 준 스님의 뜻을 잠시 헤아려 본다. 연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맑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꽃이면서도 초연한 군자의 모습을 닮아 있다. 험한 산기슭에 잠시 쉬어갈 자리를 만들어 연을 심고, 다리를 놓아 중생들이 그 연 위를 걷게 한 스님의 속뜻은 시절을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라는 이 시절은 사람이 만든다. 연蓮을 닮은 인연과 연의 향기를 품고 사는 인연이 닿는 시절은 극락일 것이다. 그 인연을 향한 마음으로 수행삼아 쉼터를 마련하고, 수행하는 마음을 쉼이 필요한 중생들과 공유하고자 한 스님의 자애로움이 참 다정하게 여겨진다.
연지 위에는 늘씬한 새들의 긴 다리를 닮은 오죽烏竹이 아담한 숲을 이루고 있다. 조여왔던 시간이 그 숲을 보는 순간 느슨해진다. 멀리 겹겹의 산들이 바다처럼 출렁이는 자리에 지리산 정기를 한 몸으로 받을 수 있는 정자가 그림처럼 있다. 들어갈 수는 없어서 마음만 그 정자에 누워 잠시 여름을 보내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내가 혹여 어느 생에 저 구름이 된다면 나 또한 어느 날 이 도량의 바람 한 점, 풍경 한 점 되리라 생각하면서….
정자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지리산 큰 품에 아늑하게 모셔진 작은 집처럼 정겨움이 느껴진다. 깔끔한 잔디와 작은 연못이 도량을 둘러보는 즐거움을 준다. 서운하지 않게 피어 있는 수련 몇 송이가 구름과 놀고 있는 풍경, 그리고 오른편 낮은 지붕 처소 목우실牧牛室, 무량수각無量壽閣의 나무섬돌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볼 수 있다. 그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여여한 이 정경을 만드는 자체가 수행의 하나이리…. 깔끔하고 반듯한 도량을 보니 스님들을 만나지 않고도 어떤 마음, 어떤 생활로 수행하시는지가 느껴진다. 
수행은 심연深淵에 부처님을 모시는 작업이다. 그 수행의 결과는 심연에 모셔진 부처는 수행자의 평소 생활에서 나투신다. 저 풀 한 포기도 인연 없이 올라오는 것은 없겠지만 인연을 잘 짓고 사는 게 수행이라는 걸 잊는다면 마음숲엔 잡풀처럼 번뇌만 우거질 것이다. 잡풀 없이 잘 가꿔진 목수국 정원이 부처의 하얀 미소처럼 만발하다. 도량은 솔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대숲의 바람까지 품고 있어 부드러움과 친근감이 돈다. 대웅전 옆 샘물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멋진 카페로 향했다.
카페 ‘커피와 꽃자리’도 단순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 되어 이국적인 분위기다. 테라스에서는 카페에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으나 살짝 피곤한 여정을 풀 겸 수제 들깨차를 주문했다. 따끈하고 고소하고 향긋한 차맛에 마음 밑바닥부터 올라오던 피곤이 저절로 풀린다. 목으로 고소함이 넘어가는 순간, 가슴으로 지리산 바람이 맴돈다. 이 귀한 ‘쉼’에 저절로 합장하게 된다.
 
지리산을 풀어내는 솔숲 바람
솔숲바람을 그어내는 대죽바람
대죽바람을 매만지는 연잎 연잎
부처옷자락에 숨었다 나온 미소 아니랄까
내 마음자락도 끼여 나올 줄 모른다
-<‘커피와 꽃자리’에서 지리산을 마시면>- 


계절이 오고 가는 시간, 지리산 바람이 차맛으로 우러나는 수선사에서 인생시계에 태엽을 잘 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