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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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적 철학 사조를 직시하는 용성 선사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백용성(白龍城 1864~1940) 선사는 『귀원정종歸源正宗』이라는 책 속에서, 조선의 유학사상 즉 성리학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면서, 불교의 훌륭함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은 1913년 6월 12일 발간되었는데, 1921년 7월 15일에 재판되기도 했다. 용성 선사가 당시에 직면했던 철학사상은 대표적으로 조선의 성리학이고 또 하나는 서양의 기독교였다. 이에 대한 용성의 반응을 필자는 크게 네 측면으로 요약하여,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1.
먼저 윤리의 측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중국 송나라 이후 주자학자들이 불교를 비판할 때에 제일 먼저 들고 나오는 단골 주제 중의 하나가 불교에는 인륜 도덕 즉 ‘강상綱常’의 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용성 선사는 이렇게 변론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용성 선사는 불교도들이 5계를 지키는 것이 유학의 5상의 윤리를 지키는 것과 같다고 반론을 편다. 또 유생들은 출가 사문들이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점을 비난하면서, 그렇게 되면 결국은 인류는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용성은 우선 생산의 문제에 대해서는 유교의 공자도 ‘도道’를 수행하고 전도하는 것이 주업이었듯이 불교의 출가자들도 수행을 주업으로 삼는다. 조석으로 예불하고, 경전을 지송하고, 조사들의 상당설법을 듣고 참선 수행하며, 저마다 인연에 따라 수행을 한다. 이것은 농부가 밭에 씨를 뿌려 곡식을 가꾸듯이 사문은 ‘심전心田’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2.
다음으로 형이상학의 측면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송대 이후 주자학들은 주렴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활용하여 우주본질과 본체를 설명하는 이론적 전거로 활용해왔다. 이와 더불어 송대의 학자들은 위진시대 이래 연구되었던 3현학의 논의를 흡수하여 새로운 유학 이론을 만들어내었다. 이것이 소위 ‘태극론’이다. ‘태극론’에 입각하여 인간과 우주를 설명하는 현상은 중국 문화의 각종 방면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두된다. 용성 선사는 불교 측의 이런 사상적 축적을 특히 청량 징관의 『화엄경수소연의초』 「현담」을 전면적으로 수용해서 분명하게 이해했고, 또 그 이론을 토대로 하여 성리학의 ‘태극太極’ 이론을 전면적으로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용성 선사는 『주역』의 내용을 지목하여, 유교는 ‘허무자연虛無自然’을 만물 생성의 근원을 삼으니 ‘무인설無因說을 주장하는 자’라고 비판한다. 용성 선사가 인간의 근원이나 세계존재의 근원을 설명하는 방식과 내용은, 전통적인 화엄교학자의 방식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용성 선사는 당시 조선의 유생들이 정이천 내지는 주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사실 여부는 검토하지 않은 채, 중국에서 행해진 불교 비판을 모방했다고 맹렬하게 비판한다. 당시 유생들은 불교를 심한 말로 비난하는 것이 자신이 진정한 유생임을 과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라고 용성 선사는 간파했다.


3.
다음으로는 심성론의 측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중국의 주자는 불교를 비판하면서 불교도들은 ‘정혼精魂’을 즉 심성의 본체가 아닌 현상적인 작용을 가지고 ‘성性’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비난한다. 생각건대 주자가 불교를 이렇게 이해한 데에는, 당시 선종 특히 홍주종 계통(마조 계통의 문손)의 선승들이 ‘일상의 작용 속에 불성이 드러난다.’는 입장을 주자가 당시의 선승들과의 접촉하면서 이해한 것에 기인한다. 용선 선사는 화엄의 교학을 활용하여, 도리어 저들을 비판하고 있다. 성리학자들이 ‘희노애락’ 등의 감정이 발동되기 이전의 상태를 ‘중中’ 또는 ‘리理’ 또는 ‘성性’으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저급한 심성론이라고 용성은 비판한다. 이 정도 수준은 소승이라는 것이다. 제8아뢰야식도 ‘근본무명’으로서 여기에 들어 있는 미세한 업식을 제거해야 불성을 볼 수 있다는 입장, 즉 ‘원각묘심圓覺妙心’을 근본 심으로 삼는 입장에서 저들을 비판하고 있다.


