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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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심慈悲心이 여래如來입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복전福田이십니다. 불자 여러분이 없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찌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부처님은 자비심이 근본입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 대희대사大喜大捨 사무량심四無量心은 보살의 근본根本입니다. 보살의 자비심은 한량없는 선행善行을 베풀게 합니다. 자비심은 진실해서 헛되지 않습니다.
선한 일은 진실한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진실한 생각이 자비심이며, 자비심이 곧 여래如來입니다. 불보살님佛菩薩의 참 모습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선행의 근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비심이라고 답하라. 자비심은 진실해서 헛되지 아니하므로 선한 일들은 진실한 생각에서부터 일어나느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언행일치言行一致가 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생각, 올바른 행위, 올바른 습관, 올바른 성격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진실한 생각이 곧 자비심이며 자비심이 곧 여래이기 때문입니다.


일산 여래사如來寺의 정발산頂鉢山은 이마 정頂자에 발우 발鉢자 입니다.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는 그릇은 스님들이 공양하는 발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정발산은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는 산입니다. 절을 짓기 전에 사찰 이름은 어떻게 지을까? 생각하다가,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는 산이니,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의 부처님 명호名號를 마음에 품고 통도사에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월하 노스님께 절 지을 뒷산이 정발산이니 절 이름을 부처님 명호 중에서 여래사如來寺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월하 노스님께서 “아, 좋겠네.” 하셨습니다. 노스님은 좋아도 좋다고 안 하시고 싫어도 싫다고 안 하십니다. 싫으시면 “난 모른다고. 알아서 하라고.”, 좋으시면 “괜찮겠네.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 노스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통도사 일산포교당이 여래사가 되었습니다. 30년 전, 구룡사 만불전 불사를 회향하고, 십년 후에 일산 여래사의 만불전 불사는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고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 하였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찾아온 인생, 그렇게 또 떠나야 합니다. 이렇게 오고가는 인생 중에도 참된 인생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세상이 보기 싫다고 두 눈을 감으면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이 없어집니까? 세상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까이 서로 갈 수 있도록 진실한 마음으로 무소뿔처럼 걸어가야 합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생활 불교에 입문하는 초발심初發心은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불자佛子들이 노력해야하는 수행법修行法이기도 합니다.
참다운 불자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의 신행생활信行生活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신심信心과 엉클어져 있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오탁악세五濁惡世를 풀어가는 이해理解로 한걸음씩 다가가는 실천덕목이 수행정진修行精進입니다. 수행이란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정진이란 진지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수행정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다운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반드시 게으름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게으름은 모든 허물의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남동풍과 북서풍이 부딪히며 허공에 구름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찬바람과 더운 바람은 맑고 깨끗했던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 질 듯,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날이면 게으름 피우기가 딱 좋은날입니다.
집에 있는 이가 게으름을 피우면 의식이 부족해지고 사업하는 이가 게으르면 사업이 쇠락하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은 허물이 있습니다. 
주인은 머슴처럼 일해도 주인입니다. 진정한 주인은 하인처럼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진정한 주인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은 주인다워야 합니다. 뒷집만지고 군림하며 주인 행세를 한다고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허세입니다.
출가한 이가 게으르면 생사열반生死涅槃을 변별하지 못합니다. 생사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선행을 닦으므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집에 있는 이가 게으르지 아니하면 의식이 풍족해지고 사업이 번창할 것입니다. 출가한 이가 수행정진을 잘하면 모든 법을 다 성취하게 되어서 구경究竟에는 성불成佛할 것입니다.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정진 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살다보면 좋아하는 이도 있고 싫어하는 이도 있게 마련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을 줘도 아까울 게 없습니다.
신명나게 살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힘든 줄도 모릅니다.
지혜로운 이는 몸은 고단할지언정 정신적 고달픈 인생은 살지 않을 것입니다.


구룡사의 30여 년은 놓쳐버릴 만큼 바쁘게 살았습니다. 10여 년은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시간에 매몰된 것도, 시간에 쫓겼던 것도 아닙니다. 시간이 정지되어서 그 시간이 안 간 것도 아닙니다. 엊그제가 동지冬至였고 입춘立春이었으며 하지夏至였는데, 입추立秋가 지나갔습니다. 벌써 처서處署가 지나 내일이 백로白露입니다. 보름 간격으로 다가오고 지나가는데, 돌아서면 하루고, 돌아서면 한 달이고, 돌아서면 일 년입니다. 우리는 이제 추분秋分에 서 있습니다.
그렇게 가고 있는 시간에 노출된 우리네 인생은 그저 무상無常할 뿐입니다.
그런대도 자기 자신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떠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보살님은 결코 무엇을 요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개시오입開示悟入입니다.
그저 살아가야할 바른 길을 열어 보이시며 그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길에 들도록 함께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름다운 보살의 모습이 되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란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까울 것 없이 베풀어 주면서도 베푼다는 생각 없이 어떤 보상도 바라는 것 없이 행하고 있는 그 모습이 보살의 행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공양供養 가운데 가장 으뜸인 공양이 법공양이지만, 더 수승한 공양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께 효순孝順하는 공양입니다. 우란분재일盂蘭盆齋日에 우리는 함께 기도 정진하였습니다. 삼복더위 힘든 환경에서도 함께 기도할 수 있었던 그 마음이 효순하는 진정한 공양입니다.
법공양은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공양입니다.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입니다.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공양입니다. 중생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대신하는 공양입니다. 선근을 증장하는 공양입니다. 보살의 할 일을 저버리지 않는 공양입니다.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이 바로 법공양입니다.
『화엄경華嚴經』에 “보살이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첫째는 스스로 마음을 내어서 근본과 도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공양이요, 둘째는 상대방이 필요해서 해야 하는 공양이며, 셋째는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공양이라.” 하였습니다.
공양은 본래 분수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지혜를 키우고 가지게 합니다.
참 마음은 선행을 증장할 수 있는, 자비심을 드러나게 하는 연민심입니다.


asanjungwoo@gmail.com