4.
다음으로는 인성론의 측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이 부분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불교의 인과응보설, 윤회설, 세계와 생명 생성의 문제에 관한 논란이다. 3세에 관한 세계관은 중국의 고유 사상에는 없었다. 이로 인하여 인도의 사유인 3세 윤회설은 중국인들에게 수용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경험적으로는 3세의 실제를 알 수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는 인생을 바라보는 인도인들의 독특한 관점이기 때문에 실재하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하나의 가치관이요, 인생관이요, 세계관이다.
이와 동시에 용성 선사는 『보적경』을 전거로 하여 ‘중음신’과 ‘신식神識’의 존재에 대해 소개하면서 불교의 인생관이야말로 더 폭넓고 정교로움을 논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생명 현상들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생명이 다양한 형태로 태어나는 원인들을 설명하고 있다. 용성 선사는 주로 『능엄경』을 인용하면서, 각 생명체들이 ‘본원각성’ 또는 ‘청정대원각성’을 미혹했기 때문에, 그 미혹의 정도에 따라서 달리 생명을 받는다고 변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능엄경』을 인용하여 생명체들이 사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원인과 변화의 과정을 해명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당시의 철학 사조에 대해 비평을 하게 된 이유는 이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상대방에서 불교를 잘 모르고 먼저 비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여 자신도 변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변론하는 방식은 문답식으로 재구성하여 읽는 이에게 현장감 있게 한다. 이하에서는 용성 선사의 이러한 비판 철학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필자의 소감을 피력하기로 한다.
첫째. 고대 한국과 중국에서 있었던 ‘유불교섭’의 역사 전통에서 볼 때에, 용성 선사는 중국 쪽에서의 축적과 한국 쪽에서 축적된 논의를 문헌적으로 잘 섭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쪽에서는 특히 청량 징관과 규봉 종밀의 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한국 쪽에서는 함허 득통의 설을 섭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량의 경우에는 형이상학적 근원에 관한 점에 국한한 인상을 주고, 함허 득통의 경우는 현실적인 당시의 문제에 대한 변론에 급급한 점이 보이는데 반하여, 함허는 이 양자를 모두 섭취하여 자신감 있게 적극적으로 당시 성리학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용성 선사는 선사임에도 불구하고 교학에 해박함을 우리는 『귀원정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소위 내전은 물론 외전에 대해서도 폭넓고 깊은 독서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보여준 해박한 지식은 한국 고승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면모이다. 『이정어록』을 직접 읽는 등 주자의 학설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용하고 적절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게다가 성경을 읽고 그에 대한 반론을 편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셋째. 조선의 유생들이 불교를 비판하는 상황을 너무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저들이 직접 불교의 서적을 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사들의 상당설법을 들은 것도 아니면서, 그저 중국 사람들이 써놓은 책을 보고 불교를 비판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잘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는 속셈은 결국 명리를 얻으려는 것이었다는 것도 그렇다. 불교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것이 고결한 유생임을 드러내려는 조선 선비들의 세태를 간파한 것이다.
넷째. 용성 선사는 종교적인 체험은 화두참선을 통해서 하고, 그런 다음에 당시 강원의 이력을 전문적으로 열람하여 그렇게 체험한 내용을 이론적으로 구축했다. 용성 선사는 ‘일심’에 기초하는 ‘법성교학’에 입각하여 자신의 교리적 체계를 정리한다. 그의 이런 체계는 유교 비판에는 물론 기독교의 비판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런 그의 공부이력은 타 종교의 잘못을 심정적으로만 이해하고 남에게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알고 마는 여타의 선승들과도 현격하게 다르다.


E-mail : anand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